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총수들 해외로 해외로…

입력 2006-09-05 11:09 수정 2006-09-05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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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생산기지 방문 점검·그룹 미래 성장동력 찾느라 분주

재계총수들의 해외 방문이 최근 부쩍 잦아지고 있다. 대내적으로 어수선했던 경영여건은 대부분 정리된 것으로 판단하고 그동안 소홀했던 글로벌 경영을 직접 챙기는 대기업 총수들이 늘고 있다.

최근 그룹 총수들의 행보는 대내외적으로 쌓여있는 난관을 뚫고 어떻게 그룹 미래를 그리느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회장이 직접 해외현장 경영에 나서면서 이런저런 이유로 소강상태를 보이던 그룹별 글로벌 전략도 다시 힘을 받는 모습이 역력하다.

올해 2월 장기간의 해외외유 끝에 돌아온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상반기 계열사 사장단 회의를 연이어 가지면서 국내 경영에 치중해왔다. 하지만 하반기부터는 해외 유명 경영자들과의 면담, 해외법인 방문, 해외전략회의 주최 등의 스케쥴을 짜놓고 글로벌 경영에 주력할 예정이다.

◆ 이건희 회장, 미국 방문 수뇌부 대거 동행

이건희 회장의 글로벌 경영의 첫 단추는 9월 19일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열리는 밴 플리트 상 시상식에 수상자로 참석하는 것 부터다. 이 회장의 미국 출국은 최근까지도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사건과 관련해 검찰의 소환이 예정되면서 불확실했다.

특히 소환대상자가 이건희 회장은 물론 이 회장의 장남인 이재용 상무까지 거론되면서 해외출국이 불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나왔다. 그러나 사건을 담당한 재판부가 교체되면서 공판이 연기되는 등 다소 시간 여유가 생긴 틈을 활용하게 됐다.

특히 이번 미국 방문은 이건희 회장 스스로 강하게 희망했다는 것이 그룹 관계자의 전언이다. 이 회장은 벤 플리트 상 시상식과 관련해 지인(知人)들에게 직접 참석을 희망하는 초청장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이 수상하게 될 밴플리트상은 미국 내 친한파 인사들로 구성된 '코리아 소사이어티'가 한국에 대한 이해 증진과 한·미 양국의 관계개선을 위해 활동해 온 인사들에게 주는 상으로 1992년 제정됐다.

2004년에는 반기문 외교부장관이 이 상을 받았고 지난해에는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수상할 정도로 권위를 인정하는 시상식이다.

이 회장의 미국 방문에는 이학수 삼성 전략기획실장(부회장)과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삼성그룹의 수뇌부들 상당수가 동행하는 것은 물론 아내인 홍라희 여사와 장남인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도 함께 출국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이번 이 회장의 미국 방문은 단순한 시상식 참석에 그치지 않고 그룹 수뇌부가 대거 수행하면서 미국 산업 현장을 둘러보고 향후 그룹의 경영전략을 모색하는 ‘글로벌경영 전략회의’가 될 전망이다.

그룹관계자는 "단순히 시상식 참여를 위해 그룹 수뇌부가 대거 몰려갈 이유가 없지 않느냐, 시상식과 별개로 삼성의 최대시장이자 격전지인 미국시장을 시찰하고 현지 산업현장과 트랜드를 점검하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이 회장은 사전에 전문가들과 면담을 통해 글로벌 전략 회의를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구상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지난 8월 9일 이 회장은 서울 한남동 승지원에서 일본 히타치 쇼우야마 에츠시코 회장을 만났다. 구체적인 논의사항에 대해 알려지지 않았지만 합작사인 ‘TSST’(도시바 삼성스토리지 테크놀로지)에 대한 경영현안부터 향후 해외 공동마케팅에 대한 협조 등 다양한 대화가 오간 것으로 판단된다.

이 회장은 이번 방미 기간 중 오동진 삼성전자 북미총괄사장의 안내로 텍사스주 오스틴의 300mm 웨이퍼 반도체공장을 비롯 현지 생산·판매 법인들을 직접 둘러보며 사업현황을 점검할 계획이다.

반도체분야 등 전자업계 석학들과 미래학자들을 만나 세계경영 흐름 전반에 대해 청취할 계획도 잡혀있다. 또 뉴욕 등 미국 대도시의 유명 백화점과 할인점을 찾아 판매 중인 삼성 제품들을 살펴보는 일정도 가질 예정이다.

삼성관계자는 “이 회장은 매년 수개월간의 해외체류를 통해 미래사업구상을 위한 조언을 들어왔다”면서 “이를 통해 삼성의 미래잠재력 확충 및 성장동력에 필요한 사업아이템을 구상해왔다”고 밝혔다.

실제로 지난 2004년 상반기 수개월 동안 미국과 일본에 장기체류하면서 IT및 가전업계 최고경영자를 만나 각 국 시장현황을 파악하고 상호관심사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이 회장은 지난해 7월 베트남에서 삼성전자, 삼성SDI, 삼성전기 등 전자계열사 사장단과 함께 '아시아 전략회의'를 주재한 적이 있다.

당시 이 회장은 동남아 현지 정서에 맞는 감성코드를 최대한 살리는 방안을 모색하고 첨단 부문으로의 투자영역확대, R&D강화 등을 강력히 주문하면서 재계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한편, 이건희 회장의 미국 방문에 대해 일부에선 곱지 않는 시선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명분상으로는 IT사업 점검과 신성장동력을 구상하는 등의 목적이 있지만, 속내는 에버랜드 CB 편법증여 관련 수사에 따른 검찰 소환과 국정감사에 대비한 ‘시간끌기’라는 포석이라는 주장이다.

삼성측이 이 회장의 미국 방문기간이 얼마나 될지 모른다며 장기 체류의 뜻을 내비치면서 이와 같은 주장이 설득력을 받고 있다. 이 회장은 불법대선자금 관련 수사가 한창이었던 2004년 해외에서 장기 체류했고, 지난해에도 불법도청파문이 벌어지자 일치감치 해외 머물면서 국내의 따가운 시선과 수사 화살을 피해왔던 사례를 남겼다.

삼성측이 이번 이 회장의 미국방문을 전과 마찬가지로 면피식 도피행각으로 비춰질까 매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 정몽구 회장, 인도방문에 이어 미국ㆍ체코 길에 올라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의 글로벌 현장경영도 간만에 기지개를 킬 전망이다. 정 회장은 다음 달 중순 인도 출장에 나서면서 현대차의 해외경영을 가속화 시킬 계획이다.

정 회장의 인도방문은 지난 6월 보석 석방이후 첫 해외출장이며 올해 4월 중국 출장에 이어 5개월 만이다. 그는 당시 비자금 문제로 계열사 수사가 본격화되는 와중에서도 현대차 베이징 제2공장 기공식에 참석하며 글로벌 현장경영을 강행했었다.

현대차에서 밝히는 정몽구 회장의 인도방문일정은 이렇다. 정 회장은 인도는 일주일가량 방문할 예정이며 현재 짓고 있는 인도 남부 첸나이 제2공장 건설현장을 점검하고 진행사항을 파악하게 된다. 현대차 인도법인은 제1공장 인근에 내년 8월 가동을 목표로 연산 30만대 규모다.

정 회장은 공장방문과는 별도로 인도 현재 고위 인사들을 만날 예정이다. 정 회장의 인도에 대한 관심은 최근 GM과 포드가 인도시장을 본격 공략하겠다고 나서면서 더욱 높아졌다. 미국의 앨라바마 공장과 중국의 베이징 공장 등 챙겨야할 해외 공장들이 늘면서 글로벌 경영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현대차는 현재 인도시장에서 현지 업체인 미루티에 이어 시장점유율 2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불안한 상태다. 따라서 내년 8월 제2공장이 가동돼 연간 60만대를 생산하게 되면 입지가 좀 더 굳건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출장 재개로 올 하반기에 현대차 체코 노소비체 공장과 기아차 미 조지아 공장 착공식에도 정 회장이 참석할 가능성이 커졌다. 재계에선 인도방문을 필두로 해서 잠시 주춤했던 정 회장의 글로벌 현장경영이 본격화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 회장은 그룹 경영이나 인사방식에 있어서도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기존의 총수 1인체제의 뚝심경영에서 벗어나 시스템에 따른 회사 운영방안을 찾고 있다.

정 회장은 지난 7월 병원에서 퇴원 한 다음날 서울 서초구 양재동 본사에 예전처럼 오전 6시30분에 출근하며 업무를 보는 것은 달라진 게 없지만 요즘 부쩍 '명령형'보다는 '질문형' 발언을 좋아한다는 전언이다.

예전에는 경영과 관련해 "이렇게 하라"는 일방적인 지시가 하달됐으나 최근에는 "어떻게 생각하냐"는 물음부터 던진다고 한다.

정 회장은 시스템 경영이 제대로 도입되지 않아 기아차 파업 사태와 같은 구조적인 문제들이 지속된다고 보고 있다.

연례 행사처럼 반복되는 파업사태로 사상 최대의 손실을 입고 있지만 이렇다한 대안을 내놓고 있지 못해 지루한 노사간의 공방전이 지속되고 있는게 주력 계열사의 현실이다.

때문에 전 그룹 차원에서 시스템 경영을 확립하는 일은 중장기 전략으로 진행되고 있고 정몽구 회장의 경영핵심인 해외현장경영에 당분간 치중할 것으로 보고 있다.

◆ 구본무 회장, 벌서 4번째 러시아 방문 대대적인 투자 예상

구본무 LG그룹 회장도 오랜만에 9월중 러시아 루자의 디지털 가전 공장 준공식 참석차 출국한다.

이번 방문에는 김쌍수 LG전자 부회장, 김반석 LG화학 사장, 금병주 LG상사 사장 등 그룹의 주력인 전자.화학.자원개발 계열사 사장단과 김정만 LS산전 사장, GS건설 및 협력사 관계자를 포함해 모두 20여명이 동행해 현지에서 글로벌 전략회의를 가진다. 구 회장의 러시아 방문은 이미 3년 사이에 3차례나 된다.

글로벌 전략회의는 이미 8월 말에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40여명과 함께 가졌다. 이 자리에서 구본무 회장은 ‘고객중심의 마인드’를 가질 것을 이례적으로 강도 높게 다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발제를 맡은 한 계열사 CEO가 경영전략을 발표하면 질의와 함께 간단한 대화가 오고갔던 것에 전례와 달리 LG CEO의 분발을 촉구하며 공급자 중심의 경영이 여전히 상존하는 이유에 대해 따져 물었다.

이번 러시아에서 열리는 글로벌전략회의 역시 러시아 가전시장에서 수위를 달리고 있는 LG브랜드의 이미지를 제고시키기 위한 방안을 모색할 것으로 알려졌다.

구 회장은 지난해 러시아 가전공장 착공 당시 “투자과정에서 다소 손해가 나더라도 지금이 투자 적기”라며 공격적인 투자전략을 밝히면서 러시아시장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번 전략회의에선 LG화학의 현지 투자확대와 함께 LG상사가 추진중인 자원개발 추이도 점검하면서 향후 투자 방향에 대해 검토할 것으로 알려졌다.

구 회장은 러시아는 유라시아 생산거점의 출발역이며 중국과 마찬가지로 제2의 내수시장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러시아에 짓는 생산법인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실제로 최근 2년간 LG그룹이 유라시아 생산거점을 구축하는데 들인 투자액은 10억달러가 넘는다. 이는 경쟁사인 삼성전자의 투자규모를 뛰어 넘는 수준이다.

이밖에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은 10월 하순 베트남 호치민시에서 호텔.아파트.오피스 복합센터인 '아시아나 플라자' 및 타이어 공장 기공식에 참석예정이다. 이자리에는 그룹 수뇌부와 계열사 사장들도 대거 참석해 자연스럽게 그룹 해외 전략회의도 열릴 전망이다.

재계는 “국내외 경영여건이 그리 좋은 상황이 아니어서 그룹 총수들이 그룹 미래전략 수립에 더 열을 올리는 것 같다”면서 “국내 문제로 발 묶여 그동안 미뤄졌던 경연현안들을 더 이상 미뤄 둘 수 없다는 판단에서 해외경영을 택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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