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계 욱일기 논란, ‘가벼운 사과’가 불편한 이유 [최두선의 나비효과]

입력 2014-02-10 06:44 수정 2014-02-10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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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일기 논란에 휩싸인 정찬우의 방송화면(위)과 갓세븐의 '쇼! 음악중심' 무대(사진 = MBC)

한동안 잠잠했던 욱일기(旭日旗, Rising Sun Flag)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컬투 정찬우는 방송에서 입고 나온 빨간 스웨터가 욱일기를 연상케 한다는 지적에 곧바로 사과했다. 8일 방송된 MBC ‘쇼! 음악중심’의 무대배경은 욱일기와 비슷해 비판을 자아냈다. 앞서 트러블메이커의 현아 장현승, 빅뱅 탑(TOP), 걸스데이, 빅스 등 욱일기가 그려진 의상으로 곤욕을 치른 스타는 한둘이 아니다.

일본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깃발 욱일기에 대한 국내 여론은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일제 식민시대 자행된 반인륜적 행위는 지금도 사회적 병폐를 낳고 있다. 연일 계속되는 일본 정부의 우익 발언, 독도를 둘러싼 영토 분쟁,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위안부 할머니들의 한(恨) 등이 과거 일제에 짓밟힌 우리 역사를 다시 아프게 한다. 나치의 상징 하켄크로이츠처럼 전쟁범죄의 상징으로 일컬어지는 욱일기에 대한 신중함이 요구되는 이유이다.

“세심하게 신경 썼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죄송하다.”

욱일기 논란에 휩싸인 스타들의 천편일률적인 변명이다. 그들의 사과처럼 연예인들의 욱일기 논란을 역사의식 부재로 비난할 수만은 없다. 해당 이미지의 디자인이 단순한 만큼 빛이 퍼져 나가는 모양만으로 욱일기 논란에 휩싸일 수 있기 때문이다. 스타들도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잠도 제대로 잘 수 없는 빡빡한 일정 속에 하루에도 수십 수백 건의 협찬 의상이 들어오고, 준비된 의상으로 방송, 공연을 진행해야 상황 속에서 “욱일기를 연상해 곤란하다”고 거절할 여유가 없다는 주장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거리에 그려진 욱일기 벽화(사진 = 뉴시스)

그렇지만 여유를 논하기엔 욱일기에 대한 작금의 인식이 심히 우려스럽다. 범죄에 대한 처벌보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선도되는 것이 교화이다. 교화는 반성과 범죄 이후의 올바른 태도로 인해 형성된다. 그런데 일본은 그렇지 않다. 과거에 대한 반성은커녕 욱일기에 대한 지속적인 이미지 메이킹으로 패션, 문화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베 정권은 ‘식민지배, 침략’의 역사마저 왜곡하고 있지 않은가. 전쟁 피해자인 동아시아권 국가에서는 비난의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지만 서구권에서 욱일기 문양은 패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나치의 상징 하켄크로이츠의 문양과 유사하다는 이유로 판매를 중단한 미국의 한 대형 백화점, 나치 스타일의 경례를 했다가 자국 축구팀 활동이 영구 중단됐고, 대표팀에서 방출된 그리스 프로축구 선수 카티디스 등 나치에 대한 서구의 인식은 거부감을 넘어 혐오감으로 다가가고 있다. 여기에는 제국주의 시대의 만행을 바로 알고 성토하는 현대 서구인의 노력이 뒷받침됐다.

아이돌의 일거수일투족은 문화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 한류(韓流)가 기반을 잡은 상황 속에서 우리 방송의 파급력은 그 어느 때보다 크다. 욱일기 논란에 “신경 못 써 미안하다”는 사과 한마디로 끝내기엔 욱일기가 담고 있는 아픔이 가볍지 않다. 과연 유럽의 거리에서 나치의 하켄크로이츠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할 서구인이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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