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집 불리기만 급급한 ‘老테크’… 퇴직연금 운영엔 ‘뒷짐’

입력 2014-06-17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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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 8년 만에 84조 거대시장으로 급성장…DB형 1분기 수익률 0.8%에 불과

퇴직연금은 지난 2005년 도입 첫해 잔액이 163억원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12월 말 현재 84조원에 이르는 거대 시장으로 급성장했다. 올해는 100조원을 넘겨 2040년쯤이면 1000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현재 퇴직연금 가입자는 전체 상용근로자의 절반에 가까운 470만명이다.

정작 퇴직 후 노후를 위한 ‘최후의 보루’인 퇴직연금 수익률은 기대에 턱없이 못 미치고 있다. 금융사들이 실적에 급급해 몸집만 불리고 정작 운용에는 신경을 못 쓰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또 제도적으로도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개선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원금보전’ DB형 비중 커져 = 퇴직연금제는 확정급여형(DB), 확정기여형(DC), 개인형퇴직연금(IRP) 등으로 분류된다.

DB형은 회사가 투자로 손실을 내더라도 직원이 퇴직할 때 미리 계산된 퇴직금을 줘야 하지만, DC형은 회사가 퇴직금을 분기별이나 매년 정해진 계좌에 넣어주면 개인이 운용해 자금을 불리는 방식이다.

또 운용상품에 따라 원금이 보장되는 상품에만 투자하는 원금보장형과 주식이나 주식형펀드 등 실적배당형 상품에 투자하는 비원리금보장형으로 다시 구분한다.

현재 가장 가입 비중이 높은 상품은 DB형이다. 사용자와 근로자가 대부분 안전한 투자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지난 3월 말까지 퇴직연금 적립금 85조2837억원 가운데 DB형이 60조856억원으로 전체의 약 72%를 차지했다. DC형은 20.1%(18조893억원)로 상대적으로 가입이 저조했다.

그러나 DB형의 수익률은 날로 바닥을 치고 있다. 47개 퇴직연금 사업자의 1분기 DB형(원리금 보장)의 수익률은 0.8%에 불과한 실정이다.

퇴직연금 적립금을 가장 많이 운용하는 삼성생명(10조5000억원)의 원리금보장상품 수익률은 2012년 1분기 1.13%에서 올해 1분기 0.80%로 ‘제로 수익률’에 가깝다.

원리금을 보장하지 않는 상품에서는 아예 ‘마이너스 수익률’을 나타내는 곳도 허다하다. LIG손해보험은 -1.05%의 수익률로 금융권 꼴찌 수준이다. 흥국생명(-0.19%), IBK연금보험(-0.17%) 등에서도 마이너스 수익이 났다.

◇원금보장형 상품 비중 너무 높아 = 특히 퇴직연금시장에서 원금보장형 상품이 93%에 달하면서 도입 초기인 2007년 70%선보다 오히려 늘어난 점도 수익률 악화의 원인이다.

퇴직연금을 유치해 운용하는 금융사들이 투자위험 부담을 지지 않고 원금보전에만 집중하면서 수익률을 관리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예금금리가 3%가 채 되지 않기 때문에 원금보장 위주로 운용될 경우 수익률이 그만큼 변변치 않을 수밖에 없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보험사뿐 아니라 은행, 증권 등 퇴직연금 운용 금융사들이 영업에만 급급한 실정”이라며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되고 있는데도 원금보장형 상품의 비중이 높다 보니 정기예금 위주로 운용하기 때문에 수익률 관리에는 신경을 쓰고 있지 않는 실정”이라고 꼬집었다.

A은퇴연구소 관계자는 “원리금 보장형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저금리로 퇴직연금 운용 수익률이 떨어지면 결국 기업과 근로자의 손실로 전가되는 만큼 결코 안전한 게 아니다”고 지적했다.

◇다양한 투자하도록 제도 개선 필요 = 제도상 문제도 수익률 악화의 한 원인이다. 2005년 퇴직연금 출범 초기 금융감독원은 퇴직연금 설명 자료를 통해 은행의 예·적금을 1순위 투자대상으로 내세웠다.

이어 보험상품이나 상장주식과 투자적격채권 수익증권 등 유가증권, 기타발행어음이나 표지어음 등을 제시했다. 문제는 유가증권에 대해 증권거래법상 유가증권이면서 위험성이 크지 않아야 한다는 단서를 붙여 사실상 주식투자를 제한했다.

이에 현재 규정상 DB형 퇴직연금은 적립금의 30%까지 국내외 주식에 투자할 수 있고, 주식형 펀드나 파생상품 펀드 등의 간접투자도 50%까지 가능하다. 반면 DC형은 주식이나 파생상품에 직접 투자할 수 없고, 주식형 펀드나 부동산 펀드에 자산의 40%까지만 투자할 수 있다. 실적 배당형 퇴직연금에 가입하더라도 위험 자산에 투자해 수익을 내기 어려운 구조다.

금융감독원의 한 관계자는 “손실이 나도 회사에서 책임을 지는 DB형과 달리, 근로자의 퇴직연금 수급권을 보호하기 위해 DC형은 자산 운용에 보수적으로 한도를 뒀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수급권을 보호하면서 자산운용 규제를 개선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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