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늘한 기운이 감도는 철문을 열고 지하 계단을 내려갔다. 대형 유리창이 펼쳐져 있고, 그 너머엔 흰 가운을 입은 십여 명의 의사들이 분주히 오갔다. 장갑을 낀 그들은 각각 수술용 톱, 메스를 쥐고 머리를 열어 뇌를 꺼내는가 하면, 침대 위에 올라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복부부터 목까지 갈라진 망자의 몸 내부는 부검의에 의해 구석구석 살펴졌다. 판단은 즉각 이루어졌다. 더욱 신중해야 할 부분이 생기면, 따로 꺼내어 검토했다. 이미 식은 지 오래인 장기는 한 켠에서 도마처럼 생긴 널조각 위에 놓였다.
최근 언론진흥재단 교육을 통해 직접 방문한 서울 양천 신월동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현장이다. 국과수에 부검 진행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된 건 불과 몇 년 전이었다. 과거엔 유가족은 물론, 형사와 기자까지 바로 곁에서 지켜봐야 했다. 현재 따로 마련된 참관실에는 대형 유리창 위로 다양한 각도로 실시간 촬영되고 있는 CCTV 화면이 놓여 있다. 이를 지켜보는 가운데 탄식도 수차례 쏟아졌다.
국과수가 진행하는 부검은 망자에 대한 도의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임은 물론이다. 그러나 의문점이 남은 채로 세상과 인연이 끊어진 이의 시신이 헤쳐지는 모습을 보자니 숨 쉬고 있음에 겸허함과 허망함을 동시에 느끼게 했다.
죽음에는 갖가지 이유가 있을 테지만, 전과 달리 최근에는 세상을 까무러치게 한 소식들이 줄이었다. 고유의 공동체 의식은 줄고, 개인주의가 퍼진 까닭에 이웃, 노인의 고독사는 증가했다. 또, 부양 능력의 한계로 한날 한시 목숨을 끊는 가족 단위의 자살도 유난스럽게 잦았다. 최근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송파 세 모녀의 자살은 물론, 지적장애 2급과 지체 장애 5급이라는 중복 장애를 가진 딸 그리고 네 살배기 아들과 함께 번개탄을 피고 죽음을 선택한 경기 광주의 가장 등이 그 예다.
더욱 자극적인 것을 쫓는 사람의 심리를 이용한 온라인에선 누구나 맥락이 거세된 채 궁지로 내몰린다. 특히 공인이란 이름이 덧씌워진 연예인은 국민의 알권리란 이유로 들쑤셔진다. 최근 만난 이훈은 “최근 세태에서 사람을 죽이는 것은 글과 인터넷”이라는 견해를 드러냈다. 미디어 속에서도 마찬가지다. 존중되지 않는 프라이버시를 적나라하게 담아낸 할리우드 명화 ‘트루먼 쇼’를 연상시키는 예능프로그램의 난립 속에 안타까운 죽음을 선택한 일반인 출연자도 생겨났다. 누구나 죽음은 가깝게 다가올 수 있다.
씁쓸한 소식을 알렸던 세상은 언제 그랬냐는 듯 부풀었던 꽃망울을 터트리고 곧이어 파릇한 기운으로 가득할 것이다. 봄을 해원(解寃)의 시기로 만들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