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씨름대회는 왜 4가지가 없나 [오상민의 현장]

입력 2014-01-31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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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KBS '장사씨름대회' 영상 캡처)

이만기, 이준희, 이봉걸. 한국 씨름 트로이카 시대를 기억하는가. 모래판을 주름잡던 3인방의 인기는 대단했다. 이들은 1980년대 씨름의 프로화와 함께 시작된 천하장사씨름대회에서 민속씨름 인기몰이의 주역이었다.

당시 씨름은 야구, 축구, 복싱과 함께 4대 인기 스포츠였다. 매년 명절이면 천하장사씨름대회를 보기 위해 온가족이 둘러앉아 좋아하는 선수를 응원했다. 그 때문일까. 장래희망이 씨름선수인 아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 민속씨름에는 화려한 기술도, 체계적인 룰도 없었다. 경기보다 샅바싸움이 더 길었고, 지나친 신경전으로 경기가 중단되는 일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민속씨름이 인기를 누를 수 있었던 원동력은 스타 선수들과 씨름을 보는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만기, 이준희, 이봉걸 등 스타 선수들을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거나 TV 앞에 시선을 고정하는 사람도 많았다. 특히 기술씨름의 이만기와 큰 신장을 무기로 한 이봉걸의 맞대결은 빅매치 중의 빅매치였다. 전통 스포츠에 대한 기대와 믿음도 컸다. 어떤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우리 민족 고유의 스포츠 씨름은 투박하지만 과학적이고, 격렬하지만 예를 갖췄다. 또 한민족만의 멋과 흥이 묻어났다.

그러나 지금의 씨름은 어떤가. 과거 화려했던 명성은 찾을 수 없고 4가지 아쉬움만 남아 있다. 우선 신뢰를 잃었다. 2012년 설날 장사씨름대회에서 불거진 승부조작으로 인해 부활을 노리던 씨름계는 다시 한 번 모래바닥에 주저앉았다. 불황의 늪에서도 관중석을 떠나지 않았던 일부 열혈 팬들마저 저버린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80년대 씨름 중흥의 주역이던 스타 선수는 기대할 수도 없다. 이만기 이후 강호동, 최홍만, 백승일, 이태현 등 스타 선수들이 연이어 등장했지만 불황을 맞은 씨름계를 떠나 연예계나 이종격투기로 전향하는 등 살길을 찾아 모래판을 떠났다. 결국 천하장사씨름대회는 2004년 구미 대회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씨름의 성지도 구축하지 못했다. 민속씨름은 전통과 멋을 중시하는 만큼 민속씨름하면 떠오르는 성지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어디에도 민속씨름의 성지는 찾아볼 수가 없다. 전북 군산에서 열릴 예정이던 2014 설날장사씨름대회도 승부 조작 사건으로 인해 충남 홍성으로 옮기는 등 떠돌이신세가 됐다.

색깔도 불분명하다. 빠른 씨름과 깨끗한 씨름을 지향하며 룰을 개정하는 등 시대 흐름에 발맞춰가려는 모습을 보였지만 경기장을 찾는 대부분의 관중은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들이다. 신세대, 여성, 가족화 등 최신 스포츠 트렌드와는 거리가 멀다. 경기장 곳곳에 덕지덕지 붙은 광고판과 한 판 한 판 끝날 때마다 흘러나오는 인기가요, 씨름과는 어울리지 않는 짧은 치마의 여성도우미까지. 도대체 지금의 민속씨름이 지향하는 것은 무엇인지 아리송할 뿐이다.

이만기 KBS 씨름해설위원은 “예전보다 깔끔해졌다. 기술이 다양해졌고, 샅바싸움도 없어졌다 ”며 달라진 씨름을 강조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만의 생각이다. 스포츠팬이 보는 씨름은 아직도 4가지가 없다. 지루하고 졸음이 쏟아지는 씨름을 자신있게 소개할 자신도 없다. 1980년대 이웃과 함께 보며 열광하던 민속씨름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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