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 공백 100일…변화하는 삼성

입력 2014-08-13 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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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에 긴장이 감돌고 있다.

이건희(72) 회장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지면서 생긴 경영 공백이 100일 가까이 지속되는 가운데 주력인 스마트폰 사업이 처음 역성장을 기록하면서 성장동력 고갈에 대한 우려가 그룹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삼성그룹은 안팎으로 직면한 도전에 맞서 사업·지배구조 재편과 함께 경영 쇄신 드라이브를 걸며 조직을 다잡는 모습이다.

크고 작은 변화도 잇따르고 있다. 3년여 동안 스마트폰 특허 소송을 벌여온 미국 애플과의 관계에 변화가 생기는가 하면, 7년을 끌어온 그룹 현안인 삼성전자 직업병 문제도 본격적인 협상에 돌입하며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 이건희 회장 공백 100일

이건희 회장이 17일로 입원 100일째를 맞는다.

삼성그룹 측은 이 회장의 병세에 대해 "서서히 호전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 측은 이 회장의 구체적인 상태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이 회장은 눈을 뜨고 있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고, 외부 자극에 대한 반응도 조금씩 강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서울병원 의료진은 입원 한 달째인 지난 6월 초 "이 회장이 하루 8∼9시간 정도 눈을 뜨고 손발을 움직이는 상태"라고 밝힌 바 있다.

삼성 측은 병상에서 주요 사안에 대해 말씀을 드리면 반응도 하는 상태라고 전한 바 있다. 하지만, 아직 의사소통이 가능한 상황은 아니다.

이 회장은 5월10일 밤 급성 심근경색을 일으켜 자택 근처 순천향대학 서울병원에서 심폐소생술(CPR)을 받고 삼성서울병원으로 이송돼 5월11일 새벽 막힌 심혈관을 넓혀주는 심장 스텐트(stent) 시술을 받았다.

이어 뇌·장기 조직 손상을 최소화하기 위한 저체온 치료를 받고 진정치료를 계속하다 심폐 기능이 정상을 되찾아 일반 병실로 옮겨졌으며 입원 보름 만에 혼수상태에서 회복했다.

◇ 이재용 구심 역할…경영 안정 유지

장기화되는 총수의 경영 공백 속에서도 삼성그룹은 당초 우려와 달리 큰 차질 없이 경영을 해나가고 있다.

평소 '관리의 삼성'으로 불릴 만큼 잘 짜인 경영 시스템에 이재용(46) 삼성전자 부회장이 그룹 전체의 구심으로서 역할을 수행하면서 경영 안정을 유지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일상적인 업무는 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과 계열사 경영진이 협의해 처리하지만, 중요한 의사 결정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직접 관여함으로써 사실상 이건희 회장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은 지난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 때 세부 행사를 일일이 챙기며 시 주석을 밀착 마크하는 등 자신감 있는 대외 행보를 펼치고 있다.

특히 수년간 걸림돌로 작용했던 크고 작은 경영상 난제들을 하나 둘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 애플과 관계 급진전…백혈병 문제 대화 물꼬

이 부회장은 지난달 말 미국 미디어콘퍼런스에 참석하고 돌아온 지 2주 만에 다시 미국 출장길에 올라 여러 가지 관측을 낳았다.

그리고 며칠 뒤 삼성전자와 애플이 미국을 제외한 국가에서 모든 특허 소송을 철회하는 데 합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2011년 4월 애플이 미국 법원에 삼성전자를 제소하면서 소송전이 시작된 지 3년4개월 만에 극적인 화해무드가 조성된 것이다.

양사의 관계가 급진전된 데는 이 부회장의 협상력과 결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이 부회장은 앞서 지난달 미국 선밸리에서 열린 미디어콘퍼런스에서 애플 최고경영자(CEO) 팀 쿡과 나란히 있는 모습이 취재진 카메라에 포착돼 관계개선에 대한 기대를 낳기도 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의 백혈병 피해 노동자 보상 문제와 관련해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과 대화의 물꼬를 튼 것도 중요한 경영상의 변화다.

삼성전자는 이건희 회장이 입원하고 사흘 뒤(5월14일) 권오현 삼성전자 대표이사(부회장)가 직접 나서 합당한 보상을 약속하는 등 쟁점 사항에서 전향적인 태도 변화를 보이면서 대화를 끌어냈다.

아울러 지난 6월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사 노사의 단체협약 협상을 타결지음으로써 수개월 끌어온 갈등을 매듭지은 것도 눈에 띄는 경영 성과로 평가된다.

임단협 체결을 요구하며 지난해 7월부터 파업 투쟁을 벌인 삼성전자서비스 노조는 조합원 자살 사건 이후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40일 넘게 해오던 농성을 풀었다.

◇ 실적 악화에 경영 쇄신 드라이브

삼성그룹은 전자 계열사들의 실적 성장이 꺾이면서 최대의 도전에 직면했다.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던 삼성전자는 올 2분기 영업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5% 급감하면서 '어닝 쇼크'를 불러왔다. 중국 경쟁사들에 밀려 스마트폰 판매가 처음 감소세로 돌아선 탓이다.

이는 그룹 전체의 성장동력 상실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다.

지금까지 중화학, 건설, 금융 계열사들의 실적 부진이 지속되는 가운데도 사실상 삼성전자 홀로 그룹 성장을 이끌어왔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그룹 전체 순이익 24조2천억원 가운데 74%인 18조원을 담당했다.

이런 가운데 삼성그룹은 경쟁력 강화를 위한 경영 쇄신에 돌입했다.

삼성전자는 경영지원실 소속의 스태프 인력을 각 사업부문 일선에 배치하는 등 현장 중심의 경영을 강화하는 한편 출장비 축소 등 비용절감에 나서고 있다.

삼성전기[009150]는 경영효율화를 위해 그룹 차원의 경영진단을 받고 있으며, 삼성SDI[006400]는 PDP 사업을 정리하면서 장기 근속직원에 대한 희망퇴직을 실시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본격화된 그룹 전반의 사업·지배구조 재편 작업도 일정대로 진행하고 있다.

삼성그룹은 지주회사 삼성에버랜드는 지난해 제일모직 패션부문을 인수한 데 이어 지난달 사명을 '제일모직'으로 바꾸고 내년 1분기 상장을 준비 중이다.

삼성SDS도 연내 상장을 추진하고 있다.

이들 양사의 상장은 이어질 사업·지배구조 재편의 지렛대 역할을 할 것으로 관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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