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창조경제 스위스에서 답을 찾는다] 스위스는 어떻게 강소기업 천국이 됐나

입력 2014-04-14 14:59 수정 2014-04-16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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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의 다국적 농업 기업 신젠타는 무인 헬기를 이용, 작물보호제(농약)를 살포하는 등 기술혁신을 통해 기업과 농업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 산업혁명 시절, 영국의 방적기를 수입할 수 없던 스위스는 좌절하지 않았다. 영국인 제작자들을 불러들여 직접 방적기를 만들었다. 이렇게 만든 스위스의 방적기는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게 됐다. 수제명품 시계하면 ‘메이드 인 스위스’로 통하던 1960년대, 저가의 일제 시계와 디지털 시계가 세계시장을 홀연히 석권하면서 스위스 수제시계는 설자리를 잃게 됐다. 하지만 스위스는 배터리 시계에 플라스틱 외형을 조합해 저렴한 패션시계인 ‘스와치’를 개발했다. 기술력에 글로벌 경영전략을 더해 세계 시계시장을 탈환한 것이다.

2014년. 스위스는 여전히 기술혁신의 강국으로 통한다. 섬유와 시계산업 발전을 통해 이룩한 산업화를 기반으로 부가가치가 높은 바이오·IT·화학·정밀기계·엔지니어링 등 첨단기술분야에서 세계적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작은 면적, 자원부족 등 태생적인 약점을 가진 스위스는 기술 혁신, 글로벌 브랜드 전략, 소통문화 등을 복잡 가동하며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1인당 R&D 비용 세계1위…글로벌 강소기업의 천국 = “히든챔피언(Hidden Champion)을 키우자”. 창조경제 구현을 최대 화두로 내 건 박근혜 정부만의 핵심 국정과제는 아니다. 과거 정부도 독일의 히든챔피언 모델을 벤치마킹해 기술선도형 중소기업 육성에 주력했다. 하지만 중소 벤처기업이 글로벌 히든챔피언으로 커 가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세계시장 점유율 33% 이상, 기업 수명 60년 이상, 평균 매출 4300억원인 강소(强小) 기업을 뜻하는 ‘히든 챔피언’은 현재 우리나라에 23개에 불과하다.

스위스도 일찍부터 세계로 눈을 돌려 통상과 상품수출에 힘써 왔다. 전체 기업에서 중소·중견기업이 99%를 넘게 차지한다는 점도 우리와 비슷하다. 그러나 스위스는 전체 30여만개 중소기업 중 고부가가치 품목을 앞세워 높은 세계시장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는 히든 챔피언이 다수다. 히든 챔피언은 법인세 부담률이 높아 대기업보다 국가재정에 대한 기여도가 크다. 스위스가 1인당 GDP 세계 4위의 대표적인 강소국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이같은 강소기업이 있었기 때문이다.

첨단 기술산업과 고부가가치 지식서비스 산업 육성은 강소국이 되기위한 필수 조건이었다. 정부는 산학연 협력, 직업교육을 통한 기술인재 양성 등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기업들은 내부적으로 혁신 친화적 시스템 구축에 힘썼다.

크리스토퍼 투치 스위스 로잔연방공과대학(EPFL) 교수는 “스위스는 도로 등의 공공 인프라가 잘 구축되어 있고 노동 시장도 유연하며 교육 환경이 좋다”면서 “무엇보다 스위스가 ‘히든 챔피언’들을 많이 배출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정부 주도의 과감한 R&D 투자, CTI(교육기술부 산하 혁신진흥공사)의 파트너십, 스위스 강소기업 내부에 전반적으로 깔려 있는 혁신 문화에 있다”고 말했다.

2011년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글로벌 경쟁력 백서에 따르면, 스위스의 기업의 1인당 R&D 투자 규모는 평균 1942달러로, 세계 1위였다.

스위스의 히든 챔피언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독자적인 영역을 쌓을 수 있었던 것은 스위스만의 적극적 개방성과 기술혁신도 주효했다. 스위스의 쉰들러 홀딩 아게는 선택과 집중을 통한 기술혁신으로 전세계 엘리베이터 생산 1위 기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이 회사의 아놀드 쉰들러 회장은 “소인이 거인과 경쟁할 때 유일한 무기는 돈보다 혁신에 주력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매년 1억 3000만 스위스 프랑(약 1500억원)을 R&D 비용으로 투자하는 쉰들러는 최근 태양광으로만 24시간 이상 비행하는 100% 태양광 비행기인 솔라 임펄스(Solar Impulse) 제작을 지원하면서 친환경적인 혁신기술 발전도 이뤄냈다.

◇과감한 기술혁신, 개방적 사회문화…강소기업의 지속성장 비결 = 스위스 다국적 농업회사인 신젠타는 작년 129억 스위스 프랑(15조 3000억원)에 달하는 매출을 올린 세계 1위 농업전문 다국적기업이다. 신젠타는 매출액의 약 10%, 연간 1조 5000억원 정도 가량을 기술개발에 투자한다.

특히 이곳은 글로벌 마케팅에 있어 시장이 요구하는 것에 항상 귀기울인다. 김용환 신젠타 동북아시아 솔루션 개발 담당 사장은 “신젠타 임원들은 수시로 농가를 방문하며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듣고 솔루션을 찾는다”고 설명했다.

지속가능한 농업기술개발도 혁신의 연장선상이다. 최근엔 글로벌 식량안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황폐화 위기에 처한 1000만 헥타르 농경지의 지력을 개선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또 노동력 절감형 무인헬기 방제기술과 물의 사용량을 대폭 줄일 수 있는 저물량 살포기술을 개발도 한창이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농가 인구의 고령화에 대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미래 전략이다.

스위스는 덴마크에 이어 두 번째로 노동시장 규제가 적다. 그만큼 노동시장이 유연하다. 해고도 쉽고 취업도 쉽다는 얘기다. 시간선택제 일자리 확대, 근로시간 단축, 정년연장 등 노동 현안을 둘러싼 노사정 갈등이 기업의 발전을 저해하는 걸림돌이 되고 있는 우리나라와는 대조적이다. 1937년 최대 노조인 철강·기계·시계 산업 노사대표가 노사평화협정을 체결한 이후 총파업이나 노사분규가 사라졌다.

투명하고 열려 있는 기업문화도 스위스 기업 경쟁력의 근간이다. 스위스에 본사를 둔 디지털방송 전문 솔루션 분야의 세계적인 기업 그라비전 코리아의 이인구 지사장은 “스위스 기업은 의사결정 과정과 방식에 있어 이견이 없는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치열하게 논쟁한다”며 “인사고과 평가 시에도 보통 같은 직급의 사람 모두가 한 직급 아래의 사람들을 다면 평가할 정도로 기업 문화가 열려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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