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영의 경제 바로보기] 돈의 흐름을 바꿔보자

입력 2014-05-23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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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영 송현경제연구소장

지난 15일 한국은행과 통계청이 공동 개발해 첫 발표한 ‘국민대차대조표’에 따르면 한국의 국부는 89%가 토지와 건설자산에 편중돼 있고, 가계의 순자산도 75%가 토지와 건물 등 부동산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경제의 부동산에 대한 과도한 쏠림 현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는 그간 연구기관들의 간략한 서베이나 고위 공직자들의 재산공개 상황 등을 통해 대략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번 국민대차대조표 발표로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됐다.

기업·가계 등 경제주체들이 갖고 있는 돈을 어디에 투자해야 일자리가 늘어나고 나라 경제가 좋아질까? 당연히 첫째로 창업이나 공장 증설, 인재 교육 등 생산적 투자에 돈이 많이 몰려야 한다. 둘째는 예금·주식 등 금융자산에 투자하는 것도 간접적으로 생산적 투자를 늘릴 수 있게 해 나라 경제에 도움이 된다. 이에 비해 한국 사람이 가장 선호하는 부동산 투자는 부동산업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나라 경제 전체로는 해악이 너무 많다. 부동산에 돈이 많이 몰리면 공장부지 매입비용과 사무실 임대료 등이 비싸져 생산적 투자가 어려워지고, 집값과 집세가 올라 서민들의 생활이 힘들어진다. 임대료와 인건비 등도 올라 물가가 상승하고 우리 상품의 수출 경쟁력이 떨어진다. 외국 기업의 투자 유치도 어렵다. 외국 기업이 한국에 투자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가 비싼 부동산 가격 때문에 공장 설립 등의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생산적 투자에 돈이 많이 몰릴까. 대통령이 재벌들을 모셔다 밥을 사주고, 기업인의 불법을 눈감아 주고, 법인세 감면 등과 같이 기업에 유리한 정책을 시행하는 것도 생산적 투자의 확대에 조금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돈 흐름을 결정하는 것은 투자자금의 수익성과 안전성이다. 장사하는 사람은 돈을 벌 수 있다면 지옥 불에도 뛰어든다는 말이 있다. 생산적 투자에 대한 수익성과 안전성이 부동산에 대한 투자보다 높으면, 기업인의 불법행위를 법대로 처리하고 대통령이 기업인들에게 밥을 사주지 않아도 생산적 투자는 늘어날 것이다.

한국은 부동산 투자의 수익성과 안전성은 생산적 투자나 금융자산에 대한 투자보다 너무나도 높다. 한국에서 돈 있는 사람이 부동산 투자를 하지 않는 것은 엄청난 도덕적 자제심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주택의 경우 1가구 1주택자는 양도소득세, 임대소득세가 거의 없다. 다주택자도 여러 가지 공제제도와 세무당국의 너그러운 마음으로 인해 별로 세금을 내지 않는다. 오피스텔의 경우는 임대했는지 안 했는지 모른다는 이유로 임대소득세를 과세하지 않고 있다. 상업용 건물은 주택보다는 세금을 많이 내지만 여러 가지 방식으로 절세와 탈세가 가능하다. 대표적 방식이 건물 관리회사를 만들어 자식 등을 관리회사의 서류상 직원으로 등재시켜 급여를 비용 처리하고 소득을 미리 상속시키는 것이다. 여기에다 토지·주택 등 부동산의 상속이나 증여는 통상 공시지가로 이루어져 시가로 이루어지는 금융자산에 비해 훨씬 유리하다.

이렇다보니 부동산 투자에 돈이 몰려 서울의 집값이 뉴욕보다 비싼 상황이 됐고, 국민대차대조표 통계에서 보듯 국민 자산의 대부분이 부동산이 된 것이다. 그러나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듯이 부동산 가격도 계속 상승할 수만은 없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한국 부동산의 대표이던 아파트 가격은 조금 떨어지는 기미를 보이고 있다.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도 경제 활성화라는 이름으로 부동산 투자의 수익성을 높이는 정책을 계속 시행하고 있다. 아무리 생산적 투자에 대한 혜택을 늘려도 부동산 투자의 수익성과 안전성이 높거나 높아질 가능성이 있으면 생산적 투자로 돈이 잘 흐르지 않는다. 오히려 투자세액 공제 등 생산적 투자에 대한 지원과 취득세 감면 등 부동산 경기부양책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정부의 재정 상황만 나빠질 뿐이다.

늦었더라도 생산적 투자의 수익성과 안정성을 가장 높게, 부동산 투자의 수익성과 안전성을 가장 낮게, 금융자산은 중간에서 양쪽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조정해 보자. 부동산 투자자들은 조금 어려워지겠지만 돈의 흐름이 바뀌면서 일자리가 늘어나고 서민들의 살림살이는 좋아질 것이다. 세상에서 공짜 점심이 없듯 모든 사람에게 좋은 정책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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