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기자의 모터키즈] 아저씨! 바지 좀 내려입으세요

입력 2014-05-08 18:11 수정 2014-05-09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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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의 2세대 베르나(코드네임 MC)를 볼 때마다 한껏 올라간 도어 몰딩이 신기했습니다. 마치 양복바지를 힘껏 올려입고 허리띠를 단단히 조인, 그래서 조금은 촌스러운 모습이기도 했으니까요.

자동차의 옆면에는 다양한 디자인 터치가 가미됩니다.

먼저 부분적인 명칭을 살펴볼까요. 측면 윈도와 보디 사이의 경계선은 '벨트라인'이라고 부릅니다. 도어 표면을 가로지르는 독특한 선은 이른바 '캐릭터 라인', 행여 옆차에 긁힐까 두려워 두툼한 플라스틱을 덧댄 것이 도어 몰딩입니다.

현대차 오석근 디자인 센터장과 나란히 앉았던 적이 있습니다. 구형이된 YF쏘나타의 경우 유럽과 미국, 한국 디자인센터에서 개발을 진행했습니다. 오 센터장은 한국에서 디자인을 진두지휘했던 주인공입니다.

그를 만났을 당시는 한참 YF쏘나타 디자인에 대해 ‘호 또는 불호’가 나뉘었던 시절이었습니다. 전작이었던 NF쏘나타의 안정감은 사라지고 벌레를 닮은 모습이 흉하다며 혹평이 이어질 때였지요.

그 무렵 현대차는 반듯한 모범생이 날라리 옷을 입듯, 과감한 디자인을 겁 없이 내놓던 때였습니다. 일부에선 벌레를 닮았다며 ‘버그룩’이라는 혹평까지 내놓았으니까요.

▲5세대 NF쏘나타에는 도어 측면에 얇은 몰딩이 붙어있습니다. 반면 6세대 YF쏘나타는 몰딩을 걷어내고 깔끔한 옆라인을 자랑합니다. YF쏘나타는 도어 위쪽과 아래쪽에 각각 뚜렷한 캐릭터 라인을 심어넣으면서 도어강성을 유지했습니다.

자! 지금 이 순간 독자를 대상으로 이미 단종된 YF쏘나타 디자인에 대해 평가해 달라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물론 이미 익숙해질 만큼 흔한 차가 됐으니 데뷔 초기때 평가와는 크게 달라지겠지요.

오석근 센터장(당시 전무)은 이와 관련해 선문답을 내놓았습니다.

“전 세계에서 우리 차(YF) 디자인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3%만 존재해도 우리는 성공한거죠.”

맞는 말입니다. 한해 전 세계에서 8000만대가 넘는 자동차가 팔립니다. 이 가운데 단 3%는 240만대. 쌍용차가 한해 15만대를 간신히 만들고 있으니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되시겠지요.

그렇습니다. 자동차 디자인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다른 차를 고스란히 베껴왔던 독창적인 모습을 갖췄든, 자동차 회사입장에서는 많이 팔릴 차를 개발하고 디자인합니다. 멋진 차보다 당장에 많이 팔리는 차의 디자인이 이들에겐 더 중요합니다.

이 말에 의미는 자동차 디자이너라고 자신이 원하고 또 그리고 싶은 차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 좋아할 수 있는 차를 만드는 것이 그들의 역할입니다. 영업이익을 더 남겨야 더 멋지고 훌륭한 차를 만들 수 있는 여력이 또 생기니까요.

▲북미수출형 2세대 베르나 3도어 모델. 4도어 세단의 못생긴 도어몰딩 대신 날카롭게 세련된 캐릭터라인이 옆면을 가로지릅니다. 이 모습이 한결 멋져 보이지 않으신가요?

이제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인 2세대 베르나를 살펴볼까요. 암팡지고 귀여운 모습에 적잖은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이해 안 되는 부분도 있었답니다. 바로 앞서 언급한 도어 옆에 달린 사이드 몰딩, 그것도 그 몰딩의 위치였습니다.

베르나의 사이드 몰딩은 유독 위치를 높게 잡았습니다. 꼭 '배바지'를 입은 아저씨 모습이었어요.

당연히 언론을 대상으로 한 신차발표회에서 이와 관련된 질문이 쏟아져 나왔고 현대차는 대답했습니다.

“요즘 SUV가 많아졌잖습니까? SUV와 접촉 때 차체를 보호하기 위해서 몰딩 위치를 높였습니다.

정말 현대차다운 대답이었습니다. 물론 당시 답변은 차를 만드는 엔지니어가 아닌, 볼펜과 계산기 만 굴리는 ‘상품기획팀’에서 담당했습니다. 마땅한 답변도 없는 상황에 서둘러 만들어낸 대답이었지요.

▲도어 몰딩은 차체를 보호하는 기능보다 도어강성을 유지하는 역할이 더 큽니다. 2세대 베르나는 4도어 세단(사진 위)의 경우 못생긴 도어몰딩을 얹었지만 3도어 해치백은 날렵하고 세련된 원래의 캐릭터 라인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럼 그렇게 중요한 몰딩이라면 왜 다른 차종에는 도입하지 않았을까요?

여기에서 시작한 의문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서 풀렸습니다. 4도어 세단과 달리 나중에 나온 베르나 3도어는 이 몰딩을 걷어냈습니다. 그랬더니 굉장히 날카롭고 예리한, 그리고 멋들어진 캐릭터 라인이 나왔던 것이지요.

네 맞습니다. 베르나 4도어가 억지스러운 몰딩을, 그것도 희한한 위치에 붙인 이유는 바로 도어 강성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도어 강성은 이른바 ‘압흔’ 성능입니다.

압흔이라는 단어가 생경하지요? 압흔이란 부종(浮腫)이 있는 피부를 손가락으로 누르면 눌린 자리가 원상태로 돌아가지 않고 한동안 그대로 있는 흔적을 말합니다. 의학용어에서 시작했는데 이른바 눌림 흔적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기계공학이나 냉연공학에서 압흔은 [일정한 모양을 유지하고 있는 철판이 그 원형 상태를 유지하려는 힘]을 말합니다. 즉, 자동차 외형 철판이 원래 모습을 유지하려는 힘을 말하는 것이지요.

▲대중차 브랜드에게 좋은 디자인은 곧 '잘 팔리는 차'의 디자인입니다.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처럼 하나의 디자인이 브랜드 전체의 이미지 리더가 될 수 없으니까요. 사진은 현대차 엑센트.

2000년대 초반부터 슬그머니 자동차 옆 도어에 사이드 몰딩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수십 년 자동차 옆면을 장식했던 이 몰딩은 어느 틈엔가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 건데요.

중형차의 경우 현대차는 NF쏘나타, 기아차는 로체 이노베이션까지 이 몰딩을 유지했습니다. 흔히 이 몰딩은 주차장에서 옆 차와의 접촉때 차체 손상을 줄이는, 이른바 ‘프로텍터’로 여기는 분들이 많습니다.

네 맞습니다. 초기 대량생산 체제가 갖춰진 이후 대부분의 자동차가 그런 목적으로 두툼하고 투박한 몰딩을 붙였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 붙는 몰딩은 도어강성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이 더 컸습니다.

자동차 도어 철판을 손가락을 살짝살짝 눌러보면 어떻게 되던가요? 철판은 ‘불룩불룩’ 들어갔다가 다시 원위치로 솟아나옵니다. 물론 힘을 주어서는 안됩니다. 한번 들어갔던 도어 외측 패널이 다시 안 돌아올 수도 있거든요.

작은 힘에도 얇은 도어가 원형으로 복원되는 이유는 도어 패널에 강성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얇은 도어 패널에게 두툼한 몰딩은 하나의 기준점이자 지지점이 됩니다. 몰딩이 없이 도어 강성을 유지하기는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차체보호의 기능보다 도어 강성 유지의 기능이 더 컸다는 의미입니다.

공기를 채워넣듯 빵빵하게 부풀린 도어가 원래 모양을 고스란히 유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지요.

베르나가 ‘아저씨의 배 바지’로 불리더라도 몰딩을 위쪽에 달았던 이유도 도어 강성을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베르나와 형제차인 기아차 프라이드(2세대ㆍ코드네임 JB)는 그나마 이 몰딩을 억지로 낮춰서 장착했습니다. 대신 몰딩의 두께는 베르나의 2배가 넘었지요. 위치를 바꾸는 대신 더 큰 몰딩이 필요했던 것이지요.

▲토요타 86은 복잡한 캐릭터 라인없이 깔끔한 측면 라인을 자랑합니다. 토요타는 별다른 캐릭터 라인 없이도 탄탄한 강성을 뽑아냈습니다. 상대적으로 얌전한 모습이지만 메이커의 프레스 기술력이 고스란히 녹아들었습니다.

디자인적인 면에서도 몰딩은 ‘눈엣가시’였습니다. 없애고 싶어 죽겠지만 도어 강성을 위해 없앨 수 없는 대상이었지요.

2000년대 들어 독일차를 중심으로 이 몰딩을 없애기 위한 노력이 시작됩니다

자동차용 냉연강판의 성능이 좋아졌고 철강기술도 발달했으니 도전이 시작된 것이지요. 마침내 몰딩 따위를 걷어내도 도어 강성을 유지할 수 있는 철강 기술도 속속 등장했습니다.

그렇게 몰딩이 없어지고 몰딩을 대신할 뚜렷한 캐릭터 라인이 등장합니다. 몰딩을 없애는 대신 캐릭터 라인을 하나 그어주면 도어의 '압흔'강성이 크게 확대됩니다. 나아가 디자인도 한결 세련미를 더하게 되는 것이지요.

도어 캐치 쪽에 하나, 그리고 도어 아래쪽에 한 줄씩 캐릭터 라인을 넣어주면 차는 한결 스포티해집니다. 나아가 도어 강성도 충분히 유지할 수 있게 되니 일거양득인 셈이지요.

▲제네시스 쿠페는 앞뒤로 강렬하게 뻗어나간 캐릭터 라인 덕에 도어강성을 탄탄하게 유지하고 있습니다.

현대차는 플루이딕 스컬프쳐를 앞세우면서 측면 라인에 과감한 캐릭터 라인을 새겨 넣기 시작했습니다. YF쏘나타에서 시작한 이러한 디자인 터치는 제네시스 쿠페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몰딩 따위를 걷어내면서 차는 한결 우람하고 탄탄해 보이는 이미지도 만들었습니다. 여기에 도어강성까지 단단하게 유지할 수 있었지요.

만일 YF쏘나타에서 이 캐릭터 라인이 없었다면 어땠을까요? 차 옆면은 밋밋했겠지요, 또 풍만한 도어는 밖에서 살짝만 눌러도 ‘폭’ 들어가는 아쉬움도 남았을 겁니다.

물론 경박스러운 캐릭터 라인 없이, 프레스 기술 하나만으로 도어강성을 유지한 차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차가 토요타 86입니다. 뛰어난 설계기술과 더불어 냉연강판을 비롯한 철강기술이 뒷받침된 결과물이지요.

17년 전, 우리에게는 요즘처럼 도어강성을 유지할 프레스 기술이나 냉연강판 노하우가 없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겁없이 도어 사이드 몰딩을 걷어낸 차가 있었지요.

콘셉트카 디자인을 고스란히 가져오다보니 당시 기준으로 멋진 쿠페가 나왔습니다. 다만 멋을 위해서 포기한 사이드 몰딩 탓에 도어강성은 형편없는 수준이었습니다.

도어를 열고 닫을 때 가볍고 헐렁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밀려왔던 차이기도 했습니다. 무릎으로 도어를 ‘툭’치니 문짝이 푹 들어가버려서 '화들짝' 놀란 적도 있었으니까요.

만일 그때의 시도가 성공했다면 이후 전차종이 몰딩을 걷어냈겠지요. 아쉽게도 강성 유지는 실패했고 다른차를 개발하면서 결국 다시 도어 몰딩을 부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십 수 년 전부터 이처럼 사이드 몰딩을 없애고 도어강성 유지를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이 더 큰 의미를 지닙니다.

오늘부터 양옆으로 지나가는 차들의 옆태를 한 번씩 살펴보실까요? 왜 저 차는 도어 옆면에 저런 캐릭터 라인을 두었는지, 또 그 위치와 모양새를 살펴보는 재미도 쏠쏠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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