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아의 라온 우리말터] 대통령의 애매모호한 말...‘비정상의 정상화’

입력 2014-02-12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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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시작된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2월 중순이다. 새해 목표를 이루기 위해 계획대로 생활하는 주변 사람들의 모습이 보기 좋다. 어디 개인뿐이겠는가. 기업, 단체, 정당, 정부 등도 명확한 목표 아래 조직의 계획대로 움직이려는 모습이 역력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연초 신년 내외신 기자회견을 열어 집권 2년차 국정 운영 구상을 밝혔다. 이날 박 대통령은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국정 목표를 제시했다.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 박힌 잘못된 관행들을 바로잡겠다는 의지가 담긴 말이다. ‘비정상의 정상화’란 표현은 지난해 8·15 경축행사를 비롯해 국무회의, 비서관회의 등에서도 여러 차례 언급된 바 있다. 정부가 개설한 국무조정실 홈페이지에는 ‘비정상의 정상화’가 무엇인지 친절하게 해설까지 해 놓았다. 홈페이지 해설에 따르면 ‘비정상’은 과거로부터 지속돼 온 잘못된 관행과 제도, 부정부패 등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를 바로잡는 ‘정상화’의 목표는 기본이 바로 선 국가, 깨끗하고 투명한 정부, 올바른 사회 등이다.

사회통념상 비정상과 정상의 구분은 접어두자. 그런데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모호한 어휘는 도무지 그냥 넘길 수가 없다.

비정상의 정상화?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표현은 목적격 조사(을/를)를 써야 할 곳에 관형격 조사(의)를 써서 부자연스러운 것이다.

“사회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부조리의 척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 문장도 비슷한 오류를 안고 있다. ‘부조리의 척결을 위해’를 ‘부조리를 척결하기 위해’로 고쳐야 흐름이 자연스럽고 뜻이 명확하다.

우리말에서 조사가 갖는 의미는 매우 중요하다. 조사의 ‘조’는 도울 조(助)자로 체언이나 부사, 어미 따위에 붙어 그 말과 다른 말과의 문법적 관계를 표시하거나 뜻을 돕는다. 그런 까닭에 조사를 잘못 쓸 경우 문장이 어색함은 물론 의미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비정상의 정상화’는 유인 우주선 ‘스페이스 셔틀 콜롬비아’의 공중분해 사고 조사보고서에 처음 등장한 말로 영어식 표현이다. 사고 조사보고서는 ‘비정상의 정상화’를 ‘뭔가 잘못돼 있지만 그게 일상화돼 지속될 때 사람들은 그것을 정상인 상태로 인지하게 된다’는 의미로 기록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말하고자 하는 의도와 완전히 다른 의미인 셈이다.

우리말 조사 ‘의’와 영어 전치사 ‘of’가 뜻이 비슷하긴 하나 쓰임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전치사 ‘of’는 관형격 조사를 넘는 더 복합적 의미를 지닌다. 반면 관형격 조사 ‘의’는 앞에 오는 체언이 뒤에 오는 체언의 관형어임을 보이는 경우 주로 쓰인다. 따라서 그 용법에 맞게 신중을 기해 사용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지난 4일 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각 부처는 비정상을 정상화하는 데 주력하고 뼈를 깎는 노력을 해줘야 한다”고 표현을 바꿨다. 아마도 청와대 내외부에서 ‘비정상의 정상화’에 대한 문법적 언급이 있었던 모양이다. 기왕 말을 바꿨으니 홈페이지 등에서도 ‘비정상을 정상으로’ 등의 표현으로 수정하는 건 어떨까.

박 대통령의 유창한 외국어 실력은 인정한다. 지난해 6월 칭화대 연설은 많은 중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프랑스에서 한 프랑스어 연설이 수많은 해당 언어권 국가의 관심을 모은 것도 물론이다. 그런데 대통령의 품위와 권위를 고려할 때 외국어 못지않게 바른 우리말 사용의 중요성을 간과해선 안 된다. 대통령의 말은 올바른 표현이든 잘못된 표현이든 늘 화두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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