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애가 일본에 간 까닭은 [오상민의 현장]

입력 2014-03-02 20:08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사진=AP뉴시스)

“우리 집은 내 손으로 다시 일으킬 거예요.” 열다섯 살 엄마 잃은 소녀의 목소리엔 절박함이 묻어났다.

2003년 어느 날, 소녀의 운명을 바꾼 사건이 일어났다. 동생 둘을 데리고 전남 목포로 향하던 엄마의 승용차를 트럭이 덮친 것이다. 이 사고로 엄마는 그 자리에서 숨졌고, 두 동생은 목숨이 위태로웠다.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이었지만 두 동생이라도 살려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슬픔은 잠시, 두 동생 병원비 마련을 위해 월세 15만원 사글세방 신세가 됐다.

11년이 지난 지금, 소녀는 세계 톱랭커 프로골퍼가 됐다. 2006년부터 3년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상금왕으로 군림했고, 2009년에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로 건너가 상금왕에 올랐다. 소녀는 신지애(26)다.

신지애에게 시련은 사치였다. 좌절이라는 단어는 아예 사전에도 없었다. 하체 단련을 위해 아파트 계단을 숱하게 오르내렸고, 드라이버샷 연습을 1000회 이상 반복했다. 퍼팅연습은 7시간 동안 쉬지 않고 할 만큼 억척스럽게 훈련에만 매달렸다. 신지애의 명성은 온전히 지독한 훈련 덕이다.

그런 그가 다시 한 번 전환점을 맞이했다. LPGA투어 시드를 포기하고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투어 도전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비록 슬럼프였지만 지난해 박인비(26ㆍKB금융그룹)의 등장 전까지만 해도 한국여자골프의 가장 확실한 에이스였다. 게다가 프로골퍼라면 누구나 한 번쯤 서보고 싶어 하는 꿈의 무대다. 신지애 자신도 그 무대에 서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가. 어쩌면 11년 전 엄마의 목숨과 바꾼 거룩한 무대였다.

그렇다면 신지애는 대체 왜 LPGA투어 무대에서 스스로 내려와야 했을까. 곤두박질치는 성적이 문제였다. 2009년 LPGA투어 상금왕 이후 2010년 최나연(27ㆍSK텔레콤)에게 상금왕을 내줬고, 지난해는 단 한 번의 우승도 없이 상금순위 22위로 내려앉았다.

더 이상 물러설 길이 없었다. 신지애는 지난해 말 “미국과 일본 대회를 병행하겠다”라는 말을 뒤집고 일본 투어에만 전념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대해 골프팬 사이에서는 이렇다 저렇다 말이 많다. 그러나 이유가 어찌 됐던 신지애의 어려운 결정에는 박수를 보낼 만하다.

지금까지 신지애는 프로골퍼의 교과서였다. 그의 전지훈련 장소와 쇼트게임 연습장, 스윙 비결, 사용 클럽 등은 전부 화제가 됐고, 나 너 할 것 없이 ‘신지애 따라 하기’였다. 그럴수록 목표의식은 희미해졌다. 하지만 신지애는 LPGA투어 시즌 반납과 함께 스스로를 내려놓았다.

이상보다 현실, 허세보고 실리를 찾은 결정이었다. 미국 무대는 대부분의 프로골퍼들에게 꿈이자 기회의 땅이다. 최고 선수들이 모인 최고 상금 대회가 열린다. 그런 만큼 준비 없는 무모한 도전자도 많다. 가족 모두가 전 재산을 털어 도전하는 경우도 있다. 한 번 기회가 주어지면 내려오기도 힘들 만큼 달콤함까지 있다.

목표의식을 잃어가던 신지애에게 자극제가 된 것은 동갑내기 박인비의 돌풍이었다. 박인비는 2008년 US여자오픈 우승 이후 깊은 슬럼프에 빠져 은퇴까지 생각했다. 그가 은퇴 전 마지막 도전 무대로 결정한 곳이 바로 일본이다. 박인비는 짧지만 난해하고 기후 변화가 심한 일본 코스에서 전매특허 쇼트게임을 완성했고, 세계랭킹 1위로 거듭났다.

이제 새 출발이다. 한ㆍ미ㆍ일 3국 여자투어 상금왕 도전이라는 새 목표도 생겼다. 지금까지 이룬 것보다 이뤄야할 것이 더 많다는 것은 신지애 본인이 더 잘 알고 있다. 실력파 신예들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어려운 결정이었다. 미국이냐 일본이냐는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초심이다. 바로 그것이 신지애의 어려운 결정이 빛나는 이유다. 무대만 바뀌었을 뿐 “우리 집은 내 손으로 다시 일으킬 것”이라던 소녀의 간절함은 아직도 변하지 않았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트럼프 관세 위협에… 멕시코 간 우리 기업들, 대응책 고심
  • 韓 시장 노리는 BYD 씰·아토3·돌핀 만나보니…국내 모델 대항마 가능할까 [모빌리티]
  • 비트코인, 9.4만 선 일시 반납…“조정 기간, 매집 기회될 수도”
  • "팬분들 땜시 살았습니다!"…MVP 등극한 KIA 김도영, 수상 소감도 뭉클 [종합]
  • '혼외자 스캔들' 정우성, 일부러 광고 줄였나?…계약서 '그 조항' 뭐길래
  • 예상 밖 '이재명 무죄'에 당황한 與…'당게 논란' 더 큰 숙제로
  • 이동휘ㆍ정호연 9년 만에 결별…연예계 공식 커플, 이젠 동료로
  • 비행기 또 출발지연…맨날 늦는 항공사 어디 [데이터클립]
  • 오늘의 상승종목

  • 11.26 장종료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130,369,000
    • -4.13%
    • 이더리움
    • 4,724,000
    • -0.27%
    • 비트코인 캐시
    • 688,000
    • -4.97%
    • 리플
    • 1,959
    • -5.64%
    • 솔라나
    • 328,900
    • -6.75%
    • 에이다
    • 1,316
    • -10.42%
    • 이오스
    • 1,160
    • -0.17%
    • 트론
    • 275
    • -5.5%
    • 스텔라루멘
    • 639
    • -13.88%
    • 비트코인에스브이
    • 93,300
    • -4.16%
    • 체인링크
    • 23,720
    • -7.45%
    • 샌드박스
    • 874
    • -16.04%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