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상 칼럼] 자본주의 꽃이 피려면

입력 2014-10-01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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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상 서울대 초빙교수, 전 고려대 총장

나라 안팎으로 증세 논쟁이 치열하다. 프랑스 경제학자인 피케티는 노동이 소득을 버는 속도보다 자본이 소득을 버는 속도가 빨라 자본주의의 불평등이 심각하다고 진단하고 부유층에 대한 자본세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에 힘입어 국내 일부 경제학자들은 우리나라도 소득 격차가 심해 부자증세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반대론자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창출된 부에 대해 과도한 세금을 부과하면 투자와 소비에 대한 동기를 저해하여 자본주의 발전을 가로막는다는 논리를 내놓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자산 집중과 소득 격차가 심각하다. 자본소득을 국민소득으로 나눈 피케티 비율이 2000년 5.8에서 2012년 7.5로 치솟아 세계 최고 수준이다. 또한 2012년 기준 우리나라 소득상위 10% 계층이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5%나 된다. 이에 비해 조세의 소득 재분배 기능이 약해 부의 양극화가 악화하고 있다. 소득세는 나름대로 합리적인 구조를 갖추었다. 과세기준이 비교적 높아 15%의 상위 계층이 세금의 대부분을 낸다. 그러나 세율이 낮다. 고소득자에 대한 최고 세율이 38%이다. 프랑스의 70%에 비해 거의 절반이다.

실로 큰 문제는 기업이 내는 법인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몇몇 대기업이 경제를 이끌 정도로 기업 간 불균형이 심하다. 그러나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법인세율 차이가 별로 없다. 대부분 20~22%의 세율을 적용받는다. 각종 조세감면을 고려하면 대기업의 세율이 일반 중소기업의 세율보다 낮은 경우도 있다. 이런 구조 하에 대기업들은 이익을 쌓고 있으나 일반 가계는 빚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5년간 국내 10대그룹 상장사들의 사내유보금은 271조원에서 516조원으로 90%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가계 부문은 부채가 776조원에서 1040조원으로 34% 늘었다. 조세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자본주의의 양극화 모순이 더욱 심화할 수 있다.

경제의 균형 발전을 위해 전반적으로 고소득층에 대한 소득세율을 높여야 한다. 부동산과 증권 등 자산 소유의 집중이 심각한 상태임을 감안하여 보유자산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법인 세제의 개혁이 절실하다. 경제력 집중이 심한 상황을 감안하여 법인세의 누진구조를 확대하여 대기업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 이상으로 세금을 내게 해야 한다. 여기에 법인세의 공제나 감면제도를 바꾸어 중소기업의 실효세율을 대폭 낮춰야 한다. 최근 정부는 담뱃값 인상에 이어 주민세와 자동차세를 올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재정적자의 해소를 위해 정부가 부당한 증세를 한다는 비판이 거세다. 이들 세금은 소득과 관계없이 같은 금액을 내는 간접세이다. 따라서 서민들에게 부담이 집중되는 역진세의 성격을 띤다. 정부가 경제가 필요로 하는 세제개혁과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증세 논쟁보다 급한 것이 있다. 바로 국민들이 먹고 사는 일이다. 경제가 성장동력을 상실하여 청년 실업자들을 쏟아내고 있다. 중소기업 기반이 무너져 산업 발전이 황폐화하고 있다. 가계 부문이 빚더미에 눌려 연쇄부도 불안에 떨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증세 논쟁만 벌이는 것은 풍랑을 만난 배 위에서 싸움을 벌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증세는 소득을 강제로 재분배하는 공권력의 행사이다. 손해 보는 계층의 반발이 불가피하다. 따라서 사회적 공감대를 얻어 단계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이를 무시하고 강압적으로 추진할 경우 경제 활동의 위축과 사회 갈등을 가져온다. 특히 대기업의 투자와 생산 감소가 현실화할 경우 경제와 사회에 미치는 타격이 크다. 증세에 대한 반대론자들의 주장도 일리가 있다.

그렇다면 증세 논쟁을 먼저 벌일 것이 아니라 연구개발 투자를 늘려 신산업 발굴부터 서둘러야 한다. 또한 경제력 집중을 분산하고 기업 환경을 개선하여 중소기업 및 벤처기업의 창업과 투자를 활성화해야 한다. 더불어 가계 부문의 안정을 위해 고용 불안과 가계 부채 해소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에 따라 경제가 산업 발전과 일자리 창출 능력을 회복하여 돈이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돈을 벌게 해야 한다. 다음 조세제도를 개혁하여 공정한 소득분배 체제를 갖추는 것이 자본주의 꽃을 피우고 올바른 경제 발전을 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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