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혁의 세상박론] 인사무색(人事霧塞)

입력 2014-03-31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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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대학 동기들과의 술자리에서 한 동기가 직장을 그만뒀다고 털어놨다. 9년이나 다닌 첫 직장인 데다 처자식도 있어 다들 고개를 갸우뚱했다. 내 집 마련을 위해 죽을 둥 살 둥 벌어도 시원치 않은 마당에 새 직장도 잡지 못한 터였다.

그가 직장을 그만 둔 사연은 이랬다. 처음 회사에 들어왔을 때부터 갈등이 잦던 선배가 있었다. 둘 다 연차가 낮았을 때는 다툼이 있어도 두루뭉술 넘어갔다. 그러다 5년차가 넘고, 10년차가 되가니 서로 다른 줄을 탄 이들이 시새우면 좀체 봉합이 되지 않았다.

사단은 올 초에 났다. 회사 정기인사 때 동기가 충성했던 임원이 물러나고 새 임원이 오자 물과 불의 관계였던 선배가 직속 상관으로 왔단다. 그 뒤 늘어나는 업무지시, 스트레스, 인간적 관계에 대한 좌절감, 열패감…. 아내와 상의도 하지 않고 사표를 던진 그는 연신 술잔을 들이켰다.

정부, 기업 등 우리사회를 이루는 주요 기관들의 정기인사가 마무리되고 있다. 항상 인사 시기 때마다 ‘인사는 만사(萬事)’라는 명구가 떠오른다. 그러나 근래 인사는 그 만사가 도대체 누구를, 무엇을 위한 것인지 수없이 되묻게 한다.

이 같이 되뇌인 이유는 딱 하나다. 인사 배경에 대한 설명이 충분치 못했다. 가뜩이나 물 밑에서 이뤄진 인사인데 설명조차 판에 박힌 어구 뿐이었다. 듣는 이는 ‘다른 배경이 있을 것’이라는 합리적 유추를 할 수 밖에 없다.

인사 배경은 알아야 할 하나의 권리다. 조직의 구성원, 회사의 주주, 국가의 국민이란 이유에서 ‘누가 어떤 자질로 이 자리에 적합했는지’는 알아야만 한다.

물론 모든 인사가 능력과 자질만을 고려하지는 않는다. 친분과 지연, 학연, 또 다를 인연이 인사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관계 사회에 매달리는 인간이기에 어찌 보면 당연하다. 모델 홍진경이 최근 종영한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 출연하면서 절친한 개그맨 조세호와 남창희를 함께 끌고 들어간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인사에 영향을 미친 모든 요소를 공개해야 한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대학 시절 처음 인연을 맺은 아무개는 자신의 전공 분야의 성과가 남 다르다”는 식으로 말이다. 보도자료에 한 줄 넣는 정도로 납득을 요구하기에는 세상은 참 많이도 얽혀있다. 감출 사실과 알릴 내용을 선별하면 인사의 공정성을 두고 말이 끊이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인사에 대가가 따르지 않기 위해서도 배경 설명은 지나칠 정도로 많아야 한다. 누군가 꽂아준 인사의 당사자라면 자신을 승진시킨 윗사람에게 보은을 할 수 밖에 없다. 일을 열심히 해 갚을 수도 있겠지만 때론 부당한 청탁이 있다. 이 때 쓰다는 것을 알면서도 삼키는 비릿함, 겪어본 이들에게 듣는 공통된 견해다. 줄타기에 실패해 회사를 그만 둔 대학 동기는 고작 9년차 직장인이었다.

포스코가 수장이 바뀐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런 저런 기업들을 인수할 것이란 소문이 돌고 있다. 인사에는 대가가 따른다. 그 대가 때문에 배탈이 나는 일, 다신 없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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