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북도 청진에서 '벌이 버스' 사업을 하는 A씨는 요즘 쉴 새 없이 울리는 고객들의 전화 덕분에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
'벌이 버스'는 A씨가 운영하는 사설 교통수단이다. 요금은 신의주까지 거리를 기준으로 사람당 짐 수량에 따라 10만∼20만원을 받고 있다.
평균 북한 노동자 월급이 3천∼5천원 수준인 것과 비교하면 어마어마한 가격의 '특급 서비스'인 셈이다.
이처럼 높은 가격에도 열차가 전력·연료 부족으로 중단되는 일이 잦아 무역업이나 장사를 하는 일부 주민들 사이에서는 '벌이 버스'가 필수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최근 주민들이 '벌이 버스'를 더 자주 이용하기 시작한 건 A씨가 버스를 활용한 택배업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나면서다.
이 택배 서비스는 '벌이 버스'에 택배 물건을 실어 보내고 택배 수취인이 직접 버스 운전기사의 휴대전화로 연락해 버스기사에게서 물건을 찾는 방식이다.
처음에는 상당수 주민이 국영 체신소의 값싼 가격과 비교하며 버스 택배 가격에 불만을 쏟아내기도 했지만 '정확하고 빠른' 서비스 때문에 결국 다시 버스 택배를 찾고 있다.
물론 A씨는 이 사업을 운영하기 위해 당과 기업소에 적지 않은 뇌물을 정기적으로 바쳐야 한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수입을 생각하면 뇌물로 쓰는 돈은 그야말로 '새 발의 피' 수준이다.
이러한 A씨의 사례는 최근 북한 사회에서 주목받는 사업가의 모습을 국내외 각종 매체의 보도와 대북소식통을 통해 알려진 내용을 토대로 해 가상으로 구성해본 것이다.
◇ 구매력 갖춘 '중산층' 급증…"수십만 달러 부자도"
최근 북한 사회에 시장경제가 확산하면서 구매력을 갖춘 이른바 '부자 노동자'가 크게 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평범한 계층 사람들로 장사나 사채업 등 사업을 하는 과정에 당이나 기업소 간부 등 '전통적인 상류층'보다 더 많은 재산을 모아 여유로운 생활을 즐기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들이 수년간 하나의 사회 계층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이들을 전통적인 상류층과 구분해 북한사회의 '중산층'으로 분류하고 있다.
A씨처럼 무역업이나 장사로 성공한 개인뿐만 아니라 소위 '잘 나가는' 공장·기업소 직원들도 북한의 주요 중산층 부류에 속한다.
북한이 지난해 공장·기업소별 수익을 기준으로 각각의 성과 보수(인센티브)를 정하는 독자경영체제를 확대·강화하면서 '부자 노동자'가 생겨나게 됐다.
성과 보수가 높은 부자 공장·기업소는 주로 평양 시내나 무역이 활발한 국경지대에 많은 편이라고 대북 소식통들이 전했다.
철광석·동광석을 중국 기업에 수출하는 무산·혜산 광산 노동자들은 평균 30만∼40만원의 월급을 받고 있으며 생산실적에 따라 최고 80만원의 월급을 받는 노동자도 생겨난 것으로 전해졌다.
공장·기업소의 생산 실적에 따라 노동자의 월급은 100배에서 최고 200배까지 차이가 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과 중동 등 해외로 파견돼 외화를 벌어온 노동자들도 구매력을 갖춘 중산층으로 분류된다.
특히 중동지역으로 파견된 북한 의사나 기술자 대다수가 수년 전 '3년 동안 10만달러(약 1억원) 벌기'를 목표로 내걸었을 만큼 이미 많은 돈을 모았다는 사실은 북한 사회에선 공공연한 비밀이 됐다.
현재 평양의 중산층 재산은 평균 10만 달러 수준이며 50만(약 5억9천만원)∼100만 달러(약 10억2천만원)를 가진 부자들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고 일부 대북소식통들은 전했다.
◇'1만원짜리' 햄버거 즐기는 주민들…명품족도 등장
경제력으로 여유 있는 중산층이 늘면서 이들을 겨냥한 고가 업소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2일 평양 르포기사에서 북한 매체가 '인민의 낙원'이라고 선전하는 문수 물놀이장을 소개하며 입장료는 2만원, 이곳에서 판매하는 햄버거 가격은 1만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물놀이장에는 안마실·자외선치료실 등 각종 편의시설과 서양요리를 즐길 수 있는 고급식당도 들어섰다.
FT는 평양 시내 곳곳에서 폴크스바겐·BMW·벤츠 등 고급 외제차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고 전했다.
북한의 최신식 주민편의시설인 해당화관은 한 끼에 1인당 50달러를 넘는 비싼 음식 가격에도 사람들이 붐벼 발 디딜 틈이 없는 것으로 한 대북소식통이 전했다.
평양의 경우 구찌, 프라다, 폴로, 아디다스, 나이키 등 해외 유명 브랜드 소비도 크게 늘고 있고 아파트를 고급 인테리어와 가구로 꾸미며 부유한 생활을 과시하는 주민들도 증가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신의주 등 지방의 부자들은 자체로 구입한 버스로 평양 구경에 나서기도 한다. 비싼 돈을 내고 평양의 고급 호텔에 묵으면서 문화오락시설을 즐기고 호텔과 외화상점의 명품들을 대량 구입해 가기도 한다는 것이다.
북한에서는 여전히 외부세계와의 인터넷은 불가능하지만 태블릿PC와 스마트폰이 꾸준히 출시되고 휴대전화 보급도 작년 5월 기준 200만명을 돌파하는 등 주민들의 IT생활 수준도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중산층의 등장에도 평양과 지방의 일부 계층 외에는 주민들의 영양부족 현상이 계속되는 등 고질적인 빈곤 문제는 여전하다.
무역이 활발한 중국 접경지역이나 평양에 부가 집중되면서 오히려 지역·계층 간 격차는 날로 심화하는 추세다. 독자경영권 확대로 기업소와 직업에 따라 부익부 빈익빈 현상도 가중되고 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 중산층은 오랜 기간 꾸준히 부를 축적해왔지만 김정은 체제 이후 북한 당국이 부의 출처를 캐내기보다는 이들의 소비를 유도하는 정책을 펴면서 최근 부상한 것"이라며 "다른 개발도상국과 마찬가지로 빈부격차 문제를 피할 수 없겠지만 이들 중산층은 북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중심 계층으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