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한달] 좌절·분노·통곡의 30일

입력 2014-05-15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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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천825t급, 길이 145m·폭 22m, 여객 정원 921명, 차량 180대·20피트짜리 컨테이너 152개 동시 적재 가능.

국내 최대 규모 정기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한 지 15일로 한 달째가 됐다.

대한민국호(號) 안전의 민낯이 드러난 4월 16일 이후 좌절, 분노, 통곡의 30일을 되돌아봤다.

◇ 눈앞에서 304명 가라앉아…참사의 그날 '4·16'

"여기 배인데 여기 배가 침몰하는 거 같아요."

4월 16일 오전 8시 52분 119로 전화한 경기도 안산 단원고 2학년 최덕하 군의 다급한 목소리로 세월호의 침몰은 처음 외부에 알려졌다.

수학여행길에 오른 단원고 학생 325명, 교사 14명, 승무원 33명, 일반 승객 104명 등 476명(잠정)이 타고 있었다.

세월호는 전날 오후 6시 30분 제주를 향해 인천항을 출발할 예정이었지만 안개 때문에 2시간 30분가량 늦게 출항했다.

당일 인천여객터미널에서 출발하려던 모든 여객선이 결항했지만 세월호만 불길한 전조를 무시했다.

16일 오전 9시 30분 목포해경 123함(110t급)을 시작으로 해경과 해군의 경비정, 헬기, 해난구조대(SSU)·해군 특수전전단(UDT/SEAL) 등 최정예 인력·장비가 총출동했다는 소식에 국민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차분히 구조 장면을 지켜봤다.

그러나 모두 구조되리라 믿고 눈과 귀를 기울였던 뉴스는 결과적으로 304명의 사망·실종 실황을 중계한 꼴이 됐다.

구조된 인원은 172명이 전부였다. 해경은 승객들을 버리고 먼저 탈출한 속옷 차림의 이준석(69) 선장 등 선박직 승무원을 구조하는데 급급했다.

"절대 이동하지 말고 대기하라"는 안내 방송만 믿고 기다리던 승객들을 위한 선내 진입은 없었다.

"배가 기울고 있어, 엄마 아빠 보고 싶어". 오전 10시 17분 세월호에서 보낸 마지막 신호가 된 학생의 카카오톡 메시지다.

"기다리래. 기다리라는 방송 뒤에 다른 안내방송은 안 나와요", "해경이 왔어. 언론에 속보도 떴어" 등의 메시지 내용으로 미뤄 승객들은 침몰 상황을 충분히 인식하고도 선내 방송만을 믿고 따랐던 것으로 보인다.

학생들에게 구명조끼를 챙기는 등 '살신성인'한 선박 매니저 박지영(22·여)씨는 마지막 메시지가 발신된 뒤 한 시간여만인 오전 11시 18분 첫번째 사망자로 발견됐다.

◇ 무기력한 대한민국…잔인한 4월

이틀째인 17일 해경, 해군, 관공서, 민간 선박·헬기와 잠수사들은 수중, 수상, 공중에서 입체 수색을 이어갔다.

그러나 사고 해역은 수중에 펄이 많고 조류가 강해 선내 수색을 쉽사리 허용하지 않았다.

물살이 약한 '소조기', 강한 '대조기', 물의 흐름이 멈추는 '정조시간' 등 생소했던 용어들이 점차 익숙해졌다.

같은날 이준석 선장은 피의자로 전환돼 수사를 받았다. 검·경 합동수사본부도 구성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실종자 가족이 모여있는 진도 체육관을 찾아 "철저한 조사와 원인 규명으로 책임질 사람은 엄벌토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과가 빠진 위로에 대통령은 진심 어린 사과를 요구하는 여론에 부닥치기도 했다.

선수만 겨우 물밖으로 내놓고 있던 세월호는 18일 완전히 침몰했다.

인솔 책임자로 세월호에 올라탔다가 구조된 강민규(52) 단원고 교감은 "나에게 모든 책임을 지워달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민관군 합동구조팀은 침몰 나흘째인 19일 밤 선체 유리창을 깨고 처음으로 선내에 진입, 시신을 수습했다.

이후 구조·수색작업은 선내 공기층인 '에어포켓'에 걸었던 기대를 허망하게 깨뜨렸다.

날이 갈수록 수습된 시신만 늘어갔고 실종자의 생환 소식은 기대할 수 없게 됐다.

화창한 봄날을 맞아 자치단체 등이 준비한 축제는 대부분 연기·취소됐으며 지방선거 출마자들의 선거운동도 중단됐다.

경기도 안산, 서울 등 전국 각지의 분향소에는 수만~수십만여명에 이르는 추모객의 발길이 이어졌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27일 참사의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다.

◇ 침몰 이후 구조자 0명…분노의 5월

단 한 명의 실종자도 구조하지 못한 데 대한 실망과 좌절로 가득했던 4월을 지나 5월을 맞았다.

꼬리를 무는 의혹과 불신은 절망감을 분노로 바꿔놓았다.

승무원들의 비정한 행태, 청해진해운과 그 주변 업체들의 허술한 선박관리,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경영비리 의혹, 무능함도 모자라 선장을 해양경찰관의 집에 재우고 언딘과 유착 의혹에까지 휩싸인 해경, '해피아'라는 치욕적인 별명을 얻은 해양수산부 등 '비정상'의 징후가 잇따라 드러났다.

17일째인 2일에는 침몰 지점에서 남동쪽으로 2㎞가량 떨어진 곳에서 시신이 수습됐다. 범정부 사고대책본부는 시신 유실에 대비해 수상 수색 범위를 넓혔다.

어린이날과 석가탄신일이 낀 3~6일 연휴에도 "시신이라도 찾아달라"는 실종자 가족의 통곡은 팽목항을 덮었다.

4일 두 번째로 진도를 찾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한 실종자 가족은 "지금 가서 보세요. 형체도 못 봐요. 형체가 없어졌어요. 부모로서 형체도 못 알아본다는 게 어떤 심정인지…"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애국하러 가겠다"며 진도를 찾아 수색작업에 참여한 민간 잠수사 이광욱(53)씨는 6일 숨졌다.

같은날 대책본부는 선내 111개 공간 중 승객이 있을 것으로 추정한 64개 객실 문을 모두 열었다고 발표했다.

곧이어 찾아온 어버이날에도 빨간 카네이션 대신 노란 리본이 팽목항을 감쌌다.

기상 악화와 선체 내부 칸막이 약화 현상 등으로 수색작업은 10일 오전부터 사흘간 중단되기도 했다.

침몰 30일째인 15일 가장 먼저 탈출하고, 가장 먼저 구속된 이준석 선장 등 승무원 15명은 검찰에 의해 기소된다.

최덕하(첫 신고자)군, 박지영(첫 사망자)·강민규(교감)·이광욱(잠수사) 씨 등 지금은 이름만 남아있는 의인들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국민의 부름에 법원이 응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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