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사의 개인정보 대량유출 사태를 둘러싼 지금의 형국이 그렇다. 사고수습이 우선이라는 새누리당과 책임추궁을 요구하는 민주당이 갈등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향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음에도 어떤 것을 우선순위에 둘 것인지는 여전히 설왕설래다.
굳이 따지자면 정보유출로 인한 2차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사태를 수습하는 게 먼저인 것은 분명하다. 피해를 최소화하는 게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 국면으로 들어서면 금융당국에 대해 분명한 책임을 묻는 것 또한 사고 수습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책임 소재를 가리지 않으면 나중에 비슷한 일이 터졌을 때 또 다시 혼선을 빚고 옥신각신 할 수밖에 없다.
야당이 현오석 경제부총리와 신제윤 금융위원장, 최수현 금감원장의 즉각 사퇴를 요구하는 것도 단순한 정치 공세로만 봐서는 안 된다. 당국 수장들의 최근 발언을 보면 적당히 책임을 떠넘기고 어물쩍 넘어가려 한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게 만드는 게 사실이다.
현 부총리는 “어리석은 사람은 무슨 일이 터지면 책임을 따진다. 금융소비자도 정보를 제공하는 단계에서부터 신중해야 한다. 우리가 정보 제공에 동의해줬지 않느냐”고 정보유출의 책임을 소비자에게 떠넘겼다. 손 놓고 있다 헐레벌떡 뒷북 대응에 나서고도 정작 책임은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얄팍한 꼼수다. 오히려 금융사에 대한 관리·감독을 소홀히 해 온 점을 감안하면 정보유출 사태의 ‘공범’이라는 인식을 갖는 게 맞다.
특히 신 위원장은 “검찰이 유출된 정보가 유통되지 않았다고 수차례 밝혔고, 사고 발생 1년이 넘은 시점에 카드사고가 없었다. 그동안 피해 보상 요구가 없었다는 점을 볼 때 카드를 굳이 바꿀 필요는 없다”며 2차 피해 가능성을 부인했다. 최 원장도 “현재까지 유출된 정보가 다른 곳으로 흘러가지 않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정부 주장과는 달리 KB국민·롯데·NH농협 등 3개 카드사에서 유출된 일부 개인정보가 이미 시중에 나돌고 있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언제든 추가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이에 대해 별다른 설명이 없다. 추가 유출된 정보가 없다던 최 원장은 뒤늦게 “2차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슬며시 말을 바꿨다. 이런 정부를 어디까지 믿고 따라가야 할지 국민들은 답답하다. 민심은 이미 ‘레드카드’를 던졌다.
정부가 무능을 드러낼 땐 민의를 대표하는 정치권이 국민의 입장에서 사태 해결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청문회를 열 것이냐, 국정조사를 실시할 것이냐를 둘러싼 싸움은 너무나 몰염치하고도 한가한 모습으로밖에 비춰지지 않는다. 정보유출의 근본적인 문제점 보완에 필요한 개인정보보호법 강화 등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면서 적절한 시기에 책임 소재를 가리는 데 중심 역할을 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안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