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돌 맞은 산업은행, 明과 暗]패전처리•구원등판… 무리한 기업인수로 ‘적자의 늪’

입력 2014-04-09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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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건설•KDB생명 손실 영향 ...지난해 1조4474억 당기순손실

KDB산업은행의 역사는 국내 대기업의 구조조정 역사와 궤을 같이한다. 국제통화기금(IMF) 사태와 글로벌 금융위기 등 국내외 금융시장 불안으로 국내 대기업들이 자금 위기에 처할 때마다 정책금융기관의 맏형으로서 시장 안전판 역할을 톡톡히 해 왔다. 하지만 대내외 경기여건 악화로 기업들의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가 이어지면서 산은은 13년 만에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했다.

올해 정책금융공사와 재통합을 통해 정책금융기관으로서의 산은의 역할이 더욱 강화되는 만큼 금융시장 위기를 타개할 최후의 보루로서 지속적으로 이어 나갈 수 있는 역할 재정립이 필요한 시점이다.

◇ 기업 구조조정 최후 보루 산은= 산은은 지난 10년간 우리 경제의 위기 상황마다 기업의 생명줄 역할을 해 왔다. 지난 1997년 외환위기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면 산은은 당해 10월 이른바 ‘기아사태’로 법정관리행에 처한 기아자동차에 대출금(약 3000억원)을 출자로 전환하고 채권금융단과 협의해 기아차 및 협력업체들에 대한 자금 지원을 실시했다.

이후 1999년 대우그룹 해체로 산은은 대우건설과 대우조선해양을 떠안았다. 대우건설은 2006년 금호아시아나그룹을 거쳐 2010년 산은(최대주주·KDB밸류 제6호 유한회사·50.75%)에 인수됐고, 대우조선해양은 1999년 8월 워크아웃 신청 후 2년여 만인 2001년 8월 정상화됐다. 정상화 과정에서 산은은 출자전환을 통해 대우조선해양 최대주주(31.5%)로 올라섰다.

이어 2004년 5월에는 카드대란으로 부실화된 LG카드의 자금관리 및 경영정상화를 위한 공동관리인 역할을 하며 LG카드 매각을 주도했다.

금호산업, 팬택, STX그룹 정상화는 현재진행형이다. 국내 휴대전화 제조업체 3위인 팬택은 지난달 25일 워크아웃 졸업 2년 2개월 만에 산은에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산은은 구조조정을 통한 경영정상화 이후 인수자를 찾는다는 방침이다. STX그룹은 지난해 3월부터 자율협약 등을 체결하고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며 동양그룹과 쌍용건설은 법정관리에 돌입한 상태다.

이처럼 산은은 국내 대기업의 주채권 은행으로서 해당 기업에 대한 신규자금 지원, 출자전환, 자산매각 등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하며 금융시장과 사회·경제적 파급력을 최소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특정 기업 및 산업에 편중한 구조조정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큰 대기업의 경우 계열사 인수 및 과도한 자금 지원 등 기업을 살리려는 적극적 노력을 하는 반면 중소·중견기업은 채권 회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산은이 올해 정금공과 4년 만의 재통합을 통해 기업 구조조정의 핵심 금융기관으로 거듭나는 만큼 형평성 있는 역할 재정립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 환갑 맞은 산은, 13년 만에 첫 적자= 역할 재정립과 함께 건전성 관리도 산은이 해결해야 할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대기업 파산이 미치는 사회·경제적 파급력도 크지만 산은 부실이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더욱더 심각하기 때문이다. 국책은행인 산은의 부실은 국가가 메워 주므로 사실상 산은의 적자폭이 늘어날수록 국민의 혈세가 낭비되는 것이다.

올해 창립 60주년을 맞는 산은은 외환위기 이후 최대의 손실폭을 나타냈다. 연이은 기업 구조조정으로 충당금 적립이 많았고, 과거 구조조정 과정에서 인수한 대우건설과 KDB생명이 큰 손실을 냈기 때문이다.

이에 지난해 산은은 1조4000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대손충당금이 1조7731억원으로 전년(7825억원)과 비교해 2배 이상(9906억원) 급증했다.

정책금융기관의 맏형으로서 부실기업 지원의 필요성은 존재하지만 이는 산은의 역할 중 일부분일 뿐이다.

산은은 기업 구조조정 업무 외에도 창업 초기 기술·벤처기업에 대한 투자, 해외시장 개척, 민간 금융기관이 시도하기 어려운 업무 개척 및 시장 조성 등 국내 업체들이 대내외적으로 활발한 기업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주도해야 한다.

하지만 정상화 가능성을 제쳐두고 무리해서 기업의 부실을 온전히 떠안는, 기업 구조조정 업무에 몰두하고 있는 것이 현재 산은의 현주소다.

2001년 총자산 82조원에 불과했던 산은은 이후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대우증권, 대우건설, 금호생명(현 KDB생명), 대우조선해양 등을 잇따라 인수, 몸집을 불리면서 지난해 총자산 173조8700억원으로 2배 이상 확대됐다. 물론 지난 정권 민영화를 전제로 비금융 자회사를 적극적으로 늘린 탓도 있지만 부실 기업의 계열사를 과도하게 편입해 온 건 사실이다.

현재 자율협약 및 워크아웃 체결 이후 구조조정이 진행 중인 기업이 다수이며 앞으로도 동부그룹과 현대그룹 및 한진해운 등 유동성 위기 기업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는 상황에서 산은의 체질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다.

홍기택 산은지주 회장 겸 산은행장도 창립일 기념사를 통해 “정책금융은 손실이 발생해도 무방하다는 과거의 패러다임은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면서 “지속 가능한 정책금융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감내할 수 있는 리스크 수준을 파악하고 통제·관리할 수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 정확한 리스크 분석에 기초한 의사결정이 가능토록 시스템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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