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살 A씨는 중학교 시절 인기 걸그룹의 한 멤버에게 매일 같이 팬레터를 보냈다. 그의 편지에는 ‘00에게 보내는 첫 번째 편지’란 부제가 달렸다. 그렇게 100통의 편지를 보낸 A씨는 단 한 번의 답장도 받지 못하고 제 풀에 지쳤다. 나이가 들어 연예계에 종사하게 된 그는 놀라운 사실을 알았다. 하루 수백, 수천통의 팬레터는 모두 소속사, 매니저에 의해 관리되고 폐기처분된다는 것이었다.
팬들의 정성이 외면 받고 있다. 최근 샤이니 종현에게 보낸 해외 팬의 선물을 MBC 한 작가가 가로챘다. 해당 작가는 SNS를 통해 “폴란드에서 샤이니 종현 팬이 ‘MBC 주소 샤이니 종현 앞’이라고 선물을 보내왔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종현이와 동명이인인 우리 부장님 앞으로 배달됐고, 간식거리는 종현이가 아닌 작가들 뱃속으로 들어갔다”고 말했다.
MBC에서 자사 라디오 ‘푸른밤 종현입니다’ DJ로 있는 종현에게 폴란드 팬의 선물을 전달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문제는 게으름이 아니다. 선물을 전달해야겠다는 기본적 인식조차 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비일비재한 팬레터, 선물 등은 이제 스타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잠잘 시간도 없는 살인 스케줄을 소화하며 돈을 벌어야 하는 그들이 선물을 보며 감상에 젖을 시간도 없어 보인다. 최근 공항에서 팬의 선물을 외면한 배우 이종석과 매니저의 모습은 이 같은 실상을 잘 반영하고 있다.
‘아이돌’은 그야말로 우상이다. 팬들은 아이돌과 사적으로 만날 수 없고, 서로 사랑하지 못하지만 바라보는 것만으로 행복하다. 그들은 공항, 길거리 등에서 하루 이상의 시간을 기다리며 1~2초 정도 아이돌과 만난다. 짧은 눈인사에도 이들은 눈물을 흘린다. 그렇기 때문에 ‘순수한 사랑’이 가능하다. 이들의 순수함이 매니저, 기획사, 방송 관계자에 의해 방해받는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스타를 향할 것이다.
이제는 일방적인 팬레터를 보내던 과거의 팬덤 문화에서 탈피해 조직적, 사회적 팬덤 문화가 형성돼 있다. 팬덤은 K-POP의 한류 열풍과 우리 드라마, 영화, 스타의 해외 진출에도 가시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 실정이다. 중앙대 이나영 사회학과 교수팀은 ‘스타를 관리하는 팬덤, 팬덤을 관리하는 산업-2세대 아이돌 팬덤의 문화실천의 특징 및 함의’를 통해 팬이 스타의 성공과 미래를 책임지는 ‘엄마’ 역할을 하며 기획사와 주변 관계자는 ‘아빠’라고 지칭, 유기적 협력관계를 강조했다. 더 이상 ‘아빠’들의 이기심과 무책임한 행동에 ‘엄마’들의 내리사랑이 방해받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