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2위 보험시장을 보유한 일본에서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던 중견 생보사인 야마토가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퇴출됐다. 지난 2001년 도쿄뮤추얼생명 이후 7년 만에 처음으로 몰락한 야마토는 RBC비율(지급여력) 555%의 초우량 보험회사였기 때문에 일본 보험업계의 충격은 컸다. 야마토 몰락의 원인은 계속되는 저금리 기조 때문이다. 저금리에 따른 운용차익 손해를 만회하기 위해 공격적인 해외자산 투자에 나섰다가 글로벌 금융위기로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우리나라 보험사들 역시 저금리 장기화와 시장 포화 상태로 저성장의 늪에 빠져 있다. 여기다 경기 불황으로 인한 보험가입 여력도 감소해 전통적인 설계사 채널 영업도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보험사들은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온라인채널 공략 등으로 활로를 찾고 있다. 금융당국도 100세시대를 대비한 보험상품 출시를 유도하는 등 업계의 활로를 찾아주기 위해 정책적 노력에 적극 나서고 있다.
◇ 온라인 보험시장 선점경쟁 치열 = 손보사들은 이미 온라인 보험시장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다. 지난 2001년 AXA다이렉트의 전신인 교보자동차보험이 첫 선을 보인 이후 10년여 만에 전체 자동차보험 가입자의 30%가량이 온라인으로 가입하고 있을 정도로 시장이 급성장했다.
반면 생보사는 복잡한 상품구조로 인한 불완전판매 우려로 인해 온라인시장 진출을 계속 미뤄왔다. 하지만 업황 불황이 지속되자 생보사들도 초기 비용이 적게 들어가는 온라인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기 시작했다.
지난 2011년 KDB생명이 온라인 전용상품을 내놓은 이래 신한·한화·미래에셋 등 9개 생보사가 인터넷 전용보험 상품을 출시하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해 12월에는 국내 최초의 온라인 전업 생보사인 교보라이프플래닛이 첫 선을 보이면서 시장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실제로 라이프플래닛은 설립 이후 첫달에만 500명의 가입자를 기록했다. 가입자 대부분이 정기보험 등 소액 상품 가입자여서 당장의 매출은 크지 않지만, 별다른 이벤트 없이 홈페이지 순수 방문자수가 16만5000명을 기록해 많은 관심을 불러모으고 있다는 것이 라이프플래닛의 분석이다.
또 현대자동차그룹이 녹십자생명을 인수해 재탄생한 현대라이프는 지난해 11월 이마트와 제휴해 업계 최초로 마트에서 구입하는 보험상품을 판매하기도 했다. 이 보험은 소비자들이 직접 이마트에서 보험을 구입해 웹사이트와 상담센터에서 간단한 절차만으로 가입할 수 있다.
보험사들이 온라인보험에 뛰어드는 이유는 당장의 이익보다는 향후 성장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설계사, 점포사업비 등 초기비용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점도 부각되고 있다.
A보험사 관계자는 “온라인에서 판매되는 상품들은 단순한 보장성 상품들이기 때문에 가격이 낮아 바로 수익이 늘어나지는 않는다”며 “하지만 20~30대층이 온라인보험에 익숙해진 후 시장이 커질 것으로 예상돼 시장에 진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다만 불완전판매 등은 풀어야 할 숙제다. 비전문가인 고객이 설계사의 설명을 듣지 않고 자발적으로 보험상품을 가입하는 것이기 때문에 중도 해지 등이 쉽게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 100세시대 노령보험 블루오션 기대 =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르지만 고연령층이 가입할 수 있는 보험상품은 상당히 제한적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인구의 비중은 2010년 11.3%에서 2020년에는 15.7%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이에 전문가들은 “고연령층의 보험 수요 증가가 예상되고 특히 경제력 있는 베이비붐 세대가 본격 은퇴하게 되면 이들이 보험산업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보험산업의 미래를 위해 고령화 추세에 대비한 상품을 정부도 지원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말 금융자산을 통해 노령화에 대비할 수 있도록 ‘100세 시대를 대비한 금융의 역할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 방안에는 노후전용 실손의료보험 상품을 만들고 간병·치매·호스피스·장례 서비스·외출 동행과 같은 일상생활 지원 등 노후 건강관리를 종합적으로 보장하는 특화보험 개발도 포함돼 있다.
이에 대해 보험사는 대체로 환영하는 입장을 나타냈다.
보험사 한 관계자는 “새로운 시장이 열린다는 것은 보험산업 활성화에 긍정적일 것으로 보인다”며 “수익도 수익이지만 100세시대 센터 같은 보험사들의 역할도 확대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상품구성과 가격정책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자동차보험이나 단독실손 상품처럼 정부가 판매 정책과 가격을 통제하고 있는 점에 대해서는 불만이라는 것이다.
금융당국이 소비자 보호와 자산 건전성을 강화하겠다며 금융권을 옥죄고 있다. 저금리·저성장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보험사에게 규제 강화는 시장을 더욱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특히 자동차보험의 경우 손해율 고공행진에도 불구하고 보험료 인상을 억제해 지난해만 업계 전체로 1조원의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난해 12월까지 자동차보험 누적 손해율은 87.9%로 전년 같은 기간의 84.1%보다 3.8%포인트 상승했다. 지난해 12월 자동차보험 손해율은 무려 96%로 이전 달보다 5.1% 상승했다.
이에 다이렉트 손보사를 중심으로 오는 4월부터 자동차 보험료 인상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실제 보험료를 인상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손해율이 높은 중소형 다이렉트 자보의 인상은 검토해 보겠지만 대형사까지는 곤란하다는 게 금융당국의 시각이다.
◇ 보험 가격 자유화의 허상 = 금융당국은 지난 2000년 이후부터 보험산업의 경쟁과 발전을 위해 보험가격을 자유화했다. 그러나 최근 수년 사이 금융사의 건전성 규제와 소비자 보호라는 명분으로 보험상품 가격을 사실상 통제하고 있다. 은행 금리에 해당하는 공시이율 등 보험료를 결정하는 주요 요소들에 대한 지도를 통해서다.
보험사들은 매년 2~3월 시중금리, 질병 위험률 등을 감안해 보험료를 재산정한 보험상품 재개정 신고서를 금융당국에 제출한다. 올해도 보험사들은 당국에 신고서를 제출하고 상품에 대해 당국의 지도를 받고 있다.
현재 손해율이 치솟고 있는 실손의료보험의 보험료도 감독당국의 지도 때문에 묶여 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1월 출시된 단독 실손의료보험의 갱신 시점이 내년 1월로 다가온 가운데 관련 통계 축적이 미흡하다는 점을 고려해 내년 보험료를 올리지 않기로 했다.
그 동안 손보사들은 실손의보의 보험료 인상을 금융당국에 강력히 요구했다. 보험료 산출의 기본 근거인 위험률 산출을 위한 통계치가 미흡한 탓에 유보돼 내년에나 재검토될 것으로 보인다.
현행 규정상 실손의보의 보험료를 재조정하기 위해서는 판매 시점을 기준으로 5년이 지나야 가능하다. 즉, 보험료 재조정을 위해 위험률을 재산출하기 위해서는 최소 5년치의 위험통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금융당국의 판단이다.
업계 관계자는 “실손의료보험의 손해율이 높아 보험료 인상의 필요성이 제기돼 왔지만, 통계 집적 기간이 규정에 못 미쳐 이번 보험료 조정작업에 반영되지 못했다”며 “올해는 실손의료 보험료가 동결될 것”이라고 밝혔다.
◇ 정보유출 사태에 TM영업 타격 = 금융당국은 보험사의 개인정보 활용과 관련해 규제를 대폭 강화했다. 카드사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로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그 동안 보험가입자 정보를 활용해 전화영업(TM)을 해온 보험사의 영업이 사실상 올스톱됐으며 이같은 추세는 한동안 지속될 전망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사 입장에서는 TM영업에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앞으로 개인정보 활용과 관련된 규제는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TM영업은 중소형 보험사의 중요한 영업 수단이었는데 이번 사태로 소비자들의 반감을 샀다”며 “현장에서는 TM 이야기하면 한숨부터 쉬는 분위기다”라고 토로했다.
현재 TM영업을 재개하려면 CEO 확약서를 제출해야 한다. 당국은 전수조사 방식으로 정보제공 동의 여부를 확인하고 있어 현장에서 즉시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는 굉장히 제한적이다. 당국이 제한된 인력으로 전수조사를 다 하려면 수개월이 소요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더욱이 제휴사 데이터베이스(DB) 등을 활용한 TM 영업은 여전히 금지돼 있어 보험사별로 많게는 수천명이 유휴인력으로 전락한 상태다.
A생보사 관계자는 “TM영업이 재기됐지만 규제할 당시와 특별하게 달라진 것은 없다”며 “직원들은 정상적으로 근무하고 있지만 정보제공에 동의한 고객 데이터가 많지 않아 영업을 하는 직원들은 소수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B손보사 관계자는 “정보제공 동의서와 고객과의 상담 녹음 파일을 일일이 확인하고 있어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있다”며 “TM영업이 문제가 아니라 동의서를 확인하는 것이 더 문제”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