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후(이하 한국시간) 러시아 소치 아들레르 아레나에서는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0m 경기가 열렸다. 잘 알려진 바대로 이 경기에는 한국 장거리의 간판 이승훈이 나섰다. 이승훈은 경기에 출전한 선수들 중 가장 마지막 조인 13조에 속해 실제 경기는 오후 11시 20분이 다 돼서야 열렸다. 이날 경기는 이승훈의 경기를 포함해 그가 출전하기 이전까지 12조까지의 경기 장면 역시 지상파를 통해 생방송으로 경기 장면과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곧바로 이튿날인 9일 오후 여자 3000m는 그 어느 방송을 통해서도 생방송을 접할 수 없었다. 지상파들 중 한국 여자 선수가 3명이나 나서는 이 종목을 생중계해 준 곳은 없었다. 김보름, 노선영, 양신영 선수 등이 경기에 나섰고 이들은 각각 14위, 25위, 27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비록 메달권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경기 이들의 경기 결과는 생중계로 결과를 접할 수 없었고 경기 내용도 마찬가지였다.
방송사들은 소치올림픽 관련 방송을 수십편씩 제작하고 예능프로그램까지 공조해 현지로 방송팀을 보낸 것은 물론 TV와 라디오 등을 통해서도 저마다 ‘올림픽 채널’임을 강조하고 있다. 방송국 건물에는 올림픽과 관련한 대형 플랭카드를 내걸어 올림픽 분위기를 고조하고 있다. 올림픽 개막 이전 미디어데이를 통해 저마다 최고의 올림픽 방송을 제작하겠다는 출사표를 던지기도 했다.
하지만 대회 개막 불과 3일째만에 시청자로부터 원성을 사고 있다. 특히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3000m에 출전한 노선영은 암투병 중인 쇼트트랙 대표 노진규의 누나로 방송사들마다 출국 이전부터 사전 인터뷰를 진행하는 등 지대한 관심을 보였던 선수다. 하지만 스스로 이슈를 만들어냈던 노선영의 경기 장면조차 생방송으로 편성하지 않았던 것은 비난를 면하기 힘들다.
비록 올림픽 출전은 불발됐지만 노진규는 병상에서 누나의 경기를 보기 위해 TV를 틀었다. 하지만 노진규는 누나의 경기를 생방송이 아닌 인터넷을 통해 결과만 볼 수 있었다. 누나의 경기가 열린 당일 노진규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누나는 보여주지도 않네....”라는 짤막한 글을 남겼다. 짧지만 방송사들은 이 글을 통해 느끼는 점이 있기를 바란다. 메달과 거리가 먼 종목은 철저하게 외면하면서 올림픽 방송을 운운할 자격은 없다. 주말에 열린 같은 종목을 대하는 태도에서 방송사들의 이중성은 분명히 드러났다.
이번 주말 소치올림픽 중계 행태를 통해 방송사들의 생중계는 선택 여부는 철저하게 시청률 위주, 즉 메달 가능 종목에만 집중한다는 것이 드러났다. 애초부터 이럴 계산이 깔려 있었다면 올림픽 채널이나 올림픽 방송이니 하는 말은 쓰지 말았어야 한다. 병상에서 암투병중인 노진규를 두 번 죽인 것임은 물론 한국 선수들의 선전을 기원하며 TV 앞에 모여 앉은 시청자를 철저하게 우롱한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