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업계에 따르면 일동제약은 지난 24일 서울 양재동 본사에서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지주회사 전환을 위한 분할계획 승인 안건을 상정했지만, 찬성 54.6%, 반대 45.4%로 가결요건인 찬성 3분의 2를 넘지 못했다고 밝혔다.
부결에는 일동제약 지분 29.36%를 보유한 2대 주주 녹십자의 반대표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주총 후 녹십자는 “주주가치가 훼손될 우려가 있어 반대표를 던졌다”고 공식입장을 밝혔다. 지분 9.99%를 가진 피델리티도 반대표를 던진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녹십자가 적대적 M&A 의도를 드러난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녹십자는 사업 구조상 시너지 효과가 높은 일동제약을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녹십자는 혈액제제와 백신 등에서는 과점적 지위를 갖고 있지만, 계절 등에 따른 수요변동이 적은 제네릭(오리지널 의약품의 복제약)과 약국 판매가 가능한 일반약에서는 경쟁력이 떨어진다. 반면 일동제약은 ‘아로나민’등 일반약과 다수의 제네릭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녹십자의 지난해 연 매출은 8800억원 규모로, 3700억원의 일동제약과 합치면 제약업계 1위인 유한양행을 넘어 국내 최초로 연 매출 1조원 제약사로 거듭날 수 있다.
허일섭 녹십자 회장이 미국 휴스턴대 경영학 박사 출신으로 M&A에 거부감이 없다는 점도 배경 중 하나으로 꼽힌다. 허일섭 회장은 한일시멘트 창업주인 고(故) 허채경 회장의 막내아들이다. 허일섭 회장은 1954년생으로 서울대 경영학과와 미국 인디아나대 MBA, 미국 휴스턴대에서 경영학 박사 과정을 거쳤다. 둘째 형인 고(故) 허영섭 전 회장이 2009년 타계하자 녹십자의 경영권을 이어받았다.
허 회장은 1988년 한일시멘트 이사, 상무를 거쳐, 1991년 녹십자로 자리를 옮겼고, 이후 1997년 녹십자 대표이사에 올라 지금까지 회사를 이끌고 있다. 지난 2003년 경남제약, 2012년 이노셀(현 녹십자셀) 인수 역시 당시 녹십자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허 회장이 진두진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일각에서는 이번 녹십자 측 움직임을 그룹내 승계구도와 연관시켜 해석하기도 한다. 녹십자는 올초 창업주 고(故) 허영섭 회장의 차남인 허은철 부사장에게 영업·생산·연구개발을 총괄하는 기획조정실장에 앉혔다. 일동제약을 통해 회사의 외연을 키운 뒤 두 사람이 각각 경영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