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1세대 박세리가 흘린 눈물 [오상민의 현장]

입력 2014-09-01 05:17 수정 2014-09-01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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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원과 장정의 은퇴로 LPGA투어 1세대 한국인은 박세리뿐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이 있다. 그랜드슬램과 올림픽 메달이다. (사진=뉴시스)

‘맨발 투혼’을 기억하는가. 1998년 7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메이저 대회 US여자오픈에서 연장 혈투 끝에 드라마틱한 우승을 차지한 박세리(37ㆍKDB산은금융)의 이야기다.

당시 박세리의 우승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로 실의에 빠진 국민에 희망을 안겼다. 힘겨운 사투 끝에 흘린 박세리의 눈물은 한국 여자골프 전성시대의 신호탄이었다. 박세리의 뒤를 이어 김미현(37), 박지은(35), 한희원(36ㆍ휠라코리아), 장정(34ㆍ볼빅) 등이 LPGA투어에 차례로 데뷔하며 우승 릴레이를 이어갔다. LPGA투어 1세대는 그렇게 박세리의 눈물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이제 LPGA투어 1세대 중 남은 사람은 박세리뿐이다. 주니어시절부터 라이벌이었던 김미현은 2012년 은퇴했고, 박지은은 지난해 필드를 떠났다. 박세리의 1년 선배인 강수연(38)은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투어로 무대를 옮겼고, 한희원(36ㆍ휠라코리아)과 장정(34ㆍ볼빅)은 1일(한국시간) 끝난 포틀랜드 클래식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박세리는 이제 박인비(26ㆍKB금융그룹), 김인경(25ㆍ하나금융그룹), 최나연(27ㆍSK텔레콤), 유소연(24ㆍ하나융그룹) 등 자신보다 10살 이상 어린 ‘세리키즈’와 함께 LPGA투어 도전을 이어가야 한다. 세월의 무게 앞에서 느껴지는 공허함이 적지 않을 듯하다.

박세리의 도전도 얼마 남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박세리는 아직 필드를 떠날 수 없다. 그에게는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이 있기 때문이다. 그랜드슬램과 올림픽 메달 획득이다.

1997년 LPGA 프로테스트를 1위로 통과한 박세리는 이듬해인 1998년부터 본격적인 승 수 챙기기에 나섰다. 특히 US여자오픈(1998), 브리시티 여자오픈(2001), LPGA 챔피언십(1998ㆍ2002ㆍ2006) 등 메이저 대회 통산 5승을 기록했다. 앞으로 나비스코 챔피언십이나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면 그랜드슬램을 달성한다. 지난해부터 에비앙 챔피언십이 다섯 번째 메이저 대회로 승격, 박세리로서는 그랜드슬램 달성에 더 큰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됐다.

▲박세리는 1998년 IMF 외환 위기로 실의에 빠진 한국 국민에 희망을 안겼다. 이젠 그의 마지막 도전을 위해 그때 받은 힘과 용기를 돌려줄 때다. (사진=뉴시스)

하지만 박세리에 대한 무관심은 그를 더 힘들게 하는 요인이다. 한때 천하를 호령하던 박세리 아니던가. 물론 박인비를 향한 골프팬들의 기대감이 적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지난해 메이저 대회 3연승 포함 6승을 기록하며 상금왕과 올해의 선수상, 다승왕을 자치, 박세리도 넘지 못한 벽을 넘었다. 만약 이번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면 박세리가 그토록 원하던 그랜드슬램도 먼저 달성하게 된다.

세월 앞엔 장사가 없는 걸까. 아니면 우리의 무관심이 지나친 걸까. 매년 그랜드슬램 달성을 위해 자신과의 고독한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박세리의 위대한 도전이 초라하게만 느껴진다.

지난 17년 동안 박세리가 LPGA투에서 써내려간 신화는 박인비와 비교할 수 없는 위대한 족적이다. 지금의 88년생 황금세대의 밑거름으로서 박인비와 한국여자프로골프 중흥의 일등공신임에 틀림없다.

박세리의 도전은 이제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현재로써는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이 마지막 도전 무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만큼 박세리의 하루하루는 누구보다 간절함이 배어있다.

박세리는 오늘도 공허한 마음을 뒤로하고 클럽을 손에 들었다. 얼마 남지 않은 박세리의 도전에 주목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박인비에게 쏠린 기대와 관심을 박세리에게 반만이라도 돌려주면 안 될까. 1998년 IMF 외환 위기로 좌절했던 국민에게 ‘맨발 투혼’으로 희망을 안겨줬던 그다. 이젠 그때 받았던 힘과 용기를 그에게 갚아줘야 할 때다. 다시 한 번 기적을 일으켜보자고. 당신의 ‘맨발 투혼’을 영원히 기억하는 우리가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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