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이후 주춤했던 조류인플루엔자(AI)가 다시 고개를 든 가운데 AI 피해에 대한 보상이 본격화됐다. 정부는 AI로 살처분된 닭과 오리를 시세로 보상키로 했지만 재정 상황이 여의치 않은 지방자치단체가 분담에 반발하고 있어 농가 피해지원에 차질이 우려된다.
농림축산식품부는 AI 의심 신고가 들어왔던 경기 화성시 종계장과 전남 영암군 산란계 농장의 닭이 고병원성 AI(H5N8형)에 감염된 것으로 확진됐다고 9일 밝혔다. 이에 따라 지난달 16일 첫 AI 의심 신고 이후 지금까지 고병원성 AI 확진 농가는 총 17곳으로 늘게 됐다.
AI가 다시 확산세를 보이면서 닭과 오리 농가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이에 정부는 앞서 7일 피해농가를 위한 지원대책을 서둘러 내놨다. AI 발병으로 수익성이 악화된 농가 경영을 안정화시키기 위한 조치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최근 가금 유통 물량을 조사한 결과 닭은 10~20% 정도, 오리는 50~60% 정도 소비가 위축된 것으로 파악됐다. 정부는 우선 살처분 농가엔 시세 기준의 보상금과 생계안정·가축입식자금을 지원키로 했다. 수급에 어려움을 겪는 토종닭 사육 농가를 위해선 토종닭 100만 마리분의 도축비용을 지급한다.
살처분 농가 이외에 AI 발생농가 반경 3∼10㎞ 내에 있어 축산물 출하가 금지된 이동제한 농가에 대해선 소득안정자금과 사료구매자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농가의 특별사료구매자금 지원한도와 지원단가는 현행의 3배 수준으로 늘려 적용할 계획이다. AI 방역조치로 영업제한을 받은 가금 부화장·가공장·도축장 등 축산시설주에게도 경영안정 자금이 융자 지원된다.
하지만 이같은 정부 대책에 지자체의 재정부담도 커지게 됐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현재까지 살처분이 완료됐거나 예정된 닭·오리는 289만수에 달한다. 화성과 영암에서 신고된 AI가 양성으로 확진됨에 따라 살처분되는 마리수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여 살처분 비용에 지방분담금을 통해 농가에 지급할 ‘보상금’까지 떠안아야 하는 지자체는 앞길이 막막해졌다.
급기야 충북도는 정부가 AI 피해대책을 내놓은 같은 날, AI 방역 차원에서 이뤄지는 가금류의 예방적 살처분과 도축장 영업 중단에 따른 손실액을 전액 국비로 보상해 달라고 정부에 건의하기에 이르렀다. AI 방역과 살처분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재정이 열악한 일선 지자체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가축전염병예방법에 따르면 1종 전염병인 AI가 발생한 농가에는 손실액의 80%, 예방적 살처분이 이뤄진 미발생 농가에는 100%가 보전된다. 이 보상금 중 20%는 지자체가 부담하게 돼 있다. 도의 한 관계자는 “예방적 살처분이 필요한 사회적 재난이 발생한 상황에서 기존의 재원 분담 비율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지방재정에 큰 부담이 된다”고 우려했다.
역시 막대한 살처분 보상비에 도축장 영업 손실액 보상을 위해 예비비까지 끌어다 써야 하는 중앙정부는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이날 여야 역시 AI피해로 닭과 오리 등의 판매경로가 막힌 것과 관련해 정부에 출하시기가 지난 가금류를 수매하는 방안을 추진할 것을 촉구했지만 정부는 “수매를 고려치 않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한편 농식품부는 철새도래지 주변 지역에서 항공방제를 추진하기로 했다. 헬리콥터를 이용한 항공방제는 지자체에서 요청할 경우 AI 발생 지역 주변 농경지 중심으로 이뤄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