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형의 터닝 포인트] 금수원과 밀양, 공권력의 두 얼굴

입력 2014-06-17 10:55 수정 2020-02-21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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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이제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로 나뉘게 됐다. 사정기관은 사고 원인이 됐던 모든 걸 찾아내 서슬 퍼런 칼날을 세우고 있다. 적폐를 뜯어내고 비정상적인 관행도 없애겠다는 의지다.

사고 이후, 나라 전체가 책임져야 할 누군가를 찾아내기 위해 혈안이 되기도 했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 잘못하면 마녀사냥식의 비난이 쏟아졌다. 사고 직후 하루에 한번씩 마녀도 갈아치웠다. 민간잠수사 사칭녀와 막말 국회의원, 장학금을 받았던 해경에서 라면 먹었던 장관까지…. 매일 또 다른 대상이 마녀가 됐다.

그러는 사이 공권력은 관련 혐의자를 찾아내는 데 속도를 냈다. 사법기관도 사안의 중대성을 적극 감안했다.

그러나 이 나라 공권력이 유독 한 곳을 향할 때는 태도를 바꿨다. 사고 전까지 이름도 못 들어봤던 곳이다. 구원파 그리고 금수원이었다.

수사본부는 관련 혐의자 검거를 위해 금수원 진입을 머뭇거렸다. 종교단체라는 게 이유였다.

그렇게 시간을 끌다가 대통령까지 뿔을 냈다. “못잡는 건 말이 안된다”는 한 마디에 부랴부랴 진입 계획을 세웠다. 대통령 발언은 사실상 금수원 진입명령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마당에 수사본부는 구원파를 위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금수원 진입 전 사전협의까지 거쳤다. 물리적 충돌을 막겠다는 게 이유였다. 이쯤되면 시간 벌어주고 도피 기회 제공했다는 비난은 피할 길이 없어 보인다.

결국 힘들게 구원파의 동의를 얻어 금수원에 진입했다. 그러고도 핵심 인물의 신병확보는 실패했다.

그렇게 세상의 관심이 금수원에 쏠렸던 날, 공교롭게 경남 밀양 송전탑 반대 농성장도 철거됐다.

농성장을 지켰던 이들은 70~80대였다. 이들은 구원파만큼 조직력을 갖추지 못했다. 그들처럼 배운 사람도 아니다. 그들처럼 조직적으로 수억원의 돈을 모을 여력도 없다. 그저 얼마 안 남은 삶을 편하게 보내고 싶다는 평범한 노인들이었다.

그 노인들 사이사이에 천주교 수녀들도 무릎을 꿇었다. 주민의 마음을 십분 이해하기에 수녀들은 농성장에서 손을 모으고 기도했다. 철거원들과 경찰이 들이닥치자 함께 팔짱을 끼고 인간사슬을 만들어 노인들을 보호했다.

그러나 이날 밀양에서 보여준 공권력은 금수원 앞의 그들과 달랐다. 거침이 없었고 주저없이 노인들을 끌어냈다.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수녀들도 헌신짝처럼 끌려 나왔다. 팔다리가 들린 수녀들은 농성장 밖으로 내던져졌다.

구원파가 종교단체라며 눈치를 보던 대한민국 공권력은 밀양 송전탑 앞 수녀들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렇게 마을 어르신과 수녀들이 경찰에 맞서 농성장을 지키려다 부상을 입었다. 그리고 몇몇은 병원으로 실려갔다.

경찰은 두 가지 현장의 사안이 달랐고 말한다. 그러나 ‘종교단체’라는 이유로 금수원 앞에서 발만 굴렀던 공권력은 밀양의 수녀들 앞에서 거침이 없었다.

나아가 한술 더 뜨기도 했다. 수녀들을 헌신짝처럼 끌어냈던 여경들은 한데 모여 기념촬영도 했다. 환한 미소와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며 카메라 앞에 섰다. 이쯤되면 냉정을 찾기 어려워진다.

기자 개인적으로 천주교와 연관이 없고 종교도 없다. 그래도 뚜렷하게 알고 있다. 종교든 노조든 조폭이든, 대한민국의 법은 모두에게 준엄해야 한다는 것을.

2014년 현재, 우리의 공권력은 분명 구원파를 두려워하고 있다. 대신 천주교 수녀들은 헌신짝 취급했다. “종교단체인 까닭에 금수원 진입이 쉽지 않았다”는 공권력의 핑계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어졌다. 그들 스스로 만든 모순은 이제 해명조차 어렵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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