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관리에 뛰어난 농산물 유통·식품전문가로 통하는 김재수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사장이 펼치는 ‘신(新) 농업’ 철학이다. 김 사장은 “농업정책을 생산 위주의 1차산업 차원으로 접근하다보면 농가소득 증대와 고부가가치 창출에 한계를 직면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또 농정의 조직·인력·예산의 90%가 생산에 편중돼 있는 구조도 개혁이 절실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하루 빨리 먹는 농업에서 탈피해 기능성ㆍ관광ㆍ치료 농업으로 전환하고 연구개발(R&D)를 통한 기술융합으로 농업의 6차산업화를 앞당겨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김 사장은 올해 농식품 수출액이 처음으로 100억 달러를 돌파할 것이라는 전망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한국 농업의 패러다임이 ‘수출 농업’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에서다. 현실적으로 우리 농산물 중에서는 ‘수출 스타 상품’으로 내세울만한 품목이 없다는 점에서 가공품을 통한 수출만이 살 길이라고도 했다.
△‘농축산물 유통구조 개선’은 농업 분야에서 박근혜정부의 최우선 국정과제였다. 지난달 말에는 수정 보완 대책까지 나왔다. 그동안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뒀나.
“로컬푸드직매장 지원 등 직거래 활성화에 주력한 결과, 2012년 1조3000억원이던 농산물 직거래액은 지난해 1조6000억원으로 18% 늘었다. 유통비용도 같은 기간 2919억원에서 4250억원으로 46%나 절감할 수 있었다. 특히 작년부터 수급조절위원회와 수급조절상황실을 운영하면서 무·배추·고추·마늘·양파 등 국민식생활과 밀접한 5대 품목에 대한 체계적인 수급관리에도 힘썼다. 다행히 이들 품목의 가격변동폭은 2010년~2012년 평균 19%에서 작년 12.9%로 6.1%포인트나 완화됐다.”
△농산물 유통구조 개혁의 성공 요건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앞으로의 농산물 유통구조 개혁은 직거래 활성화와 유통경로 간 경쟁 촉진을 통해 유통비용을 줄이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본다. 이를 위해선 기존 도매시장에서의 경매위주의 거래관행을 바꿔서 사전가격을 미리 정하는 정가거래나 상대를 정하고 거래하는 수의제도를 활성화해야 한다.
다만 정부가 유통구조를 인위적으로 축소 또는 단축하기 보다는 생산자단체의 기능을 확대하고 유통주체들의 유통효율성을 높이는 데 무게를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는 산지유통조직의 조직화와 규모화, 창의적이고 새로운 유형의 직거래시스탬 구축과 강화, 온라인 사이버거래 확충 등을 통해 실현할 수 있다.”
△하지만 올 들어 가속화된 채소값 하락에 농심이 타들어가고 있다. 품목만 다를 뿐 매년 농산물 가격 폭락은 농업계 현안 중 단골손님으로 꼽힌다. 그 원인은 무엇이며, 대책은.
“올해 기상여건이 양호한데다 재배면적이 증가해 전체 채소류에 대해 유례없는 공급과잉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다양한 수급안정대책을 마련하고는 있지만 구조적 과잉과 과소생산 형태가 반복되고 있는데다 시장격리 대책 집행과정에서 이탈자도 많이 나타나고 있다. 전 품목이 과잉생산되다보니 수급안정을 위한 정부의 수매비축 시설도 부족한 상황이다.
이에 공사는 수요과 공급의 균형을 위해 재배면적 신고제를 도입하고, 중앙정부와 함께 품목별 주산단지 지자체와 생산자단체의 역할 강화해나가려 한다. 합동점검반을 운영해 시장격리 이탈자를 막고 오는 2016년까지 1111억원(4개 권역)을 투입, 비축기지 현대화ㆍ광역화 사업을 통해 비축규모도 늘려나가려 한다.”
△한국이 칠레와 처음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며 세계통상무대에 데뷔한 지도 10년이 됐다. 이후 미국, 유럽연합(EU), 아세안 등 47개국과 FTA를 맺은 데 이어 중국ㆍ일본과도 FTA를 추진하며 통상강국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약한 농수산분야에 대한 피해는 불가피해 보인다. .
“당초 우리 농업에 대한 피해가 클 것으로 예상됐던 농업대국 미국, EU와의 FTA 체결 이후, 이들 나라에 대한 농수산식품 수출은 증가한 반면, 수입은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FTA활용률도 70~77%로 높게 나타나고 있다. 각국과의 FTA는 농식품 수출 기회를 늘리고 국내 농산물 수급조절과 가격안정, 농식품 가공산업 발전 촉진 등 간접적인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 FTA에 대해 막연한 불안감을 갖기보다는 사전에 철저히 준비하고 대비 전략을 세운다면 한단계 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
△하지만 중국과의 FTA는 상황이 다르지 않은가.
“아니다. 일각에서는 한ㆍ중FTA 체결로 인한 우리 농업분야 피해 규모가 한ㆍ미 FTA때보다 더 큰 약 24조원 이를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기도 한다. 그러나 아직 구체적인 체결내용이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한 피해규모는 파악하기 어렵다.
한중 FTA 발효는 14억 중국시장도 동시에 열린다는 의미다. 중국과의 지리적 인접성, 유사한 식습관, 한류붐 확대, 중국 관광객의 증가, 위엔화 절상 등의 기회를 적극 활용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중국 내 우리 농수산식품의 수출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조만간 완공될 aT의 칭다오 물류기지와 같은 물류 인프라를 늘려 원스탑 수출지원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중국 내 유통에 정통하고 협상력이 높은 한족을 수입바이어로 발굴해 전국단위의 유통망을 구축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농업선진국과의 잇따른 FTA 체결을 계기로 농식품 수출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커졌지만, 수출 과정에서의 애로사항도 적지 않다고 들었다.
“공산품과 달리 농식품은 국가별, 품목별로 수출환경이 모두 제각기 다르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각 나라별로 소비자의 기호도와 선호도를 파악해야 한다. 각 국가별로 검역과 위생기준, 통관규정 등의 비관세장벽도 여전하며, 높은 물류비용, 수출시장개척을 위한 질 높은 정보 부족, 환율변동위험과 수출대금 미수위험, 수출 전문인력 부족 등도 애로사항으로 꼽힌다. 따라서 수출 품목의 현지 생산과 유통현황, 식품소비 트랜드, 수출입현황, 위생과 검역, 통관시스템, 관세와 비관세장벽, 클레임 등 수출에 필요한 사전정보를 충분히 조사하고 숙지한 후 각 상황에 맞게 수출전략을 치밀하게 짜는 것이 중요하다.
aT는 정부와 함께 수출현장의 애로를 해결하기 위해 ‘민관 합동 수출개척협의회’라는 현장의 다양한 애로사항을 해결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지난 3월에는 ‘농식품 수출애로상담실’을 설치, 수출경험과 해외근무 경험 등을 두루 갖춘 전문가를 상담일선에 배치해 체감도 높은 상담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 말 방만경영 중점관리 대상기관으로 지정됐는데, 오는 9월 중간평가에 대비해 어떠한 정상화 노력을 기울이고 있나.
“정부로부터 방만경영을 지적받은 직후 부사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이후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한 현장설명회 및 노사합동워크숍, 노사간담회 등을 수시로 열어 정상화의 당위성에 대한 공감대 마련을 위해 노력했다. 정부 가이드라인에서 벗어나는 복지제도는 과감히 개선하겠다는 계획도 이미 제출했다. 노조집행부와는 지속적으로 핫라인을 가동해 소통한 결과, 노동조합과 1인당 복리후생비를 비롯한 장기근속포상금, 휴가 및 복지제도, 휴직급여, 자녀 학자금 개선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아직 합의가 되지 않은 퇴직금 부분은 노사간부 워크숍 등을 통해 노사간의 협의점을 찾을 계획이다.”
△입각이나 정치권 진출 등의 얘기가 많다. 앞으로의 계획은.
“특정자리에 연연하고 싶지는 않다. 그동안 쌓은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농업분야, 특히 제3국의 농업발전이라든지, 세계 빈곤퇴치를 위한 구호물자 조달과 원조 등 공익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
가령 식량과 농업에 관련된 사람들을 모아 포럼을 주도한다든지, 외교상의 문제 때문에 국가가 직접 나서서 할 수 없는 대북식량지원 등을 대신한다던가 고령화 시대 노인관련 문제에 도움이 되는 일들을 하며 남은 인생을 보람있게 보내고 싶다.”
◇ 김재수 aT 사장 프로필
◆학력 △1974 경북고 △1978 경북대 경제학과 △1984 서울대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1988 미국 미시간 주립대 경제학 석사 △2001 중앙대 경제학 박사 ◆주요경력 △1977 제21회 행정고시 합격 △농림부 식량정책과장ㆍ농산물유통국장 △농업연수원장 △농식품부 기획조정실장 △농진청장 △농림수산식품부 제1차관 △2011.10~ aT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