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Queen)과 함께한 120분의 황홀경 [홍샛별의 별별얘기]

입력 2014-08-18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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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9ENT/슈퍼소닉코리아)

14일 오후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에 운집한 1만5000명은 모두 행운아였다. 눈앞에서 퀸(Queen)의 브라이언 메이가 기타 솔로를 독주하고, 로저 테일러가 아들 루퍼스 타이거 테일러와 함께 합주를 하는 광경이라니. 이를 행운이라는 단어 말고 어떤 수식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이날 잠실운동장에서 펼쳐진 슈퍼소닉 2014의 피날레를 장식한 퀸(Queen)의 무대는 하늘도 기다린 듯 했다. 내리다 그치다를 반복하던 얄궂은 빗줄기도 퀸의 무대 앞에선 그 위력을 잃고 거짓말처럼 뚝 그쳤다. 선선한 바람과 함께 비에 흠뻑 젖은 비릿한 흙냄새도 적당했다. 모든 게 완벽한 최적의 상태에서 거대한 장막에 가려진 채 10여분간 사운드 체크를 하던 퀸과 아담 램버트(Adam Lambert)는 ‘나우 아임 히어(Now I’m Here)’로 2시간 동안 진행될 공연의 포문을 열었다. 장막이 걷힌 채 퀸이 나타나자 사람들은 쿵쾅거리는 비트와 브라이언 메이의 기타 소리를 뚫을 만큼의 커다란 함성으로 퀸을 연호하며 환영했다.

사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관객들 사이에선 작은 웅성거림이 존재했다. 몇몇은 프레디 머큐리가 없는 퀸의 공연은 진짜배기가 아니라며 평가절하했고, 프레디의 자리를 대신할 아담 램버트가 퀸의 명성에 얼룩이 될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기도 했다.

모든 건 섣부른 예단이었고, 불필요한 걱정이었다. ‘킬러 퀸(Killer Queen)’, ‘라디오 가가(Radio Gaga)’, ‘위 윌 록 유(We Will Rock You)’, ‘위 아 더 챔피언(We Are The Champions)’ 등 퀸의 명곡 22곡이 2시간 동안 진행되는 동안 프레디 머큐리의 부재는 느껴지지 않았다. 이번 퀸의 무대에는 프레디 머큐리가 함께 했다.

“프레디 머큐리를 위해 다 같이 부르자”는 브라이언 메이의 커다란 외침과 함께 무대 뒤에서는 프레디가 나타나 피아노를 치며 ‘러브 오브 마이 라이프(Love of My Life)’를 열창했다. 23년 전에 사망한 프레디는 영상을 통해 팬들 앞에 나섰지만, 너무나 자연스러운 무대 연출과 구성으로 살아 돌아와 전성기 시절의 음악을 다시 들려주는 듯했다.

공연이 후반부로 치달을 때 쯤, 퀸의 최대 히트곡 중 하나인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의 전주가 시작되자 영상 속 프레디는 “마마(Mama)”를 부르며 곡의 시작을 알렸다. 곡의 중후반에서 아담 램버트와 프레디가 한 소절씩 곡의 가사를 주고받는 장면은 이날 공연의 단연 백미였다. 이날 프레디는 살았지만 죽었고, 죽었지만 살았다.

(사진=9ENT/슈퍼소닉코리아)

퀸의 공연을 찾은 사람들의 연령대는 다양했다. 프레디의 상징인 콧수염을 코스튬한 20대부터 시작해 셔츠에 넥타이를 맨 채 안경 쓴 직장인들도 눈에 띄었고, 딸과 함께 온 아주머니 관객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었다. 엄마 손을 잡고 퀸의 공연을 찾은 딸의 스마트폰은 퀸의 주옥같은 명곡으로 가득했다.1990년대 음악을 종종 함께 찾아 들으며 공감대를 형성한 모녀의 남다른 관계는 마주 잡은 두 손이 방증했다.

퀸의 무대는 음악의 위대함을 증명하는 자리였다. 자신의 눈앞에 퀸이 나타나자 온몸을 떨며 눈물을 흘리는 팬도 있었고, 고막을 찢는 듯한 함성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 누군가도 있었다. 히트곡인 ‘섬바디 투 러브(Somebody To Love)’와 ‘어나더 원 바이츠 더 더스트(Another One Bites The Dust)’, ‘위 윌 록 유’ 등의 무대에서는 잠실종합운동장을 뒤흔들고도 남을 엄청난 목소리의 떼창이 이어졌다.

퀸과 아담이 ‘라디오 가가’를 부르자 팬들은 ‘가가 박수’로 화답했다. 1만5000명이 일제히 두 팔을 들어 올려 가가 박자에 맞춰 박수를 치는 광경은 가히 장관이라 표현할 만했다. 브라이언 메이가 ‘아이 원트 잇 올(I Want It All)’의 솔로 기타 리프를 선보인 이후 연주곡인 ‘39’를 연주하자, 관객들은 음악의 황홀경에 빠진 듯 숙연하게 장인의 기타 솜씨를 감상하는 침묵의 원숙함도 보여줬다.

퀸의 공연이 끝남과 동시에 노란 꽃가루가 터졌다. 1971년 결성된 이후 처음 한국을 찾은 퀸의 공연을 그리워하듯, 아쉬워하듯 그리고 고마워하듯. 브라이언 메이와 로저 테일러, 아담 램버트는 무대를 쉽게 떠나지 못한 채 서로의 손을 맞잡고 손을 들어 올리며 관객을 향해 크게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60대 노장 퀸은 한국 공연의 역사에 전설이라는 큰 획을 아로새긴 채 떠났다. 그리고 관객들은 저마다 벅차고 특별한 순간을 선물로 한 아름 품에 안았다. 이날의 퀸은 모두에게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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