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스마트] ‘지우고 싶은’ 나, ‘알아야 하는’ 남… 무엇이 우선일까

입력 2014-06-2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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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엔진 고도화에 개인정보 동시 다발적 확산… ‘잊혀질 권리’ 찬반논란

“50만원으로 온라인상에서 활동했던 흔적을 모두 지워 드립니다.”

온라인상에 표출된 자신의 모든 흔적을 삭제하는 일명 ‘디지털 장례식’의 사례가 늘고 있다. 개인정보와 모든 사실이 낱낱이 노출돼 있는 현실에서 잊고 싶은 과거나 좋지 않은 추억거리를 온라인에서 지우고 싶은 것은 누구나의 갈망이다.

인터넷에 이름 석 자를 치면 수천건이 훨씬 넘는 뉴스와 정보들이 쏟아지는 유명인은 물론 각종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이들은 말할 것도 없다. 이 같은 상황에서 최근 유럽에서 나온 온라인상에서의 ‘잊혀질 권리’ 인정 판결이 국내에도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 잊혀질 권리를 둘러싼 찬반 논란 = 인터넷 공간에 자신도 모르게 퍼져 있는 ‘나’에 대한 정보들을 삭제할 수 있도록 인정하는 ‘잊혀질 권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잊혀질 권리’란 정보의 주체가 온라인상의 자신과 관련된 모든 정보에 대한 삭제 및 확산 방지를 요구할 수 있는 자기결정권 및 통제권을 말한다.

정보기술의 발달과 인터넷 검색엔진의 고도화로 의도하지 않았던 개인정보들이 저장되고 검색되는 경우가 점차 많아지는 추세다. 심지어 한 번 생성된 개인정보는 퍼나르기 기능으로 인해 동시 다발적으로 인터넷에 퍼지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잊혀질 권리에 대한 찬반 논란도 강하게 일고 있다. 시간이 너무 흘렀거나 본인에게 피해를 주는 정보에 대해 삭제를 요구할 수 있는 ‘잊혀질 권리’와 이 권리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반대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고질적 문제이던 개인정보 보호 문제에 대해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가 있는가 하면, 표현의 자유와 알 권리를 침해해 시대에 역행한다는 평가로 엇갈리고 있는 셈이다.

찬성 입장의 경우, 특히 대학생 대부분이 ‘잊혀질 권리’ 입법에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말 전병헌 의원이 한국인터넷진흥원에서 제출받은 ‘잊혀질 권리의 국내 제도 도입 반영 방안 연구’에 따르면 대학생 191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81%의 대학생들이 잊혀질 권리 입법에 대해 찬성한 것으로 집계됐다. 인터넷 사용인구 비율이 젊은층에 몰려 있는 만큼 개인정보 노출에 상대적으로 민감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잊혀질 권리에 따른 부작용 가능성도 간과할 수 없다. 무언가를 숨기려는 사람에 의해 이용되는 등 권리를 악용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흉악범죄자 또는 문제를 일으킨 기업이 관련 내용과 기사 삭제를 요청하거나, 대통령을 비롯한 국가 기관 또는 정치인이 부적절한 표현 등에 대한 삭제를 요청해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 알 권리를 모두 침해할 수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업계 전문가들은 “잊혀질 권리도 중요하지만 알 권리, 표현의 자유 등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에 균형을 맞추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사회적 논의를 통해 합의의 틀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국내 적용 움직임…앞으로 방향은 = 잊혀질 권리에 대한 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인 가운데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 16일 잊혀질 권리의 국내 적용 가능성과 법제화를 위한 논의 목적으로 ‘2014 온라인 개인정보 보호 콘퍼런스’를 개최했다. 잊혀질 권리를 국내에서 적용하고 법제화시키기 위해서는 사용자 합의와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정찬모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잊혀질 권리의 국내 도입은 신중해야 한다”며 “우선 현행 정보통신망법상 사생활 침해 정보에 대한 삭제요청권의 운용을 재점검하는 수준에서 대응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라고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황성원 한국인터넷진흥원 단장도 신중론을 펼쳤다. 그는 “이용자들이 합의할 수 있는 수준에서 잊혀질 권리가 보장될 필요가 있으며, 도입 이후에도 공정성과 투명성을 유지할 수 있는 전담기구도 필요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잊혀질 권리 도입을 적극 권장하는 전문가들 역시 논란 방지를 위한 방안도 함께 제시했다. 김경환 법무법인 민후 변호사는 “개인정보보호법 삭제·처리정지권을 유럽사법재판소가 인정한 잊혀질 권리의 근거 조문으로 볼 여지가 있다”며 “다만 이 권리의 인정 여부에 대해 논란이 지속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명확한 근거 규정을 도입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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