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영의 경제 바로보기] 은행의 국제화와 대형화

입력 2014-04-22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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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영 송현경제연구소장

한국의 은행들은 해외영업 비중이 2~3% 정도에 불과해 국제화가 거의 돼 있지 않다. 미미한 해외영업마저 한국 기업의 해외지사나 현지법인, 교포들과의 거래가 대부분이다. 은행뿐 아니라 증권, 보험 등 금융의 다른 분야도 비슷하다. 한국의 은행들이 국제화가 안 된 것은 은행의 규모가 작아서라는 생각이 많아 지금까지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은행의 대형화를 추진해 왔다. 이 과정에서 은행의 자산 규모는 커진 반면, 은행의 수는 1997년 30개에서 2014년 금융지주 회사 기준 12개로 줄었다.

한국의 은행은 이러한 대형화 정책에도 여전히 국제화는 지지부진하고 해외에서 경쟁력도 없다. 한국 기업들의 대규모 국제 금융거래나 복잡한 금융상품은 거의 대부분 외국계 은행을 통해 이뤄진다. 금융 때문에 기업의 국제경쟁력이 떨어진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여기에 은행의 해외 점포는 오래전부터 정치인과 관료 등의 해외활동 지원 등 로비 창구로 활용돼 왔고, 최근 일부 은행의 도쿄지점 불법대출 사례에서 드러났듯이 비자금 조성 등을 위해 사용되는 듯 보인다.

은행의 국제화는 개별 은행 입장에서는 국내 시장의 한계를 넘어 더 넓은 시장 개척과 새로운 수익창출을 위해 꼭 필요하다. 그러나 크게 보면 은행의 국제화는 은행의 위험분산과 국민경제 안정을 위해 더 중요하다. 한 국가의 경제상황이 항상 좋을 순 없고 때에 따라 경제위기나 금융위기를 겪을 수 있다. 이때 각 경제 주체는 큰 어려움에 처할 수밖에 없는데, 특히 은행은 다른 주체의 위험을 인수하는 기관이라 더 빨리 더 큰 어려움에 처한다. 금융위기 시에는 기업과 개인에 대한 대출의 부실화, 안전하다고 생각됐던 국채 가격 폭락 등으로 은행들은 쉽게 도산 상태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나라 전체의 경제상황이 나쁜 데다 많은 은행이 도산하면 신용경색이 장기화돼 위기 극복이 더욱 어려워지는 악순환을 초래하기도 한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시 한국의 대형 은행이던 조흥, 상업, 제일, 한일, 서울은행 등이 모두 도산상태에 빠지고 한국경제가 큰 어려움을 겪은 것이 대표적 사례다.

반면 위기가 왔을 때 은행의 영업이 세계 여러 나라에 분산돼 있으면 덜 위험할 수 있다. 2010~2011년 재정위기를 심하게 겪었던 그리스와 스페인에서 국제화가 잘된 은행은 해외의 수익과 해외 자산의 매각 등을 통해 버텨낼 수 있었지만 국제화되지 못한 은행은 많은 경우 망하거나 부실화돼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에서도 잘 나타난다.

만약 한국에 스페인 정도의 경제위기가 온다면 한국의 은행들은 어떻게 될까? 안전자산으로 여겨지던 주택담보대출과 보유 국채에서 엄청난 손실이 발생하고, 경기 부진에 따른 일반대출의 연체 증가로 대부분 은행들이 부실화될 것이다. 특히 대형 은행의 경우 도산 상태에 빠졌을 때 상호저축은행과 같이 5000만원 이하 예금만 보장해 주고 정리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엄청난 신용경색, 대외 신인도 저하 등의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국가 재정으로 은행의 손실을 메워 정상화해야 한다. 국민, 신한, 우리 등 대형 금융지주회사의 총 자산은 300조원이 넘어 한 개 금융지주회사에 대해 총 자산의 10% 정도 공적자금을 투입한다 해도 30조원이다. 엄청난 재원이 소요된다.

위기는 언제든지 올 수 있고, 이때 국제화가 안 된 대형은행은 폭탄으로 변할 수 있다. 즉 은행이 국제화되지 않으면 국민경제는 경제위기에 더 취약할 뿐 아니라 부실화의 피해도 국내에 고스란히 남는다. 물론 은행의 국제화는 일반 기업의 해외시장 개척이나 현지 공장 설립보다 훨씬 어렵고 위험한 일이다. 은행은 그 자체가 위험산업인 데다 사람과 사람이 접하는 서비스산업으로 고도의 전문화된 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 능력과 열정을 가진 경영진이 있어야 하고 정책당국의 지원과 협조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은행은 국제화를 통해 경쟁력을 키우고 대형화해야지, 대형화한 다음 국제화하는 것은 스스로 위험을 키우는 일이다. 한국의 은행들이 국제화를 잘 이뤄내지 못한다면 국내에서 M&A 등을 제한하는 것이 은행의 건전성 유지와 국민경제의 안정을 위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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