[다문화라는 이름의 정책]다문화가정지원, 수도권·대도시 ‘쏠림' 도서산간 ‘소외감’

입력 2014-01-08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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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허술한 관리로 지원 혜택 ‘빈익빈 부익부’ 심화

# 1. 서울에 사는 A씨에게는 3살짜리 딸과 필리핀에서 데려온 9살짜리 아들이 있다. 아들은 학교 수업이 끝나면 센터에서 방과후 수업을 듣는다(학습도우미 63만원). 중도 입국으로 한국어가 부족한 아들은 특별히 센터 내 한국어 특화반에서 한국어 수업도 듣는다(한국어공부 9만2000원). 필리핀과는 다른 문화 때문에 2주에 한 번씩 청소년상담센터에 가서 선생님과 상담하기도 한다(원스톱심리정서프로그램 1만7000원). 3살짜리 딸은 어린이집을 다니고(보육료 지원 월 28만6000원×12), 집에 오면 방문지도 과외공부를 한다(방문학습지 2700원). A씨는 본격적인 취업준비를 위해 교육과 상담을 받고 취업 연계 도움을 받고 있다(취업·창업 중점 지원 1430원). A씨는 다음 달 어머니 생신을 챙기기 위해 필리핀에 다녀올 계획이다.(다문화 외갓집 방문 62만5000원)

#2. 베트남에서 온 B씨에게도 1살짜리 딸과 7살짜리 아들이 있다. 거제시에 사는 B씨는 둘째를 낳고 출산용품 구입비를 받았다(출산용품 구입비 10만원). 중도 입국한 아들의 한국어 실력이 쉽게 늘지 않는 것 같아 방문교육사업을 신청했다(방문교육사업 20만4600원). 도서지역에 거주해 센터를 오가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작은 딸도 또래에 비해 언어 능력이 떨어져 수업을 듣기로 결정했다(언어발달 지원 프로그램 91만5000원). 현재 거제시에는 중도 입국 자녀를 위한 프로그램이 개설되지 않아 답답하다. 다른 몇몇 지역에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말에 B씨는 소외되는 기분을 느낀다.

똑같은 두 아이를 둔 결혼이주민 여성 A씨와 B씨. A씨는 연간 480만130원을, B씨는 121만9600원의 지원 혜택을 각각 받는다. 이들 사이에는 연 358만530원이라는 지원 혜택의 차이가 난다.

◇‘빈익빈 부익부’에 ‘사은품족’까지 등장

이처럼 다문화가족 사이에서 정부의 지원 혜택을 두고 ‘빈익빈 부익부’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어떤 가정은 정부가 지원하는 혜택을 풍족하게 받는가 하면, 어떤 가정은 최소한의 혜택조차 누리지 못하는 등 불평등 사례가 심화되고 있다. 이런 배경에는 정부의 효율적이지 못한 예산 분배와 천차만별인 각 지자체의 살림 형편이 자리하고 있다.

서울 등 수도권과 대도시에 사는 다문화가정은 지원 혜택을 많이 받는 반면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와 도서, 산간지역의 다문화가정들은 최소한의 혜택도 받지 못하는 사례가 있다.

새누리당 이자스민 의원은 “도움 받는 사람은 계속 받고, 모르는 사람은 못 받는다”며 “읍 단위의 작은 동네나 도서지역, 산꼭대기에 사는 사람들은 실질적 혜택이 없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질 낮은 프로그램도 ‘빈익빈 부익부’ 쏠림 현상을 가중시킨다.

정부는 많은 수의 다문화 정책 과제를 수용할 수 없어 민간에 위탁했다. 일례로 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있다. 여성가족부가 설립 및 관리·감독하는 214개의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중 정부가 직접 운영하는 곳은 단 19개소에 불과하다. 나머지 195개소는 법인과 민간단체 등에 위탁해 운영한다.

정부는 위탁 사업자를 신청기관의 사업수행 능력, 재정적 능력, 활동실적, 신뢰성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선정하는데, 이 과정에서 사은품 증정, 일회성 행사, 무분별한 홍보 등 민간단체의 ‘부풀리기’가 자행된다. 매년 정부의 위탁 사업자로 선정되기 위해서다.

이런 데에는 효율적이지 못한 예산 지원이 한몫했다. 우선 각 시도별 다문화 가정 수를 기초로 ‘가’형과 ‘나’ 형으로 단순 분류하고 여기에 각 센터 프로그램 참석 인원 등 사업 실적을 바탕으로 예산을 지원한다. 즉 프로그램 참여율이 높은 곳에 예산이 더 많이 지원되는 구조다.

그렇다 보니 대다수 각 센터와 위탁기관들은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다문화 가정 사모님’ 모시기 경쟁에 혈안이다.

이런 이유로 일부 결혼이주여성 및 다문화가정을 중심으로 선물을 주는 곳의 프로그램과 이벤트에만 참석, 실속을 챙기는 ‘사은품족’까지 생겨났다.

‘다문화 한부모 가족을 위한 송년행사’에서 쌀 20kg과 생필품을 챙기고, ‘다문화가족 행복 플러스’ 행사에서는 놀이동산 자유이용권을, ‘다문화가족 걷기대회’에서는 방한복을 받는 등 본래 정부의 취지와는 다른 폐단을 낳고 있다.

◇예산 ‘툭’ 던져주고 나몰라라… 허술한 관리감독 체계

정부는 매년 늘어나는 예산을 두고 다문화가정에 대한 균등한 혜택이 지원되는 것처럼 홍보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2012년 436억4700만원의 예산이 투입된 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이용률은 평균 36.1%였다. 심지어 이용률이 6.8%에 그친 곳도 있다. 직접적인 혜택이 균등하게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표다.

그런데도 정부의 관리는 허술하기 짝이 없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나 위탁기관들에 대한 평가 등 제대로 된 관리시스템이 없는 것이다.

여성가족부가 각 센터 활동을 3년 주기로 평가하는데 거의 대부분이 형식적인 서면으로 이뤄진다. 현장평가는 상하위 센터 5%와 이의를 제기한 곳에 한해 실시하는 게 전부다.

한 마디로 정부는 예산을 ‘툭’ 던져주기만 하고, 위탁기관들은 그 예산을 따내기 위해 다문화가정을 ‘동원’의 대상으로 이용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지방의 다문화가족지원센터 관계자는 “다양한 프로그램 개설과 천차만별의 다문화가족 수를 고려한다면 획일적인 예산 지원이 아닌, 사업계획서나 보고서 등을 토대로 사업성을 충분히 검토한 후 각 센터에 차등 지원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정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정부 홍보 역시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각 지자체는 중앙에서 내려온 체계적인 지침 없이 재량과 역량에 기댈 수밖에 없는 실정이고, 홍보의 질과 통로 또한 지자체에 따라 중구난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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