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동영의 CSR 이야기]국회 CSR 입법은 ‘착한 규제’

입력 2014-01-10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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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동영 한국SR전략연구소장ㆍ배재대 겸임교수

기업은 시장에서 경쟁하고, 성취를 이룬다. 정부가 여러 이유로 시장에 개입하면 기업은 ‘규제’로 인식하고 저항한다. 기업이 마음껏 활동하도록 놔두는 게 규제완화, 혹은 규제개혁으로 여겨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마침 박근혜 대통령은 신년기자회견에서 “투자 관련 규제를 백지 상태에서 전면 재검토하겠다. ‘규제개혁장관회의’를 직접 주재해 막혀 있는 규제를 풀겠다”고 말했다. 7일 새누리당 소속 국회의원들과 당협위원장을 초청한 청와대 만찬에서도 박 대통령은 “경제활성화를 위해 부동산과 기업의 투자 관련 규제를 과감히 풀겠다”고 밝혔다. 기업들은 규제 때문에 투자를 못하고, 그래서 공장을 외국에 세울 수밖에 없으며, 결국 국내 일자리가 줄어든다고 주장해 왔으니 이런 움직임에 환영일색이다.

그런데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활동과 관련해서는 정반대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르겠다. 국회가 CSR 관련 입법을 준비 중이기 때문이다. 그게 기업 입장에서 ‘지원’일지, ‘규제’일지 아직 모호한 구석이 있다.

국회 CSR정책연구포럼은 지난해 말 CSR 전문가 초청 간담회에서 CSR 관련 입법추진 현황을 점검했다. 포럼의 대표인 홍일표 의원(새누리당)이 적극적인 추진의지를 밝혔고, 현실적으로 별다른 걸림돌도 눈에 띄지 않는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2개 법안은 기업의 CSR 활동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정무위원회에 계류 중인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상장기업이 사업보고서에 CSR 정보를 의무적으로 공개토록 하고 있다. 법이 발효되면 CSR 활동은 기업경영의 핵심영역으로 진입한다. 경영전략 수립에서 CSR을 빼놓을 수 없다는 의미다.

보건복지위원회에 계류 중인 ‘국민연금법 개정안’은 파급력이 더 크다. 국민연금기금이 친환경(environment), 사회적 기여(social), 투명한 지배구조(governance) 등 비재무적 요소(ESG)를 고려해 기금을 관리 운용토록 하는 게 골자다.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는 투자과정에서 환경, 사회, 지배구조 등 요소를 고려했는지, 그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반드시 공시해야 한다. 이를 고려하지 않은 경우 그 이유까지 밝혀야 한다. 지금도 국민연금기금은 ‘사회책임투자(SRI:Social Responsible Investment)’라는 이름으로 기금의 일정 부분을 운영하고 있지만 그 비중은 전체 투자의 1%대에 불과하다. 그나마 절반 가까이가 CSR영역에서 이미 검증받은 삼성, 현대차 등 대기업 위주로 투자된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국민연금은 전체 투자영역에서 ESG 요소를 늘 염두에 둬야 한다. 투자대상 기업으로선 무척이나 신경 쓰이는 일이다.

미국의 경우 전문 투자기관이 취급하는 투자 가운데 11%인 3조7400억 달러가량이 SRI 전략에 따라 투자되고 있다. 상당수 투자가들은 자신들의 투자가 금융측면의 성과뿐 아니라 사회적, 환경적, 지배구조적 성과에 기여해야 한다고 믿는다. 대안투자(Alternative investments)는 SRI영역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성장 중이다. 소셜벤처펀드, 헤지펀드, 사모펀드, 부동산펀드 등이 해당되는데 그 영역의 성장세가 매우 강해 금융수익도 매우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7월 국회에서 열린 ‘국민연금기금의 책임투자와 공시 법제화를 위한 대토론회’에서 한 참석자는 “사회책임투자의 핵심은 어느 기업에, 어느 산업에 투자하느냐가 아니라 ‘금융을 통한 사회 전체의 지속가능성 제고’라는 선한 의지”라고 주장했다. 금융이 CSR를 앞에서 이끈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사실 대기업들은 지금도 사회공헌이나 윤리경영, 책임경영 등 다양한 명칭으로 CSR 활동을 펼치고 있다. ESG 요소에 기반한 투자가 본격화하면 이들 기업은 CSR 활동을 ‘의무’로 느낄 가능성이 높다. 기업 입장에 따라 평가는 다르겠지만 시대 흐름을 거스르긴 어렵다. CSR 활동에 적극적인 기업이라면 국민연금을 비롯한 투자자들이 이런 요소들을 고려하는 게 오히려 유리해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상당수 대기업들은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놔둬라’는 생각이 강해 보인다. 자꾸 법으로 강제하지 말고 스스로 잘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달라는 주문이다. 앞으로 국회 논의과정을 유심히 지켜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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