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문창극 후보자는 그의 강연 내용 문제가 불거지기 전에도 과거 그가 쓴 칼럼으로 문제가 된 바 있다. 김대중,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이 서거하기 직전이나 직후에 두 사람에 대한 비난 혹은 비판성 칼럼을 썼기 때문이다. 이 문제가 불거졌을 때만 해도 나는 문창극 후보자가 그럴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어떤 칼럼을 썼든 그건 언론인으로서의 자유에 속하는 영역이기 때문에, 그걸 문제 삼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경우는 다르다. 우리 민족은 본래 게으르고 남에게 의지하려는 속성을 가졌다거나, 우리의 산업화는 일본의 기술을 받아들인 덕분이라든지 하는 얘기들이 현재 총리 후보자의 입에서 나왔다. 더구나 이런 발언 내용이 KBS 단독 보도로 나온 다음날 아침, 문창극 후보자는 사과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그러다가 오후에 “강연은 종교인으로서 교회 안에서 한 것이어서 일반인의 정서와 다소 거리가 있을 수 있다”며 “그런 점 때문에 오해의 소지가 생긴 것은 유감”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다가 다시 그날 저녁 자신의 강연이 악의적으로 왜곡 편집됐다며 해당 언론사를 고소하겠다고 나섰다.
그래서 나는 유튜브에 올라 있는 1시간 5분짜리 동영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봤다. 그의 강연이 우리나라가 이 정도로 잘 됐다는 것을 주제로 한 것인지는 몰라도, 조선 사람이 게으르다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사실이다. 맨 처음 선교사들의 책을 인용해 조선은 더럽고, 냄새 나며, 조선 사람들이 게으르다는 것을 언급하다가 나중에는 인용 없이 조선 사람들은 게으르다는 것을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일제가 우리를 강점할 당시 고종과 민비(그의 표현)는 미신에 젖어 자신들밖에 모르는 사람들로 묘사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 그의 강연 중에는 6·25 역시 미국을 붙잡아 두려는 하느님의 뜻이고 우리의 산업화가 일본의 덕을 봤다는 언급도 있다.
이런 내용을 보면 문창극 후보자의 역사관이 상당히 독특하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우선 전쟁이 하느님의 뜻이라면, 그때 순국한 이들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으며, 우리를 위해 참전한 연합국 병사들의 죽음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그리고 고종과 명성황후가 나라를 생각하지 않을 정도의 이기주의자들인지는 역사학자들이 반드시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가 자주 인용하는 윤치호는 친일파로 변절한 인물임에도 그의 일기를 자주 언급하는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다. 친일파의 일기라면 비판적으로 인용해야 하지만 최소한 나는 그런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이런 ‘특이한’ 역사관을 개인이 갖고 있는 것이야 자유겠지만, 총리의 역사관이어서는 곤란하다. 더구나 지금 박근혜 대통령은 일본의 극우화 경향에 대항해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지금의 한일관계가 이런 상황인데, 일본 덕분에 산업화가 됐다는 식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진 사람이 총리를 한다면 박근혜 대통령의 대일외교의 진정성은 훼손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KBS 보도에 따르면 그는 “우리가 선진국 반열에 오른 만큼 일본의 사과를 받을 정도로 나약하지 않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런데 위안부 문제는, 우리가 나약해서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이 이를 부인하고 있고 오히려 왜곡하고 있기에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것이다. 위안부 문제는 미국마저도 우리 편을 들고 있는 상황이다. 위안부 문제는 인류 보편적 인권에 관한 문제라는 것을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비롯해 많은 국가들이 인정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인권적 보편사적 관점에서의 일본의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 역시 문창극 후보자의 역사관이 일반적이지 않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점은, 이번 경우는 청와대의 인사 시스템도 거르기 힘든 문제였다는 점이다. 교회 강연까지 모니터링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사안에 대해서는 역시 피해자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이럴수록 청와대는 현명하게 일을 처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