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기자의 모터키즈] 기아차 “쉿, 기자들 산에 묻어버려!”

입력 2014-08-17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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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를 좋아하는 마니아에게 가장 큰 관심거리는 새로 등장할 자동차의 신차 정보입니다.

과연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지, 또 어떤 신기술이 접목될지 늘 관심이 모아지곤 하지요. 독자의 관심이 커질수록 기자의 취재목적도 자연스럽게 그곳에 부합됩니다.

이런 성향은 해외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독일 3대 모터스포츠 성지로 불리는 '뉘르부르크링(독일에서 이름난 자동차 주행시험 트랙)'이 대표적이지요.

글로벌 완성차 메이커들의 주요 모델이 출시 전 이곳에서 테스트 주행을 치릅니다. 현대차 제네시스 역시 뉘르부르크링에서 주행안정성을 점검했습니다. 총 길이 20.8km의 이 트랙은 가장 낮은 곳과 높은 곳의 해발고도가 300m나 차이 납니다. 실제로 이곳에서 극단적인 속도로 달리다보면 심장이 벌렁거리기도 해요.

이곳에서 테스트 중인 차들이 해외 자동차 매체를 통해 공개되기도 합니다.

문제는 언제나 사진의 앵글이 비슷하다는 것인데요. 이유는 뚜렷합니다. 뉘르부르크링에는 이런 사진을 촬영하기 위한 기자들의 촬영장소가 지정돼 있습니다. 한 마디로 안전지대(?)인 셈인데요.

촬영을 위해 큰 사고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한 배려라고 보면 됩니다. 완성차 메이커들도 이 지점을 알고 있지만 묵인해주는 셈이지요.

▲독일 뉘르부르크링은 총길이 20.8km를 바탕으로 표고차 300m를 지닌 극단의 테스트 트랙입니다. 이곳에서 글로벌 완성차 메이커의 고성능 모델이 출시전 막바지 테스트를 치르기도 합니다. 사진은 뉘트부르크링에서 테스트 중인 현대차 제니시스(DH)의 모습. (사진=현대차)

우리도 일반국도 또는 고속도로에서 위장막을 씌운, 개발중인 신차를 종종 보게됩니다.

완성차 회사의 개발단계는 큰 틀에서 P1→P2→PP단계를 거쳐 양산됩니다. 우리가 도로에서 만나는 개발차들은 PP단계. 즉 양산 직전의 프리-프로덕트가 대부분입니다.

이렇게 일반도로에서 테스트중인 신차는 모두 두터운 천을 겹겹으로 둘러싸고 있습니다. 디자인을 알아볼 수 없게끔 보디 스크린을 덧씌운 것인데요. 흔히 말하는 위장막입니다.

▲완성차 메이커는 본격적인 양산에 앞서 일반도로 주행을 통해 전반적인 문제점을 파악하고 개선합니다. 그러나 디자인 노출을 막기 위해 보디 스크린을 덧씌우고 주행을 하지요. 이른바 위장막입니다. 사진은 공도주행 테스트를 위해 위장막을 두른 스포티지R의 모습. (사진=노진환 기자(myfixer@etoday.co.kr))

◇ 이제 위장막도 패션=이런 위장막도 요즘은 많은 발전(?)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앞뒤를 두툼하고 검은 천으로 둘러씌워 디자인을 알아볼 수 없게끔 만듭니다. 신차 디자인은 자동차 회사의 영업비밀이자 지적자산이니까요.

그러나 이런 위장막은 아무리 차체와 꼼꼼하게 부착해도 주행중 공기의 영향을 받습니다. 보디와 위장막 사이에 공기가 들어차면서 위장막이 펄럭거리는 것이지요.

이 경우 운전자는 굉장히 소음 스트레스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펄럭거림을 막으려고 납으로된 지지대를 위장막에 붙이기도 합니다. 펄럭거림은 줄어들지만 돌출된 납덩이 탓에 풍절음이 귓가를 간질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요즘은 복잡한 무늬를 가진 스티커를 차 전체에 두릅니다. 이른바 래핑(WRAPPING)이지요.

▲위장막을 덧씌운채 고속주행에 나서보면 여간 불편한게 많습니다. 공기저항 탓에 위장막이 펄럭이면 적잖게 신경이 쓰이지요. (사진=현대차)

한때 도로 위에서 이런 위장막 차량을 만난다면 은근 호기심이 동하기도 했습니다. 서둘러 카메라를 꺼내들고는 촬영하기도 했지요. 그러나 이런 행동도 모두 옛말이 됐습니다.

요즘 자동차 전문기자들은 새로 나올 신차의 디자인을 미리 보기도 합니다. 다만 자동차 회사 연구진들과 일련의 합의(?)가 있어야 합니다. 물론 시승도 가능합니다. 다만 연구소 내 지정된 시험장에서 개발 중인 신차를 타보는 경우입니다.

오고가는 위장막 테스트 차에 목숨을 걸듯 카메라 셔텨를 눌러대는 기자들도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완성차 메이커의 연구소에서 개발 중인 신차를 경험하지 못한 경우입니다.

개발중인 차량을 미리 경험하는 것은 단순한 시승의 의미를 넘어섭니다.

완성단계에 접근한 만큼 전체적인 레이아웃보다 세부적인 내용에 대해 연구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지요. 연구원들 역시 수많은 자동차를 모두 접하는 자동차 전문기자의 의견이 필요하기도 하니까요.

▲최근 유럽을 중심으로 위장막 대신 래핑(Wrapping)이 주로 쓰입니다. 공기저항을 덜 받으면서 보디 디자인 유출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지요. 사진은 현대차 i20 WRC 버전의 테스트 모습. (사진=뉴스프레스UK)

물론 이런 경우 엠바고, 즉 자체적으로 보도제한에 대해 합의합니다. 때문에 언제부턴가 위장막을 덧씌운 개발차량에 관심을 두지 않았음을 고백합니다. 이미 가면 속 그녀의 쌩얼을 확인한만큼 더 이상 궁금증이 동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15년 전, 그러니까 이제 막 수습기자 티를 벗어낼 무렵에는 이런 신차개발 정보를 독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직접 ‘사냥(?)’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당시는 요즘처럼 스마트폰 카메라가 보급되지도 않았고, 컴퓨터를 켜도 신차 개발 정보는 제한돼 있었습니다. 결국 자동차에 대한 정보는 자동차 전문매체에서 얻어낼 수 있는게 유일했습니다.

▲래핑으로 디자인을 감춘채 독일 뉘르부르크링에서 테스트하는 혼다 시빅 타입R. (사진=뉴스프레스UK)

◇ 감추려는 者, 벗기려는 者=완성차 메이커별로 이런 개발중인 위장막 시험차를 촬영하기 위한 포인트가 여러 곳 있게 마련이지요. 이런 금쪽같은 알짜정보는 대부분 선배기자들의 노하우를 감사하게 하사받으며 얻습니다.

그러나 어느 틈엔가 휴대전화에 카메라 기능이 접목이 되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나아가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소형 디지털 카메라는 시장에서 사라졌습니다. 화질은 또 어떤가요. 웬만한 디지털 카메라보다 더 뚜렷한 화질을 지닌게 요즘 휴대전화입니다.

그러다보니 자동차 회사들도 다급해졌습니다. 철저하게 영업비밀을 지켜야 하는데 스마트폰이 수천만대 보급되다 보니 이조차 쉽지는 않았던 것이지요.

때문에 연구소를 벗어나 일반 공도시험에 나설 때에는 차 뒷유리에 경고장도 붙여놓습니다. ‘촬영하면 법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의미지요.

디자인을 감추려는 이들과 어떻게 해서든 이 위장막을 벗겨내려는 이들 사이의 신경전도 여기에서 시작합니다.

▲위장막을 덧씌운채 고속주행에 나서보면 여간 불편한게 많습니다. 공기저항 탓에 위장막이 펄럭이면 적잖게 신경이 쓰이지요. (사진=현대차)

▲위장막과 함께 운전석 뒷유리에는 "촬영하면 법대로 하겠다"는 현대기아차의 경고장도 붙어있습니다. 지적재산을 지키기 위한 완성차 메이커의 노력은 처연하기까지 합니다.

한편으로는 야속하기도 합니다. 영업비밀에 앞서 이른바 스파이샷을 찍는 마니아들은 그만큼 관심이 있다는 의미인데요.

자동차 회사에서 이런 마니아들의 마음을 이해해줬다면 좋았을텐데 ‘법적 책임’ 운운하는 경고장을 붙여놓고 다닌다는게 조금은 야속하기도 합니다. 회사의 영업기밀이지만 당신들 회사는 누구 덕에 이만큼 성장했던가요?

10여년 전, 기아차가 1세대 쏘렌토 출시를 앞두고 있을 때였습니다. 당시 위장막을 겹겹이 둘러싼 쏘렌토는 큰 관심을 모았습니다. 그러나 디자인이 어떻게 등장할지 아무도 몰랐던 상황이었지요.

공도에서 촬영할 수 있는 시험차는 대부분 위장막 탓에 디자인을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연구소라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연구소 내부에서 시험차가 이동할 때에는 위장막을 씌우지 않습니다. 여성들이 외출할 때만 화장을 하지, 하루 종일 집에 있을 때 어디 화장을 하던가요? 그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쏘렌토 알몸(?)을 촬영하겠다며 몇몇 전문 매체가 사냥팀을 꾸렸습니다. 사진기자와 취재기자 6~7명이 쏘렌토 사냥에 나섰습니다. 나온 결과는 공유하고 똑같은 시기에 기사화하기로 합의(?)를 마친 것이지요. 치사하게 위장막 씌워진 쏘렌토가 아닌, 쏘렌토의 실제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오겠다며 출발했습니다.

◇ 기아차 "쉿, 기자들 산에가서 묻어버려" = 장소는 화성공장 내 주행시험장. 프루빙그라운드라고 불리는 이곳 선회주행시험장의 실험차를 촬영하자는게 목표였습니다.

자동차 전문기자들만 알고 있는 촬영포인트로 향했습니다. 인근에 유일한 초고층(?) 5층짜리 건물 위로 올라간 것이지요.

▲기아차 화성공장의 모습. (사진=기아차)

그렇게 얼마간 기다렸을까. 주행시험장으로 쏘렌토 2대가 등장했습니다. 사진기자들은 대포(?)만한 망원렌즈로 쏘렌토를 겨냥했습니다. 그리고 연신 셔터를 눌렀습니다.

조용한 적막이 흐르는 가운데 셔터 소리만 긴장감을 깨트리며 울려퍼지고 있었지요. 당시는 디지털 카메라 보급 이전이었습니다. 다급하게 필름을 새로 바꿔 넣어가는 선배 사진기자의 손놀림은 마치 탄창을 갈아끼우는 저격수처럼 보였습니다.

얼마간 시간이 지났습니다. 이미 필름 수십개가 카메라에 들어갔다가 빠져나온 상황이었습니다. 순간 느닷없이 여기저기서 노란 경광등을 켠 기아차들이 주변에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할리우드 영화에서 본, 범인들의 은신처에 경찰차들이 몰려드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순식간에 건물을 둘러싼 차들은 기아차 보안팀 차량들이었습니다. 재빨리 건물 옥상으로 돌진(?)한 이들은 기자들을 둘러쌌습니다. 덩치 큰 기자들을 둘러싸기에 인원이 모자랐습니다. 이들은 서둘러 무전으로 지원 요청을 했습니다. 이윽고 십수명 기아차 보안요원들이 기자들을 둘러싸는 상황이 됐지요.

▲개발 중인 신차는 연구소 내에서 위장막을 두르지 않습니다. 외출할 일이 없으면 하루 종일 쌩얼로 집에서 머무는 여성들과 다를게 없는 셈이지요. 사진은 특정기사와 관련이 없음. (사진=기아차)

기아차 보안요원들은 신분이 확인 안된 우리를 산업 스파이로 몰아갔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난생 처음보는, 길고 굵은 렌즈의 카메라를 두고 은밀히 숨어 주행시험장을 촬영하고 있었으니까요.

옥신각신 몇 차례 실랑이가 이어졌습니다. 신분 확인을 요구하는 그들에게 누구임을 밝혀야할 이유는 없었으니까요. 이윽고 출동했던 경찰이 기자들의 신분을 확인했습니다. “신고가 들어왔으니 어쩔 수 없다. 협조해달라”는게 경찰의 입장이었습니다.

실랑이가 이어졌고 기자 신분이 확인된 뒤에야 기아차 보안팀장이 기자들에게 다가왔습니다.

“본사와 통화했습니다. 기자님들 신원은 확인됐는데…. 저희 입장이 곤란해질 수 있습니다. 일단 산에 가서 이야기 하시죠”

순간 화들짝 놀랐습니다.

‘아니 갑자기 왜 산에?’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 사람들이 우리를 산에 가서 묻어버릴려고 하나?”

“이렇게 기자 생활하다 땅에 묻히는건가…”

오만 잡생각이 머리를 휘저었습니다.

현대기아차 직원들이 출입기자 6명을 산에 묻어버리는, 일련의 범죄가 벌어질 참이었으니까요.

(사진=김준형 기자)

그런데 여기서 출동했던 경찰이 한 술 더 뜹니다.

“일단 이쪽(기아차)에서 신고가 들어왔으니 산에 가서 이야기하는게 좋겠네요. 우리도 동행할테니까. 협조 한번 해주세요.”

아니, 뻔히 범죄가 벌어칠 판국에 경찰이 범죄현장까지 동행하겠다니요.

이게 무슨 날벼락입니까. 결국 경찰까지 나서서 기자들을 산에 묻어버릴 상황이 된 것이지요.

간다 못 간다. 또 옥신각신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오해가 풀렸습니다.

기아차 보안팀이 “산에 가서 이야기하자”는 것은 기아차 화성공장내 홍보관 사무실. 즉 “사내(社內)에 가서 이야기하자”였습니다. 이것을 “산에 가서 이야기하자”로 잘못 들었던 셈이지요.

결국 상황은 그렇게 해프닝으로 끝이 났습니다.

잠시후 기자들은 기아차 임원들의 안내로 화성공장내 홍보관에 들렀습니다. 그 자리에서 시원한 냉커피 한잔씩 얻어마시는 상황으로 전세(?)가 역전됐습니다.

조금 전까지 기자들을 산에 묻어버리겠다는 의지의 기아맨들은 환한 '아빠미소(?)' 얼굴로 변했습니다. 물론 본의는 아니었겠지만….

그 자리에서 기아차측 “오늘 촬영한 내용을 보도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부탁했습니다.

기자 입장에서 독자(국민)의 알권리를 내세웠지만 기업의 입장도 무시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약속은 지켰습니다. 그날 촬영했던 쏘렌토의 쌩얼은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가만히 머물러있을 수는 없었지요. 몇일 뒤 다시 현장에 갔습니다. 그리고 그때는 걸리지 않았답니다. 쏘렌토 쌩얼을 카메라에 담았던, 최초 보도 기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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