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행 사외이사들이 경영진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국IBM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하는 방안을 강행했다. 사외이사가 경영진을 배제한 채 독자적으로 의결 안건을 상정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으로, 전산시스템 교체를 둘러싼 국민은행 이사회의 내부 갈등이 경영 파행으로까지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국민은행 이사회는 23일 오전 9시 여의도 본점에서 임시 이사회를 열고 IBM을 불공정 거래행위 혐의로 공정위에 신고하는 안건을 논의했다. IBM과의 메인프레임 시스템 사용 계약이 끝나는 내년 7월 이후 은행이 시스템을 연장 사용할 경우 매달 약 90억원의 할증 사용료를 지불하도록 한 기존 계약 내용이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에 해당한다는 것이 신고 사유다.
국민은행은 이사회 갈등으로 유닉스(UNIX) 시스템으로의 전환이 사실상 중단돼 내년 7월 이후에도 일정 기간 기존 IBM 메인프레임 시스템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날 임시 이사회 개최와 안건 상정은 이건호 국민은행장과 정병기 상임감사는 물론 은행 임원진의 관여를 배제한 채 사외이사들이 직접 주도해 추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간 부문에서 사외이사들이 경영 안건을 이사회에 직접 상정하는 일은 극히 이례적이다. 국민은행 이사회(10명)는 사외이사가 6명으로 절반을 넘는다.
이번 이사회 개최로 전산시스템 교체를 둘러싼 국민은행 이사회의 내부 갈등은 더욱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의 제재가 확정되고 이사회가 안정되기 전까지 국민은행의 경영 파행이 불가피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최근 사외이사들이 금융감독원으로 부터 경징계 통보를 받은 상황을 고려하면 공정위 제소를 통해 이사회 결정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사외이사들이 오는 26일 예정돼 있는 금감원의 제재심의위원회에서 징계 수위를 낮추기 위한 목적도 있다는 것이다.
한편 국민은행 노동조합은 사외이사들의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법적 대응을 검토 중이다. 아울러 해당 이사진 8명에 대한 직무정지 가처분 신청과 지난 4월 24일 유닉스 전환을 승인한 이사회 의결에 대해서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