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금 대란] “120만원 보조금 떴다”… 대리점 앞 수백미터 대기 행렬

입력 2014-02-14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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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S4 LTE-A 등 100만원 넘는 최신폰 구입 후 수십만원 입금 받아

#2월 11일 새벽 3시 동대문역 인근에 있는 한 휴대폰 판매점. 서현욱(31)씨는 300m 가량의 긴 행렬 속에 칼바람을 맞으며 서있었다. 얼리어답터인 그는 이날 새벽 휴대폰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를 살펴보다 100만원 가량의 보조금을 준다는 판매점 ‘좌표(매장 위치를 뜻하는 은어)’를 발견했다. 서울 신림동에 사는 그는 곧바로 택시를 타고 동대문으로 이동, 최신 스마트폰을 싸게 사려는 긴 인파 틈에 몸을 밀어 넣었다. 서씨는 이른바 ‘211 보조금 대란’이라고 불리는 한 가운데에 있었다.

#김승수(36)씨는 오늘도 허탕을 쳤다. 밤새 휴대폰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를 돌아다녔지만 ‘공짜폰’, ‘마이너스폰’은 찾아볼 수 없었다. 뉴스에선 연일 100만원대 보조금 대란을 떠들고 있지만 김씨에게는 먼 이야기다. 능수능란하게 컴퓨터를 다룰 수 없었기 때문에 정보력이 부족했다. SNS를 통해 대규모 보조금을 받고 휴대폰을 싸게 산 지인들의 소식을 보고 있으면 한숨만 나왔다.

김씨는 “동네 휴대폰 매장에서 사면 왠지 속는 느낌이 들어 살 수가 없다”며 “도무지 어디서 어떻게 사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최신 휴대폰 구입하면 24만원 돌려줘 = 국내 이동통신시장에 역대 최고 수준인 120만원에 달하는 보조금이 투입됐다. 100만원을 호가하는 최신 스마트폰은 이른바 ‘마이너스폰’으로 전락했다. 소비자들이 휴대폰을 구입하고도 오히려 돈을 받는 기이한 시장구조다. 하지만 개인의 정보력에 따라 휴대폰 구입 가격이 하늘과 땅 차이가 난다. 공짜로 휴대폰을 사는 소비자가 있는 반면, 일부 소비자들은 출고가 그대로의 돈을 지불하고 휴대폰을 사고 있다. 이통사들의 불법 보조금이 소비자 차별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는 셈이다.

지난주 주말인 7일부터 9일까지 일부 이통사가 사상 최고치인 120만원의 보조금을 투입했다. 보조금이 지급된 모델은 ‘갤럭시S4 LTE-A’다. 출고가 95만4000원을 감안하면 소비자는 휴대폰을 구입하고도 24만6000원의 돈을 받았다. 해당 게시물은 새벽 시간대에 올라왔고, 노출된 지 1시간 만에 삭제됐다. 이통사들의 주무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의 눈을 피해 새벽에 보조금을 풀었다. 판매점들은 주무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의 단속을 피하기 위해 서류상에는 보조금 한도액까지만 적고 차액 24만6000원을 한 달 뒤 개인계좌로 송금해 주기로 약속하는 주도면밀함을 보였다.

스팟성(짧은 시간 게시되는 광고글)으로 끝날 줄 알았던 보조금은 평일인 10일과 11일까지 계속됐다. 이날 애플 ‘아이폰5S’는 4만4000원에, LG전자의 ‘G2’는 4800원에 팔렸다. 해당 단말기의 출고가를 감안했을 때 100만원가량의 보조금이 지급된 것이다. 심지어 팬택의 ‘시크릿노트’와 삼성전자의 ‘갤럭시S4 액티브’는 3만~6만원대 마이너스폰으로 팔렸다. 단말기를 공짜로 주고 다음 달 요금에서 3만~6만원까지 깎아주거나 현찰을 통장으로 입금해주는 식이었다.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지방까지 원정 구매 나선 소비자 = 이날 새벽,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스팟성 보조금 정책의 게시물이 등장했다. 게시자는 야밤을 틈타 1시간가량 보조금이 풀린 특정 휴대폰 판매점의 위치를 노출시켰다. 게시물을 본 네티즌들은 해당 판매점으로 몰려들었다. 판매점 앞은 새벽부터 휴대폰을 구입하기 위해 몰린 인파로 가득 차는 웃지 못 할 광경이 펼쳐졌다. 업계에선 이날 있었던 해프닝을 ‘211 보조금 대란’으로 불렀다.

최근 판매점들은 단속에 쉽게 노출되는 온라인 대신 소비자와 직접 대면하는 오프라인 판매로 선회하고 있다. ‘폐쇄몰’로 불리는 휴대폰 거래 전용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오프라인 매장의 위치를 알려주고 내방을 유도한다. 때문에 휴대폰을 싸게 구입하기 위해 서울에서 지방까지 찾아가는 ‘원정 구매’도 심심치 않게 나타나고 있다.

211 보조금 대란은 이통 3사가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앞 다퉈 보조금을 풀었던 게 화근이 됐다. 올해 SK텔레콤은 점유율 50% 사수를 선언했고, KT는 30% 고수, LG유플러스는 20% 돌파를 선언하며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TOA)에 따르면 지난 8~10일 사흘간 번호이동은 11만2961건으로 집계됐다. 하루 평균 3만7600여건의 번호이동이 이뤄진 것. 이는 방통위가 시장 과열 지표로 삼는 2만4000건의 1.5배에 달하는 수치다.

◇27만원 보조금 상한선… 누구를 위한 법인가 = 방통위 관계자는 “이통 3사의 불법 보조금 지급 현황을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있었다”며 “조사를 거의 마무리했고, 조만간 영업정지 등 제재를 가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움직임에 소비자들은 오히려 반발하고 있다. 김씨는 “소비자 입장에선 솔직히 이통사들의 보조금이 줄어들면 손해”라며 “보조금을 강제로 막으면 휴대폰 구입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방통위는 현재 이통사들을 대상으로 보조금을 27만원으로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이통사들의 불법 보조금은 해마다 반복되고 있다. 더군다나 소비자들로부터 불신을 받고 있어 유명무실한 제도로 전락했다.

업계에선 실효성 없는 보조금 상한제 대신 소비자 중심의 법체계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통사들은 대안으로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을 꼽고 있다. 단통법은 보조금으로 인한 사용자 차별을 없애기 위해 정부가 내놓은 해법이다.

지난달 SK텔레콤 박인식 사장은 “아침마다 보고를 받는데 주말 동안 대규모 보조금이 풀렸다는 내용을 보면 열이 나고 한숨이 난다”며 “제조사가 특정 단말의 판매량을 높이기 위해 상상하기 어려운 정도의 보조금을 투입하고, 이통사도 특정한 목적을 갖고 스팟성 보조금 경쟁을 지속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이달 국회에서 단통법이 통과, 법제화해 통신시장의 구조를 개선하고 동시에 고가의 단말기 출고가를 현실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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