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다운 음악이 사라진 가요계를 상상해봤나 [유혜은의 롤러코스터]

입력 2014-03-31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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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봄 음악팬들의 마음은 어느 때보다 즐겁다. 이승환 임창정 이선희 이은미... 이른바 ‘믿고 듣는’ 가수들이 짧게는 2년, 길게는 5년 만에 신보를 냈다. 이소라 박정현 박효신 등도 본격적인 컴백을 앞두고 있다. 아이돌 음악의 자극적인 사운드로 점철됐던 가요계는 오랜만에 풍성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가수들의 안색은 마냥 밝지 못하다. 몇 년에 걸쳐 공을 들인 음반을 가지고 나왔지만 자신의 노래를 알릴 방법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당장 이들의 노래를 들려줄 변변한 음악 방송 프로그램조차 없다. 음악 순위 프로그램은 이미 오래전부터 아이돌이 장악했다. 지상파에 남은 음악 전문 프로그램은 KBS의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유일하다. 시청률의 압박으로 ‘음악여행 라라라’를 폐지했던 MBC는 최근 ‘음악여행 예스터데이’를 신설했지만 신곡이 아닌 추억의 노래를 리메이크해서 들려주는 프로그램이다. SBS는 ‘유앤아이’ 폐지 이후 순위 프로그램인 ‘인기가요’만 갖고 있다. 케이블 음악 채널도 상황은 마찬가지이다. MBC뮤직은 지난해 ‘리모콘’을 폐지했고, 엠넷은 서바이벌 프로그램과 토크쇼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가수들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돌파구를 찾을 수밖에 없다. 데뷔 30주년을 맞이한 이선희는 KBS ‘불후의 명곡’에 전설로 출연했고, SBS ‘힐링캠프’ 방송을 앞두고 있다. 많은 가수들이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음악 대신 입담을 자랑한다. 미디어에 노출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다. 가수가 음악이 아닌 다른 것으로 대중의 눈길을 끌어야 하는 현실이 씁쓸하다.

노래만 좋으면 대중이 알아서 듣지 않겠느냐고? 순수함을 넘어 어리석은 생각이다. 음원 중심으로 돌아선 가요계는 ‘패스트 뮤직’ 시대를 만들었다. 음반을 소장해야 음악을 들을 수 있던 과거에는 그만큼 음악의 생명력이 길었다. 좋아하는 가수의 음반을 손꼽아 기다리던 애틋한 마음만큼 한 곡 한 곡에 대한 각별함이 컸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음원을 다운로드 받는다는 사람도 얼마 되지 않는다. 스트리밍이란 편리한 서비스를 이용해 한 번 들어보고, 질린다 싶으면 다른 노래로 갈아타면 그만이다. 이마저도 대부분은 일일이 찾아듣는 대신 음원차트에 100위권에 노출된 곡을 ‘전체듣기’ 버튼 한 번 누르는 것으로 만족한다. 아무리 심혈을 기울여 만든 노래라도 음원 출시일에만 반짝 빛을 보고 사라지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수많은 기획사들이 마케팅에 목숨을 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차트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는 일이 중요하다보니 ‘음원 사재기’라고 하는 부적절한 방법마저 생겨났다.

시간과 노력, 자본을 아낌없이 투자해 만든 앨범이 순식간에 생명력을 잃는 모습을 맞닥뜨리는 가수의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런 좌절을 맛보게 되면 다음 앨범을 준비하는 것을 두려워하게 될 수밖에 없다. 그 피해는 단지 가수만의 것이 아니다. 음악다운 음악을 하는 가수가 점차 사라지면 자연스럽게 대중은 다양한 음악을 들을 기회를 잃게 된다.

어느새 가요계마저 시장 논리로 점령당하기 일보 직전이다. 이선희가 사라진 가요계, 조용필이 사라진 가요계는 너무 참담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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