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M&A 본능', 중견그룹 총수들의 승부수

입력 2006-09-25 15:09 수정 2006-09-25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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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질주’ 중견 그룹의 성장사...총수들의 독특한 경영철학

이랜드, 프라임, S&T그룹의 공통점은?

지난 3~4년동안 M&A(기업인수합병)를 통해 숨가쁘게 몸집을 불리면서 소위 잘나가는 중견그룹으로 성장했고, 그 성장의 원동력은 총수들의 ‘톡톡’튀는 경영스타일이라는 점이다.

최근들어 중견 그룹들의 성장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거침없는 기업 인수합병을 통한 확장경영, 확고한 총수의 경영철학으로 재벌 못지않는 사세를 떨치고 있는 중견그룹들이 늘고 있다. 올해 들어 재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중견그룹들은 기존 재벌들과 차별화된 공격적 경영과 독특한 경영스타일을 앞세워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브레이크 없이 내달리고 있는 중견그룹의 성장과정과 그 비결들을 살펴봤다.

◆ 이랜드 박성수 회장, '권토중래 리더십' 까루프 인수 회의론 잠재워

유통업계에선 한국카르푸 인수전에서 현금유동성이 풍부한 유통 공룡 롯데쇼핑을 따돌린 이랜드 박성수 회장의 봉이 김선달식 장사수완에 혀를 찼다.

지난 4월 이랜드가 경쟁사인 롯데를 제치고 까르푸를 인수한다고 발표할 때 박 회장이 수중에 쥔 돈은 카르푸 매각 대금의 6분의 1에 불과했다. 1조원이 넘는 매각대금은 남의 손을 빌리겠다는 계산이다. 빌려야 할 돈 이자를 연 4%만 쳐도 1년에 560억원이 이자로 나갈 판국이다.

여기에 수천억원이 들어갈 매장 리모델링(할인마트에서 아웃렛으로) 비용과 1.5%에 불과한 한국카르푸의 영업이익률을 따져보면 이랜드의 카르푸 인수는 사실상 도박에 가깝다고 업계는 판단했다.

그동안 M&A를 통한 박성수 회장의 그룹 몸집 불리기를 보면 도박판의 ‘올인’과도 같은 승부수였다.

이랜드는 지난 2003년 의류업체 데코, 2004년 뉴코아, 2005년 킴스클럽 마트에 이어 올해 들어서는 의류업체 네티션닷컴, 콘도업체 삼립개발 등의 인수 때마다 인수 자금 조달 문제가 항상 거론됐다.

몸집에 비해 인수 규모가 너무 큰 데다 인수 기법도 자산유동화를 통해 빚을 내는 방식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박성수 회장은 "우리는 아직 갈 길이 멀다"며 거침이 없다. 실제로 박 회장은 현재 홍콩 의류업체 지오다노를 비롯해 3, 4개 기업의 인수를 추진 중이다.

박성수 회장의 이와 같은 승부사적 사업 확장은 지금까지는 대박에 가까울 정도로 승승장구 하고 있다. 예를 들어 회생이 불가능해 보이던 뉴코아를 인수해 아울렛으로 모양새를 바꾸더니 매출이 평균 100% 이상 늘어나는 만루 홈런을 때렸다.

지난해 이랜드 그룹은 총 매출 2조7130억원에 순이익 2364억원을 올렸다. 자산 기준 재계순위 37위(공기업 제외)의 기업으로 우뚝 선 것이다. 계열사만 11개로 70개가 넘는 의류 브랜드에다 아울렛, 백화점, 수퍼마켓 등 56개의 유통매장을 가진 패션·유통 전문기업으로 거듭난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심사가 끝나고 카르푸의 경영이 본격화 되면 총 매출규모가 5조원대로 커진다.

1980년 박성수 회장이 이화여대 앞에 '잉글랜드'라는 구멍가게 수준의 조그만 의류매장을 연지 불과 25년여 만에 일군 수확이다.

서울대 건축공학과 출신 박성수 회장이 롯데, 신세계, 삼성 등 대 기업과 경쟁하여 유통업계의 다크호스로 부상한 비결은 뭘까.

그룹 내에선 '권토중래(捲土重來)'라는 4글자로 박성수 회장의 파워를 설명한다.

그룹 관계자는 "외부에선 이랜드 그룹이 별탈 없이 승승장구를 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위기의 연속이었다"고 털어 놨다.

실제로 이랜드는 9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기존 브랜드의 차별화가 떨어지면서 매출이 하락되고, 노사 갈등이 심화되기 시작했다. 2000년 6월부터 노조가 장기 파업에 돌입하면서 관련 노조원 4명이 구속되고 박성수 회장이 부당노동행위 등의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되는 등 극단적인 상황까지 몰렸다.

이런 아픈 경험을 바탕으로 박 회장은 특유의 기업문화를 정착시켰다. 바로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믿음 중심’이라는 기독교 사상을 조직내부에 뿌리 깊게 심어 넣었다.

기독교 신앙으로 기업 문화가 통일돼 있고 대부분의 직원이 신앙적 동지로 뭉치면서 일사불란한 기업 체질 개선이 가능했다.

실제로 이랜드그룹의 업무 강도는 일 많이 시키기로 유명한 대기업을 초월한다. 그럼에도 별탈이 없는 것도 바로 신앙적 동지라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는 젊은 직원들에게 '정신적 지주'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랜드가 짧은 기간에 이 정도의 성과를 낸 것은 이처럼 특유의 기업문화가 한 몫을 했던 것이다.

◆ 프라임 백종헌 회장, ‘테크노마트의 신화’로 자금력 키우고 기업 사냥 나서

서울 구의동 쓰레기하치장 부지를 사들여 지상 39층, 연면적 8만평에 달하는 초대형 복합전자상가를 세운 ‘테크노마트의 신화’ 백종헌 프라임 회장.

프라임을 지난해 말 기준으로 총 자산은 1조4692억원, 연 매출액은 4242억원에 달하며 올해 자산 1조9000억원, 연 매출 1조원대를 목표로 하는 그룹으로 성장시킨 장본인이다. 대우건설 인수에도 나섰고, 동아건설의 운선협상대상조로 나서면서 재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다.

하지만 백 회장의 시작은 초라했다. 부친의 사업 실패로 등 떠밀리다 시피 프라임그룹의 모태가 된 호프주택건설을 지난 1984년 설립했다.

학업을 중도에 그만둔 청년 백 회장은 이때부터 부동산 디벨로퍼의 성장 가능성을 읽으면서 88년 프라임산업을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부동산 개발 사업에 나섰다.

회사가 일약 도약하게 된 계기는 테크노마트 개발이다. 초유의 대박을 터뜨린 테크노마트로 인해 백 회장은 명동 아바타, 광명 크로앙스, 신도림역 테크노마트 등을 잇달아 히트시켜 부동산 개발의 귀재로 손꼽히게 됐다.

부동산 개발의 성공으로 막대한 자금력을 행사하게 된 백 회장은 이후 본격적인 기업사냥에 나섰다.

1998년에 국내 최고 설계 감리 엔지니어링 회사인 삼안을 인수해 건설기업으로 기반을 다졌고 건설과는 동떨어진 소프트웨어업체 한글과컴퓨터를 2003년에 인수해 세간의 화제 거리가 되기도 했다.

이후 2004년에는 코스닥 상장업체인 이노츠(현 프라임엔터테인먼트)를 인수했고 중견 모바일 게임업체인 지오인터랙티브를 계열사로 편입하면서 본격적인 엔터테인먼트 사업으로 뛰어들었다.

백 회장이 기업사냥에 발군의 실력을 보일 수 있었던 데는 ‘상상력을 돈으로 만드는 재주’를 가졌기 때문이다.

그는 부동산개발에 성공한 비결에 대해 늘 ‘상상력이 가져다 준 산물’이라고 강조한다. 매일 아침마다 임원들과 함께 브레인스토밍을 통해 그럴싸한 상상력을 내놓고 사업 타당성과 위험요인을 점검한다.

이러한 상상력은 고정관념이 깨져야 나올 수 있다. 실제로 백 회장은 남들이 관심을 갖으려 하지 않는 곳이나 사업성이 없어 보이는 분야에 위험을 감수하고 뛰어들었다. 모래사장과 쓰레기 하치장에 불과했던 곳을 최첨단 IT매장과 영화관이 들어서는 테크노마트로 변모시켰고, 경영난과 도산위기에 빠졌던 한글과컴퓨터를 회생의 발판을 마련했다.

올해에는 비록 대우건설인수에 실패했지만 동아건설 인수선에서 우선 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면서 동아건설이 가진 리비아 대수로 공사 등 대규모 해외 시공실적을 바탕으로 해외진출을 적극 모색하고 있다.

◆S&T 최평규 회장, 시너지 얻을 수 있다면 언제든지 기업사냥 나서

“시너지가 나면 언제든 M&A를 할 수 있다. 투자가 필요하면 투자를 하고 한 우물만 판다. 자신이 가장 잘 아는 기업, 분야에 투자한다”

지난 14일 출범한 S&T그룹 최평규 회장의 기업사냥 원칙이다.

최 회장의 경영행보는 기업간 M&A, 즉 기업사냥을 통한 ‘몸집 불리기’로 요약된다. 1979년 27세 약관의 나이에 열교환기와 발전설비를 만드는 삼영열기공업(현 S&TC)을 창업한 후 크고 작은 M&A를 통해 자산규모 1조2000억원의 총 12개 계열사를 거느린 중견 그룹으로 키워냈다.

지난 2003년 S&T중공업(옛 통일중공업)을 시작으로 호텔 설악파크(2003년), 효성기계공 업(2004년) 등 해마다 굵직한 기업사냥에 나섰던 최 회장은 최근에는 S&T대우(옛 대우정밀)까지 인수해 재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최 회장은 비록 연이어 기업을 인수하면서 세 확장에 나섰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기업들을 인수한 것은 아니다. 나름대로의 룰을 적용하여 기업 사냥에 나섰기 때문에 현재의 S&T그룹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최 회장은 기업 인수 시 가장 최우선적으로 보는 것이 인수회사가 기존 회사와 적절한 조화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내릴 수 있느냐이다. 지금 당장은 아니라도 노력과 투자를 해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면 투자 또한 아끼지 않는다.

통일중공업(현 S&T중공업)의 인수가 대표적이다. 만성적자에 허덕이다 지난 1998년 11월에 부도를 맞아 4년여 동안 법정관리를 받아오던 통일중공업을 지난 2003년 최 회장이 인수한다고 나설 때 주변에선 대부분 말리는 분위기였다.

만성적인 노사분규, 1926%에 달하는 부채비율 등 도저히 회생이 가능할 것으로 보는 이가 없었기 때문. 하지만 기계 공학도 출신인 최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방위산업품, 초정밀 자동차용 변속기와 차축, 공작기계와 산업의 기초 소재인 주조품 등을 생산하며 기계공업분야에서의 기술력을 제대로 살리면 성공하리라 믿었다.

일단 인수하기로 결정이 내려진 다음에 행동은 빨랐다. 인수와 함께 공장에 내려간 최 회장은 365일 머물면서 직원들과 동고동락을 하자 얼음짱 같은 노조의 마음도 움직였다.

또한 최회장은 S&T중공업의 대주주인 S&TC가 보유한 주식 중 45억 3000여만원의 주식을 2004년 4월 전 사원을 대상으로 1인당 7892주씩 액면가 500원에 나누어주어 사원들을 회사의 주주로 만들었다.

지난해 6월에는 사명 변경과 함께 생산직 및 사무직 직원 전원에게 1인당 1만주씩의 스톡옵션을 부여하면서 상장기업 중 최고 많은 스톡옵션을 부여했다.

이처럼 투자할 때에는 과감하게 투자하는 게 최 회장의 스타일이다.

최근에 인수한 S&T대우도 시너지 효과가 높을 것으로 본 최 회장이 주저 없이 인수작업에 참여하여 낚아 챈 것이다. 기존 S&T중공업에 S&T 대우가 알짜 수요처가 돼줄 수 있어 큰 시너지 효과를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최 회장은 형식과 사치를 싫어한다. 그의 사진은 정장보다 작업복을 입고 찍은 사진이 더 많을 정도다. 365일 휴일도 없이 일에 몰두하는 스타일 때문에? ‘일벌레’라는 별명도 얻었다.

일은 사내 임직원 누구보다도 못지않게 많이 하지만 지금까지 월급도 한 푼 받지 않고 법인카드도 일절 사용하지 않는 게 최 회장이다.

형식과 낭비를 싫어하는 최 회장의 스타일이 현재의 S&T그룹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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