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임영록 KB금융 회장에게 3개월 직무정지라는 초강수를 둔 가운데 임 회장이 사퇴 거부 의사를 밝혔다.
최수현 원장에게 바통을 이어 받은 신제윤 위원장은 임 회장의 자리 보전 의지를 꺾겠다며 제재 수위를 한단계 더 높였지만 그는 "소송 등 모든 방법을 강구해 진실을 규명하겠다"며 금융당국에 더 날을 세우고 있다.
앞서 이건호 행장은 최수현 원장이 중징계를 결정하자 전격 사임 했다. 이어 임 회장 마저 직무정지 처분을 받으면서 KB금융은 경영공백 상태에 빠지게 됐다.
◇ 금융위, 만장일치로 임 회장 직무정지 3개월 결정
12일 금융위는 전체회의를 열어 출석위원 만장일치로 임 회장에 대해 3개월 직무정지 처분을 내렸다.
금융사 임원에 대한 징계는 경징계인 주의, 주의적경고와 중징계인 문책경고, 직무정지, 해임권고 등 다섯 단계로 나뉜다. 직무정지는 해임권고 바로 전 단계에 해당한다.
앞서 최수현 원장이 건의한 중징계(문책경고) 보다 제재 수위를 한단계 더 높인 것이다.
이날 임 회장은 소비자보호총괄책임자(CCO, 준법감시인)인 정민규 상무와 지주 감사팀, 변호를 밭고 있는 법무 대리인들과 함께 직접 금융위에 참석해 국민은행 주 전산기 과정에 대한 사실관계에 대해 설명하고 "의사결정 과정만 가지고 중징계를 내리는 것은 부당하다"며 적극 소명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오히려 금융위는 사퇴 거부 의사를 밝히고 있는 임 회장에 대해 제재 양형을 한단계 높임으로써 사퇴하도록 압박하고 있다.
신 위원장은 "최고경영자(CEO) 리스크를 방치할 경우 KB금융의 경영건전성 뿐 아니라, 금융시장의 안정과 고객재산의 보호에 위태로운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임 회장 징계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임 회장이 주전산기 교체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관련 내용을 지속적으로 보고 받았으면서도 법령 준수 및 사업 추진의 비용과 위험 요소 등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이뤄지도록 해야 하는 직무상 감독 의무 등을 태만히 했다는 설명이다.
◇ 임 회장, 사퇴 거부 "소송 등 모든 수단 강구"
최고 결정기구에서 까지 '레드카드'를 받은 임 회장은 여전히 사퇴를 거부하고 있다.
임 회장은 제재 결정이 난 직후 보도자료를 통해 "금융위 제재조치를 결코 납득할 수 없다"며 "국민은행의 주전산기 전환 사업은 의사 결정과정 중에 중단돼 실제 사업에는 착수도 하지 않은 상태인데 이에 대한 관리 소흘에 책임을 물어 직무정지 중징계를 결정한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앞으로 그는 자신의 명예 회복을 위해 소송도 불사한다는 방침이다. 그는 "진실을 명명백백히 밝히기 위해 소송 등 모든 수단을 강구해 나갈 것"이라며 "앞으로 험난한 과정들이 예상 되지만 대충 타협하고 말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서울대학교 동문인 동시에 행정고시 선후배 사이이기도 한 신 위원장(행시 24회), 최 원장(25회), 임 회장(20회)는 법정에서 만나게 됐다.
물론 당국과의 법정다툼을 통해 명예를 회복한 사례도 있다. 황영기 전 우리금융 회장의 경우 지난 2009년 1월 중징계 결정에 불복한 행정소송에서 3년 만에 대법원 승소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당국과의 법리 싸움에서는 임 회장이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자회사 편입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LIG손해보험이 당국의 ‘괘씸죄’에 걸리게 되면 차일피일 늦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오히려 임 회장의 직(職) 유지가 KB에 피해를 준다는 조직 내외부의 질타가 불가피하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국민은행 주전산기 전환에 대한 시시비비를 떠나 임 회장은 이미 부실한 내부통제와 이에 따른 알력 다툼으로 국민과 조직에 큰 심려를 끼쳤다"며 "법리다툼을 통해 명예를 회복할 가능성은 있지만 그동안 겪어야 할 직원들의 고통과 고객들의 불안에 대해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과연 버티는 것이 옳은가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 KB금융, 예상밖 징계수위에 패닉…경영공백 불가피
금융위 제재 발표에 KB금융은 패닉에 빠졌다. 이달 초 금감원으로 부터 중징계 통보를 받은 KB금융은 이사회를 중심으로 비상경영체제를 가동해 경영안정화에 주력하고 있다. 그러나 3개월간 임 회장이 모든 업무에서 제외되는 만큼 회장 직무대행을 선임해야 한다.
금융위 결정이 난 직후 이경재 KB금융지주 이사회 의장을 비롯한 9명의 사외이사는 서울 명동 KB금융 본점에서 회동을 갖고 대책을 논의 하고 있다.
이 행장이 사퇴한 국민은행의 경우 박지우 행장 직무대행과 본부장, 부행장 등으로 구성된 비상경영위원회를 구성, 운영하고 있으며 매주 이사회를 열어 현안을 점검하고 정책 방향을 논의하고 있다.
KB금융 관계자는 "경영 공백이 최소화 될 수 있도록 곧 이사회를 소집해 회장 직무대행을 선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도 시장 혼란을 최소화 하기 위해 KB금융의 경영리스크가 해소되는 시점까지 정찬우 부위원장을 중심으로 합동 비상 대응팀을 구축하기로 했다. 경영공백 상태인 KB금융의 경영상황을 상시 모니터링하고 필요한 조치가 있다면 신속하게 대처한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