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한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따르면 배설장군은 왜군에 연전연패한 패전장수로 기록됐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당시 경상도 지역 무관이던 배설장군은 왜적과 맞서 싸웠으나 큰 전공은 없었다.
1597년 배설장군은 경상우수사가 된 후에 커다란 패배를 조선 수군에 안기기도 했다. 같은 해 7월 웅천 지역에서 배설장군은 왜적선 600여 척과 대전을 벌여 싸웠으나, 많은 병사가 전사하고 군량 200석, 전함 수십 척을 상실했다. 칠천량 해전에서 배설장군은 전세를 관망하다가 스스로의 판단으로 12척을 이끌고 남해 쪽으로 후퇴하여 안전을 도모했다. 한산도로 물러난 뒤 군사 시설 및 양곡·군기와 군용 자재를 불태우고 남아 있던 백성들을 피난시켰다.
영화 '명량'의 배경이 됐던 이순신이 휘하에 있을 시기 배설장군은 탈주병으로 기록됐다. 전쟁이 한창이던 1597년 배설장군은 신병을 치료하겠다고 허가받은 뒤 도망쳤다.
이후 배설장군의 죽음은 영화 속 마무리보다 더 비참하다. 기록에 따르면 탈주한 배설장군은 2년간 도망치다 1599년 선산에서 권율에게 붙잡혀 서울에서 참형됐다. 다만 광해군 때 배설장군이 쌓은 무공이 인정돼 선무원종공신 1등에 올라 명예는 회복됐다.
한편, 영화 속에서 배설장군은 동료들을 선동해 장수들의 사기를 꺾고, 거북선을 불태워 버리다 결국 안위의 화살을 맞고 쓰러지는 것으로 마무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