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현장을 가다] 쉼없이 쏟아지는 물품 분류…세관 공조 ‘마약과의 전쟁’

입력 2014-03-21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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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 국제특송 인천공항영업소…신속한 세관 통과 업무 처리는 ‘생명’

▲산업부 권태성 기자(오른쪽)가 한진 서울국제지점 인천공항영업소에서 해외특송으로 도착한 물품분류작업을 하고 있다. 분류된 물품은 엑스레이검사기계를 통과하게 된다. 최유진 기자 strongman55@

커다란 주머니, 북극해를 형상화한 가슴팍 로고, 털이 풍성한 모자. 지난 겨울 ‘강남 패딩’으로 불리며 국내를 휩쓸고 간 ‘캐나다구스’의 열풍은 대단했다. 비싼 가격에도 이 상품은 물량이 부족할 정도로 잘 팔렸고, 유통가는 물량 확보에 혹은 유사 상품 만들기에 분주했다. 다른 한편으로 캐나다구스 때문에 더 바빠진 곳도 있다. 바로 국제특송을 다루는 한진이다.

지난 13일 인천 중구 운서동에 위치한 한진 인천공항영업소를 찾았다. DHL, 페덱스, UPS 등 해외 유수 국제특송업체들이 즐비한 곳에 한진 영업소가 있다. 비행기 격납고처럼 생긴 거대한 물류창고로 들어서자 수천개에 이르는 물품이 선반 위에 즐비하게 놓여 있었다. 마치 책 대신 박스로 가득한 도서관 같았다. 국제특송은 국내 택배업무와 비슷하다. 다만 국경을 지나오는 것인 만큼 일반 택배업무에 세관 과정이 하나 더 추가된다고 보면 된다.

◇쏟아지는 물량… 신속한 세관 통과가 생명= 미국에서 보내온 화물이 도착했다. 해외 각국에서 보내온 물품은 항공물류컨테이너(ULD)에 담겨 이곳 인천공항영업소에 도착한다. ULD는 자세히 보면 모양이 정사각형이 아닌 사다리꼴 모양을 하고 있다. 마치 정사각형에서 한쪽 모서리를 칼로 벤 듯한 생김새다. 정사각형이 아니라 물품을 많이 못 실을 것 같은데, 이유를 알고 나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비행기는 객석(위)과 화물칸(아래)으로 구성된다. 비행기의 둥그런 생김새 특성상 ULD를 많이 싣기 위해서는 둥그렇게 생긴 비행기의 모양과 딱 맞아떨어지는 ULD를 실어야 한다. 비행기 하단부의 모양에 딱 맞춰 퍼즐을 끼우는 셈이다.

이렇게 들여온 ULD는 지게차에 실려 작업장 안으로 옮겨진다. 이때부터 본격적 특송 세관 업무가 시작된다. 컨베이어벨트 한쪽에 서서 물품 조회 단말기를 들고 바코드를 찍기 시작했다. 바코드를 찍자 단말기에서 음성 안내가 나왔다. ‘일반’은 위쪽, ‘목록’은 아래로 구분하는 작업이다. 쉼 없이 쏟아지는 특송 박스를 혼자 분류하기란 여간 바쁜 게 아니었다. 두더지 잡기 게임을 하듯 손과 눈은 분주하게 움직여야 했다. 굉장히 빠른 속도로 일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옆에 있던 직원이 “한 시간에 1200개 물량을 이렇게 구분한다”고 했다. 귀를 의심하며 직원에게 물었다. “몇 명이 함께 작업하나요?” 돌아온 대답은 놀라웠다. “저 혼자 합니다.”

이 작업은 엑스레이 검사대를 통과시켜야 할 물품과 그렇지 않은 물품을 구분해 세관을 통과시키는 일이다. 검사목록은 컴퓨터와 세관원이 지정해 상세하게 검사하고, 일반은 그냥 통과시킨다. 보통 목록 데이터는 불법 마약류 등 의심 품목을 숨길 만한 물건들로 구성돼 있다. 파견 세관원 한 명과 특송업체 직원 한 명이 함께 엑스레이를 들여다보며 의심되는 물건들을 샅샅이 뒤진다.

▲권태성 기자(왼쪽)가 세관 직원들과 함께 의심 물품을 해체해 마약류 등의 반입 여부를 검사하고 있다. 최유진 기자 strongman55@

◇특송업체·세관 공조… 불법 마약류 반입 빈틈 없다= 이렇게 엑스레이를 통과하더라도 의심되는 물건은 작업장 한쪽에 마련된 곳에서 해체된다. 이 작업 역시 세관원과 직원이 동행해 적하목록을 일일이 대조하고 통과시킨다. 기자는 세관원, 직원과 함께 혹시 모를 불법 마약류 반입을 위해 옷가지부터 편지봉투까지 샅샅이 뒤졌다.

“마약가루를 물티슈나 봉투 안에 숨기는 경우도 있어 꼼꼼하게 대조해 봐야만 해요.” 파견 세관원의 설명이다. 심지어 허브와 마약을 갈아서 티팩에 넣는 합성 마약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한다. 한진 인천공항영업소에서는 지난해에만 8건의 마약 밀수 시도를 적발했다.

의심 물품을 뜯기 시작하자 정말 다양한 특송 물품이 나왔다. 의류, 플랫슈즈, 구두는 가장 흔한 품목이다. 봉투 안에서는 위임장이 발견되기도 했고 할머니가 손자에게 보낸 장난감과 편지도 나왔다. 보내는 사람들은 포장 물품이 이렇게 뜯어지는 사실을 알면 속상할 일이지만, 마약상들이 갖가지 방법으로 국내에 마약을 들여오려 하다 보니 꼼꼼한 확인은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최근에는 고객의 오해를 풀고자, 포장 테이프를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세관’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것으로 바꿨다.

세관 과정에서 마약류만 적발하는 것은 아니다. 세금을 안 내기 위해 물건값을 속이는 경우도 단속 대상이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해외 직구(인터넷을 통해 해외에서 제품을 직접 구입하는 것)로 구입한 617달러 화장품을 150달러로 거짓 신고한 사례를 적발했다. 물론 세관에서 압수 조치를 하고, 구매자는 물건을 되찾기 위해 세관에 다시 정정된 가격으로 신고해야 한다.

◇국제특송, 알고 보면 시대가 읽힌다= 이곳에서 하루 처리되는 특송은 2000여건에서 많게는 8000여건에 이른다. 한 달 평균으로 환산하면 5만~7만건. 국제특송은 해를 거듭하면서 이용 객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최근에는 전자상거래의 증가로 특송 물량이 크게 증가했다. 인천공항세관에 따르면 지난해 해외 인터넷 쇼핑을 통한 국제특송화물 반입량은 1000만건을 넘어섰다. 전년 대비 40% 증가한 물량이다. 해외 인터넷 쇼핑액 또한 9억3800만 달러로 2012년 대비 46% 증가했다. 해외 직구가 늘어나면서 생긴 현상이다. 또 FTA가 발효되면서 20만원대 이하의 물품 구매도 크게 늘었다.

특송 품목을 보면 유통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고 한다. 차정호 한진 서울국제지점 인천공항영업소장은 “과거에는 호주·뉴질랜드산 분유가 많이 들어오다 박테리아 오염 파동 이후 일본산 분유가 많이 들어왔다. 그러나 일본발 방사능 공포가 확산되면서 최근에는 독일산 분유가 많이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반나절이지만 수많은 특송 박스와 씨름을 하고 영업소를 나섰다. 이곳은 국경과도 같다는 생각을 했다. 시장과 사람을 병들게 할 물건들을 걸러내고, 올바른 유통구조의 울타리 역할을 하는 곳. 그곳이 바로 국제특송업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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