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대 연봉받으며 경영진 들러리…사고 터지면 로비스트로

입력 2014-03-10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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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단 금융사고에 은행권 상임감사 무용론 확산… 위법·부정 못 잡고 책임지는 일도 없어

1조5000억원 대출사기, 1억건 카드정보 유출 등 최근 잇따른 금융사고에 금융회사 내부통제 시스템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도쿄지점에서 5000억원 부정대출 사건이 발생한 국민은행 감사가 앞으로 은행장 결제서류에 대해 사전감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혀 금융회사 감사의 역할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사실 그동안 금융회사 감사의 역할이 유명무실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금감원, 기재부, 감사원, 국세청 등 힘 있는 부처의 퇴직 관료들이 낙하산으로 내려와 수년간 수억원의 연봉을 받으며 대접받다 보니, 감사 본연의 기능인 견제와 감시를 하기보다 경영진의 거수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 제 기능 못하는 은행 감사 = 지난해부터 이어지는 각종 금융사고로 홍역을 치른 은행권의 구멍 난 감사 기능이 뒷늦게 논란이 되고 있다. 특히 부실대출, 정보유출 등에 모두 연루되면서 총체적 난맥상을 보이고 있는 국민은행 감사가 사전적 감사를 강화하겠다고 밝혀 ‘경영간섭’이란 시각과 ‘독립성 강화’란 시각이 맞서고 있다.

금융권 한 인사는 “최근 금융권에 크고 작은 사고들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금융권의 신뢰가 땅에 떨어진 건 느슨한 내부통제 시스템 때문”이라며 “대부분 은행들이 금감원, 감사원 출신 인사를 감사로 영입하고 있지만 그동안 내부의 위법과 부정을 제대로 걸러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은행권의 내부통제 시스템은 크게 감사위원회, 검사(감사)부와 준법지원부로 구분된다. 감사위원회는 은행에 대한 전체적 감사는 물론 은행장 등 경영진에 대한 감사 권한도 가지고 있다. 별도 조직이며 그 직무가 이사회 의결 및 집행기구로부터 독립돼 있는 게 원칙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치 못하다 보니, 금융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는 대부분의 감사 및 감사위원이 여전히 금융감독원 등 유관기관을 비롯해 감사원 등 정부기관 및 정치권 등에서 내려와 제대로 역할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에서 대관업무를 담당하고 A씨는 “감사의 업무가 책임 질 일이 그리 많지 않다 보니 정부나 금융당국의 지도 방침에 앞서 정보를 미리 수집하거나, 사건·사고가 터졌을 때 최일선에서 사태수습에만 매진하는 로비스트 역할을 하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지난 2011년 저축은행 대란 이후 금감원의 감사추천제 폐지 등 일부 제도 개선이 있지만 감독당국, 정부기관 등 출신 인사가 감사나 감사위원으로 오는 관행은 여전하다.

4대 시중은행을 비롯해 기업, 외환, 농협은행 등의 상임감사 대부분이 감사원, 금감원 등 유관기관이나 관료 출신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감사들은 경영진 견제라는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지난해 3분기까지 심의한 안건 중 부결된 안건은 단 한 건도 없었다.

◇ 감사 업무지침 사문화…거수기 역할 = 금융당국이 은행권에 하달한 감사업무 지침은 사실상 사문화가 됐다는 지적이다. 일부 은행의 경우 감사부에 1급 정보를 차단하고 있을 정도다.

이미 감사가 경영진의 들러리 노릇에 머물거나 대외 로비 창구로 활용돼 온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은행권 사정에 밝은 인사는 “현재 은행권 감사에는 감사원·금감원·재무부 출신자들이 포진하고 있지만 제대로 내부통제를 단속한 사례는 없었다”며 “뒷방에서 고액 연봉에 자족하던 게 그들의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통상적으로 은행 감사에는 사후감사 외에 사전감사권이 부여된다. 업무계획 수립 및 예산의 편성, 업무용 동산·부동산 취득·처분, 경영공시에 관한 사항, 예산의 전용 등에 대해 감사가 최종 결정권자에 앞서 의사결정이 타당한지 검토할 수 있도록 사전감사 대상 업무를 규정해 놓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감사에 일부 사전감사권을 부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이 사전감사권을 행사하면 웬만한 중요 경영사항에 대해 감사가 미리 들여다볼 수 있지만, 지금까지 형식적 감사로 부실을 잡아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국민은행 감사권 확대는 감사위원회가 은행장의 모든 결재사항을 미리 보겠다고 감사위원 직무규정을 개정한 데 있다.

금융권에선 이를 두고 긍정적 측면에서 경영에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감사의 책임 소재가 명확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반면 국민은행 조치는 매우 이례적이란 평가다. 일반적으로 시중은행 감사 업무지침은 사전감사 대상으로 분류된 주요 업무에 대해서만 한정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사전감사 항목을 따로 규정한 것은 은행의 신속한 의사 결정을 위한 조치인데 국민은행의 조치는 이런 규정의 취지에 맞지 않다”고 말했다. 국민은행 상임감사가 총대를 메긴 했지만 금융권 전체로 확산되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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