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어의 어법에 대해 얘기하다가 설명의 편의를 위해 영어의 ‘to부정사’를 언급하게 되었다. 수강생이 물었다. “to부정사는 부정문에서 사용하는 not이나 no를 사용하지도 않았는데 왜 부정사라고 해요?” 다시 한번 한자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내가 되물었다. “그럼, 여러분이 to부정사에 대해 알고 있는 바를 다 얘기해 보세요.”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지다 보면 그에 따른 부작용이나 대가도 만만치 않은 경우가 많다. 유명한 사람은 가벼운 교통법규 하나만 어기더라도 일반인과는 달리 더 많이 보도되고 더 자극적인 입방아에 오르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사실이 아닌 내용이 왜곡 보도되기도 하고, 그런 왜곡 보도 때문에 생활이 불편할 정도로 기자들이 경쟁적으로 취재를 한다거나 가는 곳마다 팬들이
앞서 게재한 ‘야(野)하다’ 글을 읽은 친구 독자가 그 글 안에 나오는 ‘선정적’이라는 말은 정확히 무슨 뜻이냐고 물어왔다. 소설이나 영화의 내용을 두고 지나치게 선정적이어서 판매나 상영을 금지한다는 조치를 여러 번 봐오면서 ‘선정적’이라는 말과 ‘음란하다’는 말이 단순한 동의어일 거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음란한 것과 선정적인 것은 과연 같은 의미일까?
옷이 적잖이 선정적이거나 표정이나 몸짓에 성적 충동을 자극하는 매력이 있을 때, 혹은 그림이나 음악이 섹시(sexy)한 분위기를 풍길 때 흔히 ‘야하다’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야하다’는 말은 본래 성적 자극이 선정적인 상황에서만 사용하는 말이 아니다. 문화적인 것이 아닌 모든 경우에 다 사용하는 말이었다.
문화(文化)의 ‘文’이 가진 본래의 뜻은
새로운 인사가 진행될 때마다 ‘물망’처럼 뉴스에 많이 오르내리는 말도 없을 것이다. “국무총리 후보로는 ○○○가(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는 보도가 바로 그런 예이다. ‘물망’은 한자로 ‘物望’이라고 쓰며, 각 글자는 ‘물건 물’, ‘바라볼 망’이라고 훈독한다.
글자대로 뜻을 풀이하자면 ‘물건이 바라봄’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인가? 그 뜻을 제대
각부 장관들과 중요 국가의 대사를 임명하는 등 정부의 인사 소식이 연일 뉴스가 되면서 ‘하마평’이라는 말이 자주 나오고 있다. “주미 대사에는 ○○○, 주중 대사에는 ○○○ 등이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는 보도가 바로 그런 예이다.
하마평은 한자로 ‘下馬評’이라고 쓰며 각 글자는 ‘내릴 하’, ‘말 마’, ‘논평할 평’이라고 훈독한다. 글자로만 보자면
언뜻 듣기에 순우리말인 것 같아도 사실은 한자어인 경우가 의외로 많다. ‘어차피’와 ‘도저히’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어차피는 한자로 ‘於此彼’라고 쓰는데 ‘於’는 ‘-에’ 혹은 ‘-에서’라는 의미를 가진 처소격(處所格) 조사이다. 영어의 전치사 ‘in’이나 ‘at’에 해당하는 글자이다.
그리고 ‘此’는 ‘이 차’라고 훈독하며 ‘이, 이것’이라는 의
우리 사회에 거짓이 많긴 많은가 보다. TV를 시청하다 보면 양측의 주장이 서로 달라 어느 편의 주장이 진실인지를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는 뉴스들이 심심찮게 나오기 때문이다. ‘진실게임’을 한다느니, ‘진위 여부를 가리기 위해 치열한 법정공방이 예상된다’느니 하는 뉴스가 바로 그런 예이다. 그런데 이런 뉴스를 방송할 때 가장 많이 쓰는 표현이 ‘진위 여부’이
‘문인화(文人畵)’라는 예술 장르가 있다. 비록 ‘화(畵)’라는 말이 붙어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문인화를 ‘서예’의 범주에 속하는 예술로 인식하고 있다. 전국 규모의 중요한 서예공모전에 거의 다 ‘문인화’라는 항목이 항상 끼어 있기 때문이다.
문인화란 무엇을 그리는 그림일까? 매화(梅)•난초(蘭)•국화(菊)•대나무(竹), 즉 4군자(四君子)를 비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썰렁하다’는 말을 적잖이 사용하고 있다. 분위기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 하고서 분위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이나 행동을 할 때 썰렁하다고 한다. ‘썰렁 개그’라는 말은 이미 우리 사회에 굳어진 말인 것 같다. 딴에는 우스운 얘기를 했는데 웃기는커녕 분위기가 더 어색해졌을 때 그것을 ‘썰렁 개그’라고 한다. 젊은 세대들 앞에서 옛날 개그
최근 언론이 광주 민주화 운동을 진압하던 당시 계엄군의 내부 계획을 폭로함으로써 5·18의 진상을 다시 조사하려는 움직임이 강하게 일고 있다. 대한민국의 국군이 대한민국의 국민을 상대로 작전(?)을 전개하기 위해 공군비행기까지 출격시키려 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당시 계엄군을 통수했던 인물에 대한 분노가 다시 일고 있다.
특히 당시 총격을 받은 건물
국민적 관심 속에 영화 ‘택시운전사’의 관객이 1000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 영화를 보면서 울었다는 사람도 많다. 그만큼 아픈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영화 속 시위장면 내내 나오는 풍경이 있다. 연막탄처럼 보이는 포탄이 터지면 시민들이 손으로 입과 코를 막고서 계속 콜록거리며 정신을 못 차리고 허둥대는 장면이다. 이때 터뜨린 포탄이 바로 최루탄이다.
군 고위 장성이 공관에 근무하는 병사를 ‘사병으로 부렸다’는 보도가 잇따르던 얼마 전의 일이다. 군 제대 후에 복학한 이른바 ‘예비역’ 학생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학생이 “원래부터 장성들 공관에 근무하는 병사들은 다 사병이지 장교가 아니었는데 왜 사병을 부린 것이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어요”라는 말을 하였다.
어이가 없었다. 이게 현재 대학생들의 수
오늘은 처서이다. 입추(立秋)나 상강(霜降) 등의 절기는 한자만 보면, ‘가을[秋]로 들어섰다[立], ‘서리[霜:서리 상]가 내렸다[降: 내릴 강]’는 등의 의미를 금세 알 수 있는데 처서라는 절기는 한자로 써 놓아도 그 뜻을 짐작하기가 쉽지 않다. 처서는 ‘處暑’라고 쓰는데, ‘처’는 일반적으로 ‘곳 처’, ‘서’는 ‘더위 서’라고 훈독하므로 직역하자면
뉴스를 통해 “검찰에 나와 조사를 받고 있다”는 말도 듣고, 때로는 “○○○ 씨를 상대로 수사를 벌이고 있다”는 말도 듣는다. 조사하는 것과 수사하는 것은 어떻게 다를까?
조사(調査)나 수사(搜査)나 ‘査’는 다 ‘조사할 사’로 훈독하는 글자로, 뭔가를 찾아내려 한다는 의미이다. ‘調’는 ‘고를 조’로, 어느 한쪽에 편향됨이 없도록 균형을 잘 잡아 평
여름 휴가철이 끝나간다. 늦게 휴가를 떠나는 사람도 있다. 지금 떠나는 휴가는 물가보다는 산사가 더 나을 것이다. 산사를 찾아 복잡하고 어려운 현실을 잠시 뒤로 밀쳐놓고 자연에 몸을 맡긴 채 조용히 명상에 잠긴다면 최고의 휴식이 될 것이다.
산사에 머물다 보면 더러 절에서 식사를 하는 경우가 있다. 절에서 하는 식사를 ‘공양’이라고 한다. 공양은 한
박찬주 대장이 공관에서 근무하는 병사에게 부당한 처사는 물론 소위 ‘갑질’까지 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그 내용을 보다 더 구체적으로 밝히기 위해 군 검찰이 전직 공관병을 상대로 전수조사를 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 뉴스를 들으면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전수조사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잘 몰랐던 것 같다. 학생들에게 물었더니 “검찰에서 하는 수사의 한 방식”이
상해(上海)에 있었던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옛 청사에 마련된 전시장에는 백범 김구 선생이 귀국하기 전날 휘호한 ‘不變應萬變’이라는 작품이 있다. 變은 ‘변할 변’이다. ‘不變’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고 ‘萬變’은 수시로 변하여 만 번도 더 변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이 구절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으로 만변하는 것에 대응하자”라는 뜻이다.
백범
경술년, 즉 1910년 8월 29일 일본제국이 대한제국을 상대로 통치권을 일본제국에 양여(讓與:양보하여 넘겨 줌)하는 것을 규정하는 한일병합조약을 강제로 체결하고 이를 일방적으로 공포함으로써 일제가 말하는 ‘한일합병’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한일합병은 그들 일제의 말일 뿐, 우리는 결코 통치권을 양여한 적이 없다. 양여라니! 누가 국권을 양보하여 넘겨
장마철이면 연례행사처럼 물난리를 겪곤 한다. 꼼꼼하게 점검하여 철저하게 대비했더라면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던 물난리가 ‘안전 불감증’이라는 병 아닌 병으로 인하여 해마다 반복되는 것이다.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재(人災:사람의 잘못으로 일어난 재앙)라는 반성의 목소리가 나오지만 그것도 그때뿐, 다시 ‘설마’ 하는 방심 속에서 주변의 위험 요소를 없애는 노력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