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언론을 유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철새 떼의 이동경로에 따라 방역망을 구축하는 새로운 대책을 발표하는 등 호들갑을 떨고 있다.
가령, 북방철새들이 10월 말부터 강화도로 날아들기 시작해 천수만∼금강∼영산강ㆍ낙동강하류 등을 거쳐 다음해 2월쯤 국내를 떠나는데, 이 기간에 AI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시간을 돌려보자.
지난 16일. 전북 고창의 오리농가에서 AI가 처음 확인된 이후 정부(농림축산식품부)는 18일 인근 고창 동림저수지 가창오리떼가 집단 폐사했으며, 그 수가 1000여마리 정도라고 발표한다. 언론은 마치 동림저수지에 머문 가창오리 대부분이 감염돼 죽은 것처럼 보도한다. 20만 마리의 철새가 머물고 있는 동림저수지에서 100마리는 불과 0.5%에 불과한데도 말이다.
여기에 전라북도가 맞장구친다. 지난 6일 해당 농장 위로 가창오리가 군무를 이뤘다며 마치 배설물을 마구 쏟아내는 바람에 감염된 것 같다는 식으로 밝힌다. 감염발생 이틀 만에 가창오리가 AI 주범으로 몰린다.
검역기관의 역학조사가 나오기도 전인데, 행정공무원들의 능력이 가히 놀라울 따름이다.
그런데 정부 발표에서 부풀려진 사실이 들통나면서 신뢰에 금이 갔다. 우선 98마리를 1000여 마리로 거짓 발표했다. 그것도 가창오리(89마리) 외에 큰고니(1마리), 큰기러기(7마리), 물닭(1마리) 등 여러 종이 폐사했는데, 개체군이 많다는 이유로 가창오리만 콕 집었다.
그러고는 현장에 나간 직원이 죽은 철새 수를 잘 못 보고했다고 둘러대면서 어물쩍 넘어갔다. 정부의 발표가 신빙성이 낮은 이유다.
죽은 98마리는 현재 국립환경과학원이 폐사 원인 등을 확인 중이기에 더 그렇다.
정부는 거의 매년 AI 감염이 발생하면 줄곧 그래왔다. 철새가 매개체로 유력하다고. 대책 역시 재탕 삼탕이다. 그런데 어쩌나. 세계적으로도 아직까지 철새가 AI 감염 매개체라는 뚜렷한 증거가 없으니 말이다.
오히려 해외에서는 수년 전부터 AI 감염 매개체로 조류가 아닌 가금류가 지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즉, AI는 조류가 아닌 사람이 사육하는 닭과 오리 등에서 최초 감염된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밀실 방식의 집단 사육은 병에 저항하는 능력과 치유 능력을 떨어뜨리고, 개체 간 독감 변종이 더 급속도로 전이될 수 있도록 한다면서 가금류를 의심하고 있다.
몇 해 전 방한했던 AI 전문가 태지 문커(Taej Mundkur) 웨트랜드 인터내셔널 남아시아프로그램 전략코디네이터는 조류 인플루엔자가 아니라 ‘가금류 인플루엔자’라고 불러야 한다는 일부 의견에 공감한다며 지금까지 살아있는 야생조류에서 AI 바이러스가 발견된 적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루 영(Lew Young) 세계야생생물기금(WWF) 홍콩 마이포 자연보전구역 매니저 역시 최근의 과학적이고 의학적인 연구 결과가 보여주듯이 AI의 위험성은 야생조류에서가 아니라 상업적인 가금류 산업에 존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작고한 이정연(국립환경과학원) 박사도 AI 발생 원인 가운데 철새의 영향은 매우 낮다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이 박사는 우리나라 주요 철새 가운데 AI에 대한 감수성이 매우 높은 오리ㆍ기러기류와 도요ㆍ물떼새류 등의 번식지나 월동지를 보면 AI 발생지역과는 다소 차이가 있고, 지금까지 고병원성 AI가 발생한 지역과 철새 도래지 사이에 어떤 상관성도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가 애꿎은 철새를 주범으로 모는 데에는 허술한 방역체계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가창오리는 34년 전인 1980년 경남 주남저수지에서 처음 발견됐다. 모습이 유리처럼 예쁘다고 해서 가창오리로 불렀다. 그런 가창오리를 탓하기에 앞서, 정부는 비좁은 공간에 가금류 수만마리를 가두는 공장식 사육방식을 없애는 게 먼저 해야 할 일이다. 언제까지 철새 탓만 할 수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