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경진의 루머속살] 공매도의 역설

입력 2014-05-14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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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사마다 구조조정이 한창이다. 인력 감축과 지점 축소를 통해 수익성 악화를 상쇄시키려 고군분투하고 있다. 문제는 구조조정이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증권사가 어려움을 겪는 이유 중 하나는 수수료 경쟁으로 가뜩이나 수익이 줄어들었는데 주식투자자마저 줄어들고 있다는 데 있다.

개인투자자가 급감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시장 상황도 좋지 않을 뿐더러 투자여력도 없다. 돈이 부동산이나 금융기관에 묶여 있다 보니 주식을 살 여유가 없는 것이다.

개인에게 무차입 공매도(유가증권을 전혀 보유하지 않은 상태에서 투자자가 유가증권을 매도하는 거래 형태)를 금지한 것도 제도적으로 개인이 주식투자를 멀리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주식을 소유하지 않고 매도할 수 있는 무차입 공매도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대차(주식을 빌려서 매도한 후, 보통 1년 이내에 시장에서 주식을 다시 매입해 갚는 거래)나 대주(개별종목의 주식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될 때 한국증권금융이나 증권사에서 해당 주식을 빌려서 판 뒤 주식이 판 가격보다 더 떨어지면 수익을 거둘수 있는 거래)를 통해 주식을 빌려와 매도하는 것만 가능하다.

삼성전자를 비롯해 포스코, 현대차, 네이버 등 시가총액 상위종목들은 대차잔고가 조 단위가 넘는다. 코스닥에서는 셀트리온 같은 대장주들이 공매도로 몸살을 앓고 있는 대표적인 종목이다.

외국인과 기관투자가들의 전용물인 대차거래와 공매도는 개인투자자들에게 본의 아닌 피해를 끼치고 있다. 실제로 주식시장을 떠난 개인투자자들 가운데 대차거래로 큰 손실을 본 경우가 상당수에 달한다. 지금도 각종 증권투자 게시판에 가면 “공매도로 피해를 봤다”는 개미들의 하소연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증시 활성화를 위해 도입한 대차거래와 공매도가 목적 달성은커녕 오히려 거래부진의 원인이 돼 버린 것이다.

하지만 증권 당국은 이를 애써 외면하고 있다. 대차거래는 미국 등 선진 시장에서 도입하고 있는 제도이고 공매도가 시장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주장은 잘못됐다고 말한다. 되레 공매도 때문에 유동성이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고 주장한다. 증권 당국이 공매도 때문에 개인투자자들이 시장을 떠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것이다.

문제는 증권당국의 주장은 논리적으로 모순이라는 점이다.

미국 증시는 무차입 공매도와 대차거래가 다 있으며 개인투자자들도 모두 참여할 수 있다. 반면 국내 증시는 개인투자자의 무차입거래가 금지돼 있으며 차입거래 역시 기관투자가나 외국인 등만 가능한 게 현실이다. 개인투자자들은 소수의 종목에서 소량으로 증권사를 통해 대주거래만 가능할 뿐이다.

대차거래나 공매도가 미국에서는 문제가 없는데 왜 문제를 제기하냐고 설득하려 하지만 국내 시장도 미국처럼 개인투자자에게 공매도나 대차거래를 허용해야 논리적으로 설득력이 있다.

‘로마인 이야기’를 쓴 작가 시오노 나나미가 ‘리더를 위한 로마인 이야기’를 펴냈다. 이 책은 21세기를 사는 이 시대 리더들에게 로마인들이 실수로 저지른 일의 발단과 결과를 통찰력 있게 보여준다. 나나미는 ‘수단의 목적화’가 로마를 멸망하게 만든 역사적 요인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증권당국은 수단(공매도·대차거래)을 논의하는 사이에 목적(증시 활성화)을 잊어버리는 우(愚)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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