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국가대표 감독이라는 자리는 부담감이 크다. 더구나 4년에 한 번 열리는 FIFA 월드컵은 국민 대부분이 밤잠을 설치며 지켜볼 정도로 엄청난 관심을 모은다. 선수 선발에 팬들의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하다.
많은 팬들은 이번 홍명보 감독의 대표 선발을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거스 히딩크 감독과 비교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당시에도 논란은 적지 않았으나 히딩크 감독은 멋진 반전을 국내 축구팬들에게 선사했다. 당시 히딩크 감독은 1998년 K리그 신인상을 수상하고 2000년 아시안컵 득점왕에 오른 이동국을 제외했다. 대신 박지성, 차두리 등 의외의 선수들을 포함시켰다. 히딩크 감독은 이들과 승승장구하며 4강까지 진출했다.
홍명보 감독이 선택한 이번 대표팀 명단에 팬들이 실망하는 이유는 한 가지다. 홍 감독 스스로가 만든 원칙을 스스로 깼기 때문이다. 부임 당시부터 그가 내세운 원칙은 ‘원 팀(one team)’, ‘원 골(one goal)’ 그리고 ‘원 스피릿(one spirit)’이었다. 덧붙여 “소속팀에서 충분한 활약을 하지 못하는 선수는 대표팀으로 불러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하지만 최종명단 발표 이전까지 7차례 소집된 명단에서 박주영은 7기에 단 한 차례 선발됐을 뿐이다. 그리고 포항에서 꾸준히 주전으로 나서며 최근 10경기 연속 득점 포인트를 올린 이명주는 빠졌다. 박주호는 “부상 치료를 위해 10%가 남았다”며 외면했다. 홍 감독 역시 이 부분에 대한 후폭풍을 예상, 최종명단 발표 이후 부연 설명까지 해야 했다.
아마도 홍 감독은 지난 8일 최종명단을 발표하면서 부임 당시 스스로 내세웠던 원칙들을 후회했을지도 모른다. 애초부터 선발하려 했던 주요 선수들이 자신의 원칙에 부합되지 않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내가 월드컵에서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선수들을 선발할 것”이라고 했으면 편했을 일이다.
홍 감독은 지금껏 책임감 있고 외부의 목소리에도 흔들리지 않는 소신있는 이미지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입맛에 맞는 선수들을 선발하기 위해 스스로가 만든 원칙을 깬 셈이 됐다. 감독이 입맛에 맞는 선수를 최종명단에 넣는 것은 당연하다. 월드컵 같은 큰 무대라면 자신의 축구 철학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선수들을 넣는 것이 더더욱 당연하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과정이 결코 깔끔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