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서민들이 종로를 지나다니는 고관대작들의 말을 피해(피마·避馬) 음식을 먹던 피맛골은 2000년대 초반까지도 직장인들로 불야성을 이뤘다. 어둠이 내리면 피맛골은 연탄불 위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는 ‘돼지 껍데기’와 ‘이면수어’ 안주로 구수한 이야기꽃이 만발했다. 막걸리병이 늘어날수록 “이모, 여기 돼지 껍데기 추가요!” 소리가 커졌다.
최근 들어 ‘돼지 껍데기’가 술안주는 물론 피부와 다이어트 음식으로도 인기다. 매운 음식으로 유명한 후난성 출신인 마오쩌둥은 붉은 고추와 함께 볶은 ‘돼지 껍데기’ 요리를 즐겨 먹었다니 그 맛도 믿을 만하다. 페루, 볼리비아, 멕시코 등지에서는 ‘돼지 껍데기’를 기름에 튀긴 치차론이 최고의 간식이란다.
그런데 이처럼 친숙한 ‘돼지 껍데기’는 잘못된 표현이다. ‘껍데기’와 ‘껍질’. 비슷한 듯 다른 두 단어로 인해 많은 이들이 혼동하고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을 살펴보면 ‘껍데기’는 ‘달걀이나 조개 따위의 겉을 싸고 있는 단단한 물질(각ㆍ殼)’로, ‘껍질’은 ‘딱딱하지 않은 물체의 겉을 싸고 있는 질긴 물질의 켜’로 나와 있다. 즉, 겉표면이 딱딱한 것에는 ‘껍데기’, 무르거나 말랑말랑한 것에는 ‘껍질’을 쓴다고 생각하면 쉽게 구분할 수 있다. 따라서 바나나, 귤, 사과 등의 과일이나 채소는 ‘껍질’, 조개, 굴, 호두 등의 겉은 모두 ‘껍데기’로 불러야 한다. ‘돼지 껍데기’ 역시 ‘돼지 껍질’이라고 해야 맞다.
이쯤에서 노래 한 곡 불러보자. ‘조개껍질 묶어/ 그녀의 목에 걸고/ 불가에 마주 앉아/ 밤새 속삭이네….’ 윤형주의 노래 ‘라라라’다. 아마도 익숙한 음정과 박자 탓에 ‘조개껍데기’보다 ‘조개껍질’이 자연스럽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조개는 겉표면이 단단하므로 ‘조개껍데기’가 바른 표현이다.
‘라라라’의 인기 때문인지, 최명희의 소설 ‘혼불’ 속 “모처럼 얻어 내는 조개껍질이야말로 잔칫상을 차리기에는 오금이 저리게 즐거운 그릇이었다” 구절 때문인지 ‘조개껍질’도 ‘조개껍데기’와 함께 국어사전에 표제어로 올라 있다. 하지만 아주 예외적인 경우이므로 혼동하지 않아야 한다.
‘껍데기’는 또 ‘알맹이를 빼내고 겉에 남은 물건’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런데 이 경우 ‘이불 껍데기를 빨다’, ‘베개 껍데기를 벗기다’ 정도로만 쓰일 뿐 활용되는 사례가 많지 않으니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아도 될 듯싶다.
인간의 허울을 벗기면 결국 삶에서 남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중견작가 곽남신의 ‘껍데기’전이 이달 30일까지 OCI미술관에서 열린다. 편안한 사람과 함께 사회의 부조리나 덧없음을 풍자한 그림을 감상하며 가벼운 농담을 건네 보는 것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