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료들 책상서 ‘뚝딱’…현실 외면한 ‘졸속 금융상품’

입력 2014-03-06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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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덕꾸러기 된 ‘서민금융상품’…소비자 안찾아도 은행 ‘울며 겨자먹기’로 판매 지속

현 정부가 지난 1년간 공급자 중심으로 내놓은 금융상품들이 국민으로부터 외면을 받고 있다. 금융당국은 실제 예금상품에 가입하고 대출을 받는 소비자 입장과 현실적 조건들을 감안하지 않은 채 내놓은 탁상행정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그 결과, 서민금융 지원 이란 본래 역할도 못한 채 천덕꾸러기 상품이 돼 버렸다.

◇졸속 금융상품 실적 미미 = 고금리와 비과세라는 그럴듯한 구호로 포장된 재형저축은 지난해 3월 서민 재산형성을 위해 17년 만에 부활했다. 출시 당일 29만여 계좌가 몰렸고 3월 한 달에만 140만여 계좌가 신설되는 등 재형저축은 인기 돌풍을 일으켰다.

하지만 재형저축의 인기는 ‘100일 천하’로 끝나고 말았다. 출시 4개월 만에 감소세로 돌아선 올해 1월 말 현재 가입자 수가 175만2297좌로 감소했다. 지난해 10월부터는 1만개가 넘는 계좌가 해지되고 있고 1월에는 해지 계좌수가 2만좌를 넘었다.

재형저축 인기 급랭의 원인은 소비자가 원하는 비과세와 고금리 혜택이 사실상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재형저축은 은행별 최고 연 4.2~4.5%를 제공하지만 3년간 고정금리 이후 변동금리가 적용된다. 이를 보완하고자 재출시된 7년 고정금리 상품은 금리가 연 3.2~3.5%로 다른 예·적금 상품과 비교해 금리 메리트가 없다.

또한 이 같이 낮은 이자 및 비과세 혜택을 위해 7년간 돈을 묶어둬야 하는 점도 판매 부진의 이유다.

여기에 일부 가입자는 세금 폭탄에 직면했다. 은행들이 상품 취급시 소득요건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 조건에 맞지 않는 일부 가입자가 15.4%(주민세 포함)의 이자소득세를 물게 된 것이다.

하우스 푸어와 렌트 푸어 구제를 위한 대표적 서민 대출상품은 전시성 상품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찾는 소비자가 없어도 정부의 지시로 만든 상품인 탓에 은행권은 울며 겨자먹기로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8월과 9월 거액의 전셋값 마련에 허덕이는 세입자을 위해 목돈 안드는 전세대출Ⅱ와 목돈 안드는 전세대출Ⅰ을 한 달 간격으로 출시했다.

하지만 목돈 안드는 전세Ⅰ(집주인 담보대출 방식)은 올해부터 은행별 자율 운영에 맡기면서 출시 2개월 만에 사실상 폐기됐다. 출시 이후 지난해 말까지 실적은 고작 2건(1400만원)에 불과했다.

목돈 안드는 전세대출Ⅱ(임차보증금 반환청구권 양도방식)도 이용자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지난해 10월 7일 기준 KB국민·우리·신한·하나·IBK기업·NH농협은행 등 6대 시중은행에서 취급한 대출은 총 82억7500만원(129건)이다. 신한은행이 전체 실적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개별 은행들은 실제로 10건 안팎의 대출을 취급하는 데 그친 셈이다.

월세대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지난해 금융권을 독려해 내놓은 월세대출 건수는 출시 반 년이 지났지만 손에 꼽을 정도다.

KB국민, 우리, 신한, 하나, 외환, IBK기업은행 등 주요 시중은행 6곳의 올해 1월 말 기준 월세대출 실적은 약 1억4800억원(약 13건)에 불과하다. 월세대출 상품의 올해 실적은 고작 3~4건이다.

정부는 향후 월세 공제 대상과 한도를 확대해 월세 세입자의 혜택을 늘리는 한편 집주인에 대한 세금 부과 의무를 강화하는 등의 대책을 시행할 계획이지만 이 같은 조치가 오히려 월세 공급을 줄여 결국 월세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저소득층 및 장애인 등 취약계층을 위한 보험상품 출시도 줄줄이 예정돼 있다. 하지만 제대로된 수요조사 없이 졸속으로 추진되고 있어 본래 취지에 맞게 제대로 적용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대통령 말 한마디에 이달 출시 예정인 4대악 보험의 경우 보험사의 수요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실제 판매 수요가 있을지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와 함께 장애인 전용 연금보험, 피싱 등 금융사기 보상보험, 불임치료 보험 등도 다음달 출시가 예정돼 있고 저소득층에 자동차 보험료를 할인해 주는 ‘서민우대 자동차보험’의 장애인 가입요건도 지난 1월부터 확대했지만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창조금융 활성화 무색 = 창조경제 활성화를 위해 지난해 은행권에서는 창조금융 상품을 잇따라 출시했다. 하지만 실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미 중소·중견기업 대상 대출 상품을 충분히 공급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요구로 ‘창조 금융’의 이름표만 달고 상품을 내놓은 탓이다.

지난해 4월과 7월 각각 산업통상자원부와 ‘뿌리기술’ 기업 대상 대출상품 출시 업무협약(MOU)을 체결한 우리은행과 기업은행의 대출 실적은 당초 목표액을 크게 밑돌고 있다.

기업은행의 뿌리기술 기업 대출 실적은 이달 4일 현재 목표액 5000억원의 5분의 1 수준인 1094억원(284건)이며 우리은행은 올 1월 말 현재 목표액 2500억원의 절반 정도인 1318억원의 실적을 기록했다.

국민은행은 지난해 4월 예비창업자 지원을 위해 기보에 100억원을 특별출연,‘KB 예비창업자(Pre-Start) 기술보증부대출’을 출시했고 1월 현재 48억원(53좌)의 대출을 실시했다. 또 같은 해 5월에는 ‘KB 기술창조기업 성장지원대출’을 내놨고 1월 현재 실적은 343억원(123좌)이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중소·중견기업 및 창업·벤처기업 대상 금융상품을 이미 출시해 판매하고 있는 상태에서 정부 정책 기조에 맞춰 대출한도 및 금리를 약간 조정해 이른바 ‘창조금융’ 상품을 내놓은 것”이라며 “이에 대상이 상당 부분 겹쳐 수요가 많지 않았고, 또한 은행의 건전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대출을 무작정 시행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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