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흘간 50만명의 관중이 찾는 경기장이 있다. 쉽게 믿겨지지 않겠지만 사실이다. 미국프로골프협회(PGA)투어 웨스트 매니지먼트 피닉스오픈(총상금 620만 달러ㆍ우승상금 111만6000달러)이 열리는 미국 애리조나의 스코츠데일 골프장(파71ㆍ7216야드)이다.
하루 평균 10만명 이상이 찾는 이곳은 주말이면 약 15만명이 몰릴 만큼 뜨거운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나 이곳은 골프대회라기보다 지역축제라는 말이 더 어울릴 만큼 아수라장이다. 술을 마시며 야유를 보내거나 고함을 치르는 행위가 허용되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시끄러운 골프장이라 부르는 이유가 그것이다.
특히 16번홀(파3ㆍ162야드)은 스코츠데일 골프장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다. 홀 전체가 2만석 규모의 스탠드로 둘러싸여 선수들의 중압감은 극에 달한다. 3만 갤러리의 야유와 환호를 감당해야 하는 만큼 샷 결과에 따라 최악의 홀이 될 수도, 최고의 홀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 선수들은 축제 분위기를 즐기는 모습이다. 준비한 선물을 관중에게 나눠주거나 돌발 이벤트를 펼쳐 눈길을 끌기도 한다. 재미교포 제임스 한(33)은 지난해 7m 버디를 성공시킨 후 말춤을 선보이며 갤러리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2일 열린 3라운드에서는 ‘쇼트게임의 황제’ 필 미켈슨(44ㆍ미국)이 럭비공을 던져주는 장면이 연출됐다. 미켈슨은 특유의 강한 어깨로 준비한 여러 개의 럭비공을 관중석 2층까지 힘껏 던져 팬들 성원에 보답했다.
그것이 문제였을까. 미켈슨은 이 홀에서 쇼트게임 난조로 더블보기를 범했고, 마지막 18번홀(파4)도 보기로 마쳤다. 후반 3홀에서 잃은 3타를 돈으로 환산하면 수십만 달러의 손실이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켈슨은 갤러리 한명 한명에게 사인을 해주며 퇴장했다.
노다영 SBS골프 해설위원은 “16번홀에서 럭비공을 던져주면서 어깨에 무리가 간 듯하다. 순간적으로 쇼트게임에 대한 힘 조절에 실패했다”며 쇼트게임 난조 원인을 분석했다. 사실상 무모한 퍼포먼스였다.
실제로 골프는 어떤 경기보다 호흡이 중요하다. 호흡이 조금만 거칠어져도 스윙(퍼팅) 리듬을 잃을 수 있다. 더구나 프로골퍼의 한타 한타는 수십만 달러와 직결된다. 따라서 평상시 볼이 러프에 들어가더라도 뛰어가거나 서두르지 않는다.
미켈슨은 그것을 몰랐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그는 누구보다 팬서비스에 적극적이다. 관중 없는 프로스포츠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미켈슨은 눈앞의 한타보다 갤러리와의 호흡을 선택한 셈이다.
미켈슨은 지난해 이 대회 챔피언이다. 애리조나주립대학을 졸업해 ‘애리조나의 영웅’으로 불리기도 한다. 마법과 같은 쇼트게임을 무기로 10년이 넘게 정상권을 지키면서 많은 팬들을 보유했다. 그러나 그의 인기 비결은 따로 있다. 승리에 대한 욕망, 수백만 달러로도 바꿀 수 없는 팬서비스다. 그것이 지금의 ‘애리조나의 영웅’ 필 미켈슨을 있게 한 비결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