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 저축은행 부실 사태로 총 27곳의 저축은행이 문을 닫았다. 이후 2년여 동안 구조조정을 거쳤다. 하지만 신뢰도가 추락한 저축은행 업계가 느끼는 체감도 아직 영하권이다. 업계 신뢰도가 추락한 상황에서 수익구조도 악화돼 사실상 존폐위기에 봉착했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우량고객은 시중은행에 빼앗기고 제1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지 못하는 5등급 이하 신용대출 수요는 대부업체에게 다 빼앗겨 더 이상 먹거리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저축은행 업계에 불어닥친 위기를 극복하고 안정적으로 커 나가기 위해서는 ‘지역밀착형ㆍ관계형 금융’이라는 저축은행 본연의 장점과 가치를 극대화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고위험 자산운용에 치중해 서민ㆍ중소기업 등 고유의 영업기반을 상실해선 안 된다는 얘기다.
◇저축은행 위기 원인은 ‘외형 부풀리기’ = 저축은행 부실을 근본적으로 초래한 것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이다. 높은 비용으로 자금을 끌어모았지만 자금 운용의 적정한 수익성은 확보하지 못했다.
저축은행은 위환 위기 이후 안정된 자금 조달 수단이 부족해 고금리 수신 정책으로 외형을 부풀려왔다. 중산층 이상을 중심으로 예금이 몰리면서 저축은행 자산 규모가 급속히 불어났다.
저축은행이 제1금융권보다 높은 수신 금리를 제공하면서도 예금보험제도의 적용으로 예금자들을 보호해주기 때문에 자금을 끌어 모으기 유리한 측면이 있었다.
문제는 관리 능력에 비해 외형 자산이 너무 빨리 늘어난 점이다. 자금 운용 측면에서 당시 호황을 보인 부동산 관련 고위험 기업 대출에 집중하게 되면서 저축은행 본연의 임무인 서민 신용대출 규모는 줄어들었다.
또한 상대적으로 위험이 높은 분야에 대출을 집중시킨 상황에서 금융환경이 불안해지자 저축은행은 경영 위기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은행권을 이용하기 곤란한 개인사업자나 중소기업 담보대출과 같이 지역에 밀착해 저축은행이 잘할 수 있는 시장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많은 자산을 다 운용하려고 욕심을 부리다보니 떼일지 안 떼일지 모르는, 부실 위험이 높은 곳에 투자하게 되는 것”이라면서 “덩치를 무조건 키우기보다 자산 규모를 적절하게 줄여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관계형 금융’ 활성화 먼저 = 최근 서민들의 생계형·무담보 신용대출 수요가 계속 증가하고 있지만 금융권의 저신용자를 대상으로 한 적정금리 수준의 신용대출 공급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서민들의 금융소외가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서민들의 금리 부담이 높아지자 정부가 다양한 서민우대금융 제도를 통해 여신시장 공백을 보완하고 있는 실정이다.
저신용자를 대상으로 하는 서민금융은 본질적으로 신용 위험도가 높아 신용평가시스템과 위험관리 역량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으면 신용대출 금리가 높아지는 한계를 지닌다.
저축은행은 개인신용평가시스템 및 사후 모니터링이 부실한 곳이 대부분이고 독립적인 리스크관리 담당부서 운영도 취약하다.
업계는 강화된 건전성 기준에 맞추려다 보니 부실 가능성이 큰 저신용자 소액대출을 꺼리게 되고 과학적인 리스크 관리 기법이 없어 연체율이 높은 서민 소액대출을 기피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저신용 서민에 대한 안정적 신용공급 확대를 위해서는 개인신용평가와 사후적인 신용위험 관리 역량 강화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신용대출의 위험 분산과 중장기 고객군 확보를 위해 지역 서민대상 소액신용대출을 확대하고 지역밀착형 금융서비스 공급을 강화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실제 경영성과가 우수한 저축은행들은 임직원이 인근 지역내 고객 및 담보가치 등에 대한 정보를 수시 파악해 여신 심사분석에 대한 정확도를 높이고 여신 부실화에 조기 대응하는 등 자발적으로 지역밀착형 금융을 강화하고 있다.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는 “저축은행이 먹고 살 길은 자산 2000억원 안팎으로 본점과 지점 하나 정도 운영하면서 재래시장 소상공인이나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대출업무를 하는 것”이라면서 “은행도 카드사도 근접하기 어려운 특별한 수요가 있으므로 건실하게 경쟁력을 키워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과거 저축은행의 부실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대출 등 고수익·고위험 여신 관행에 크게 기인했다. 하지만 지금도 부실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건전성 기준의 해석 및 적용과 관련해서도 감독기관과 업계 사이에서 이견이 많다. 저축은행 업계는 지속적으로 건전성 규제 완화 등을 요구하고 있지만 금융당국은 불가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저축은행이 부실 이미지를 탈피하고 대국민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부단한 건전성 제고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저축은행 ‘부실자산’ 해소 숙제 = 업계의 자구노력에 따라 건전성은 개선되는 추세에 있다. 하지만 저축은행의 부실채권(고정이하 여신) 비율이 2011년 저축은행 사태 이후 20% 수준을 지속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해 9월 말 저축은행의 부실채권은 6조3000억원으로 전체 여신 29조1000억원의 21.8%에 달한다. 이는 다른 업권 평균인 2.2%에 비해 매우 높은 수준이다. 신용협동조합(5.2%)이나 여신전문금융회사(2.5%)보다도 많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은 지난해 12월 말 부실채권 비율 기준으로 저축은행들이 감축 목표를 설정해 반년마다 이행 실적을 제출하도록 했다.
일반 부실채권 비율이 20%를 넘는 저축은행은 매년 반기마다 5%포인트 이상씩 감축해야 하며 20% 이하인 저축은행은 최소한 10%까지 감축하도록 했다. 이는 2011년 저축은행 사태 이전 수준에 해당한다.
PF대출 부실채권은 오는 2016년 12월 말까지 의무 여신 비율의 위반 여부, PF대출 만기 등을 고려해 자체 감축 목표 비율을 설정하도록 했다. 저축은행이 주로 부실채권(NPL) 투자나 대부업체 대출로 여유자금을 운용하고 있는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지난해 9월 말 기준 NPL 관련 투자액은 9151억원으로 전년(6924억원) 대비 51.9% 증가했다. 대부업체에 대한 대출 잔액은 지난해 12월 말 기준 1조5431억원으로 저축은행 총 여신(29조원)의 5%가 넘었고, 일부 저축은행은 10%를 초과하기도 했다. 금융감독원은 대부업체에 대한 대출은 총 여신 대비 5%와 300억원 중 적은 금액 한도 내로 하도록 지도하고 있다.
◇급락하는 수익성, 경쟁력 회복 필요 = 구조조정 작업을 거치면서 일정 부분 업계 관행이 개선되긴 했지만 아직은 체질 개선을 위해 갈 길이 멀다. 대손충당금 적립 확대, 부동산 PF 매각 등에 따른 손실처리 비용이 급증하면서 수익성 역시 급락하고 있는 것이다.
예금보험공사에 따르면 손실폭이 축소되고는 있지만 적자 역시 여전하다. 2013회계연도 1분기(7~9월) 중 저축은행 업권(91개사)의 당기순손실 규모는 1124억원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649억원 줄어든 것이다.
당기순손실 발생 주요 원인은 일부 대형 저축은행의 부동산 관련 여신의 대손 비용 발생 때문으로 분석됐다. 현재도 많은 저축은행이 PF대출 충당금 적립 등 부실처리를 진행하고 있어 신규 수익원 발굴에도 애로가 있는 실정이다. 91개 저축은행 중 적자 저축은행 수는 37개사였다.
계속 영업 77개사 기준으로 볼 때 이자수익은 6771억원으로 지속적인 하락 추세를 나타내고 있다. 예보 관계자는 “기존 여신의 연체율 상승에 따라 이자수입이 지속적으로 감소한 반면 이를 상쇄할 우량 여신 증가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면서 “향후 대부업 최고금리 인하 등 개인신용대출 상품 시장의 경쟁 심화로 수익창출 환경이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저축은행 업계가 획일적인 고금리 적용 대출영업 방식에서 벗어나 신용도에 따른 중금리 개인신용 대출상품을 적극 개발하고 지역 중심의 관계형 영업 강화를 통해 장기 안정적 여신거래처를 지속적으로 발굴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저축은행 부실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정부 지원도 중요하지만 자체 경쟁력과 수익성을 회복하기 위한 자구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금융당국은 신용등급이 낮은 저신용자의 대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지방은행과 제2금융권에 대해서도 저신용자 신용평가시스템을 개발, 활성화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저축은행의 경우 신용평가 활용도 제고를 위해 ‘저축은행 여신업무 선진화 태스크포스(TF)’를 통해 업계 공동의 표준 신용평가모형 개발을 올 상반기 중 마무리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현재 금융시장에서 규모가 미미한 20%대 중금리 상품으로 서민금융의 틈새시장을 개척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저축은행이 대출금리를 낮춰 주요 고객층이 현재 신용등급 7등급 이하에서 6등급 이하로 확대되면 고객층도 전체 고객의 13.9%에서 25.3%까지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