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미스코리아 나갔던 여자야!” 약 6개월간 시청자의 귓가를 맴돌게 했던 왕 씨 집안의 장녀 왕수박의 대표적인 대사다.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불리한 상황이 되거나 자신을 무시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마다 그의 입에서는 당연한 듯이 언급됐다. 철없고 허영심으로 가득 찬 왕수박을 가장 잘 보여주는 한 마디가 아닐까. 지난 24일 KBS 주말드라마 ‘왕가네 식구들’에서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라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 왕수박 역을 맡아 열연한 오현경은 만나 약 6~7개월간의 촬영 에피소드를 들어봤다.
“작품 끝남과 동시에 출연배우들과 마카오에 휴가를 다녀왔어요. 다양한 공연도 보고 즐거운 시간이었죠. 밤늦게까지 수다 떨다가 잠들어도 아침 조식 시간에 맞춰 일어났죠. 가이드가 ‘먹으러 오셨어요? 서울에서 못 먹냐’며 연예인들에 대한 환상이 깨졌다고 하더군요. 정말 관광하고 먹기만 하다 온 것 같아요.(웃음)”
이들의 포상휴가 소식에 드라마 인기만큼 배우들에 향한 관심도 높았다. 그들의 출입국 공항패션이 화제가 돼 인터넷 포털 사이트를 장식하고 나섰다.
“공항패션이 화제가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어요. 그럴 줄 알았으면 신경 좀 쓸 걸 그랬네요. 입을 것이 마땅히 없어서 검은색과 밤색으로 통일해서 집을 챙겼죠. 다행이었어요.”
‘왕가네 식구들’은 높은 인기만큼 시청률도 고공행진 했지만 막바지에 시청률 50%의 벽을 넘지 못했다.
“아쉽죠. 작품이 연장할 줄 알았어요. 사실 48회 까지도 어떻게 2회 만에 결말이 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죠. 몇 회라도 더 있었으면 조금 더 자연스러울 수 있었을 텐데 어쩔 수 없는 여러 가지 상황 속에 정리하려다보니 그랬던 것 같아요. 아쉽네요. 결말인 30년 후 에필로그를 굉장히 마음에 들어요. 연기자 입장에서는 독특하고 재미있었어요. 극 중 캐릭터가 성숙한 과정을 보여준 것 같아요. 우리는 30년 후에도 각자의 꿈을 찾아 살아가고 있을 거잖아요. 그걸 보여준 것 같아요.”
‘왕가네 식구들’ 결말인 30년 뒤 왕수박이 유명 가방 디자이너가 돼 행복한 삶을 꿈꾸기까지 많은 고난과 어려움이 있었다. 왕가네 첫째딸로 부모님의 사랑만 받고 귀하게 자란 그는 고생이라는 단어를 모를 만큼 철부지에다 자신에 투자하는 것만이 최고의 행복이다. 집에 빨간 딱지가 붙어도 명품백을 사수하느라 정신없는 그의 모습은 왕수박의 성격을 고스란히 드러내기에 충분했다.
“저도 수박이가 그럴 줄 몰랐다. 대본이 나올 때마다 수박이의 행태를 보고 힘들었다. 못하겠더라. ‘어떻게 이래’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기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하나씩 끄집어 내 연기를 한다. 그런데 내 안에 있는 어떤 것을 끄집어 내야하는지 모르니까 내 연기력만 탓하게 됐다. 그래서 주변사람들에게 미안하지만 수박이처럼 실제로 행동했다. 나중에는 수박이에 빙의됐다는 말까지 듣게 됐다. 나도 모르게 극에 몰입이 됐고, 연기력이 늘 수 있는 계기였다. 작가님이 잘 써주신 덕분이다.”
오현경은 문영남 작가와 남다른 인연을 자랑한다. 그는 문영남 작가가 문학상을 받고 MBC ‘분노의 왕국’(1992년)을 집필할 당시 처음으로 인연을 맺었다. 어려서부터 문영남 작가와 인연을 이어오던 그는 2007년 드라마 ‘조강지처 클럽’을 통해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6년 만에 ‘왕가네 식구들’로 다시 한 번 호흡을 맞춘 오현경은 또 한번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됐고 그 공을 문영남 작가에게 돌렸다.
“사람들한테 각인 된다는 것은 좋다. 좋은 작품에 다시 불러줘서 감사하다. 배우가 작품을 많이해도 많은 사람이 다 아는 작품을 하기란 쉽지 않다. 문영남 작가는 캐스팅한 배우 한명도 놓치지 않는다. 조연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 모두 작품 속에 녹여준다. 그래서인지 선생님 작품을 하면 소외감이 들지 않는다. 회식 때 했던 행동이 대본에 나올 때도 있다. 배우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주시하고 있다가 대본에 녹여내는 것이다. 밤샘 촬영을 한 적도 없다. 현장 분위기가 좋으니 스태프와 관계도 좋았다. 문영남 선생님은 제 인생의 멘토다.”
오현경은 ‘김해숙 같은 연기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 마음은 변함이 없다. 우리 드라마에서도 선생님의 대사가 가장 많았다. 허리를 다쳐서 누워있으면서도 ‘입만 살았다’고 할 정도였다. 기립박수를 쳤다. 대단하신 분이다. 장용 선생님은 진짜 아버지 같다. 나문희 선생님도 마찬가지다. 옛날에는 잘 몰랐는데 연기를 하면서 진정으로 와 닿는 시기인 것 같다.”
오현경은 차기작에 고심하고 있다. 국민 밉상으로 주목받았던 그가 이번에는 어떤 모습으로 안방극장을 찾아가야 할지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다.
“여러 작품을 보고 있다. 작품에서 비중이 있다고 해서 고집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연기력을 보여주려고 하면 또 다른 것을 잘해내야하나. 해보고 싶은 역할은 없다. 무슨 역을 맡던 표현을 해내서 잘 전달해야한다. 작가가 쓴 것을 잘 전달하고 싶고, 어떤 역을 맡던 잘 표현해 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