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왕실의 구성원 중에 특이한 존재가 있다. 아버지가 국왕이더라도 어머니의 신분이 왕비가 되기에 부적합할 경우, 그 소생 자녀는 일반 왕자나 공주와 같은 대우를 받지 못하였다. 그들은 대개 궁인(宮人)이나 기생 또는 향리(鄕吏)의 소생이었다. 그중 남자아이는 소군(小君)으로 불렸는데, 어려서 출가하여 승려가 되어야 하는 슬픈 운명의 소지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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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소부인(智炤夫人)은 지조(智照)라고도 하며, 신라 29대 태종무열왕(재위 654∼661)의 셋째 딸이다. 태종무열왕이 즉위한 이듬해인 655년에 당시 대각간이던 김유신과 혼인하였다. 김유신은 문무왕 13년인 673년에 79세의 나이로 죽었다. 김유신이 지소부인과 혼인할 당시의 나이가 61세였음을 알 수 있다.
태종무열왕의 왕비는 문명왕후로, 김유신의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은 특별강연을 통해 여성고용 확대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실질적 성평등 사회, 지속성장가능사회가 실현되어야 한다”
정 장관은 6일 오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2017 대한민국 여성 금융인 국제 콘퍼런스’에서 ‘한국의 여성고용 현황과 향후 정책과제’를 주제로 특별강연을 진행했다. 이날 콘퍼런스는 프리미엄 경제신문 이투데이와
천관(天官)은 신라 제26대 진평왕(재위 579~632) 대의 인물로, 김유신이 어렸을 적에 사랑했던 여인이다. 그에 관한 일화는 ‘동경잡기(東京雜記)’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상세하게 실려 있다. 그의 집터였던 천관사지와, 그가 지어 불렀다는 원사(怨詞)라는 향가의 곡명만 남아 있다.
7세기에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 그리고 당과 큰
도화녀(桃花女)는 신라 제25대 진지왕(재위 576∼579)과 제26대 진평왕(재위 579∼632) 대의 여성이다. 사량부(沙梁部)에 살던 서민의 딸로, 혼인하여 남편이 있었다. 매우 아름다워 당시 사람들이 도화랑(桃花娘)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진지왕은 575년에 즉위한 지 4년 만에 정치가 문란해졌고, 음란함에 빠져 폐위된 왕이다. 도화녀의 아름다움에
손장순(孫章純·1935~2014)은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고 졸업 후 서울대 불문과에 진학했다. 프랑스 문학에 매료되어 작가의 꿈을 품고 전공을 결정한다. 1958년에 ‘입상(立像)’, ‘전신(轉身)’이 김동리의 추천을 받아 ‘현대문학’으로 데뷔했다. 장편 ‘한국인(韓國人)’, ‘세화의 성(城)’을 대표작으로 남겼다. 1969년부터 한양대 불문과
박화성(朴花城)은 1903년 전남 목포의 사업가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 총명한 딸로 아버지의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아버지가 ‘작은 집’을 얻자 의절할 만큼 여성적 자의식이 강했다. 목포 정명여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유학을 가고자 했지만 형편이 어려워 충남과 전남에서 교사로 일했다. 전남 영광학교 교원 시절 문학 수업을 시작해 ‘추석전야
강신재(康信哉·1924~2001)는 서울에서 개화한 의사 집안에서 태어났다. 경기여고를 졸업하고, 이화여전 가사과에 진학할 때만 해도 작가가 될 뜻은 없었다. 열아홉에 결혼한 후 자신이 소모되는 느낌이 두려워 글을 쓰기 시작했다. 1949년에 ‘얼굴’, ‘정순이’가 김동리의 추천을 받아 ‘문예’로 데뷔해 전후 여성 살롱의 대표 작가가 되었다. 창
구혜영(具暳瑛·1931~2006)은 강원도 춘천시 약사동에서 출생했다. 1955년 숙명여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그해 ‘사상계’에 단편 ‘안개는 걷히고’가 당선되어 문단에 등장했다. 사랑의 욕망과 사회적 관습, 도덕의 갈등 속에서 어떠한 도덕적 선택을 할 것인가를 탐구하는 작품을 꾸준히 발표했다.
‘사상계’와의 관계는 특별한데 구혜영과 박순녀,
박완서(朴婉緖·1931~2011)는 1970년 ‘나목(裸木)’으로 여성동아 여류 장편소설 응모에서 당선, 등단하였다. 경기도 개풍(개성)인 작가의 고향은 어린 시절 행복했던 ‘박적골’로 형상화되기도 하고, 5대에 걸친 개성상인의 흥망성쇠를 다룬 역사소설의 배경(‘미망’)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숙명여고를 나와 서울대 국문과에 진학했으나 전쟁으로 다니지 못하였
백신애(白信愛·1908~1939)는 경북 영천 출생으로 32세의 나이로 짧은 생애를 살다 간 1930년대 여성작가이다. 완고한 아버지 밑에서 성장해 신식교육을 받지 못했고, 15세가 될 때까지 독선생에게 한학과 여학교 강의록 등을 배웠다. 16세에 대구사범에 들어가 수학한 후 3종 훈도(訓導) 자격을 얻어 교원생활을 한다.
짧은 교원생활 후 상경,
이선희(李善熙·1911~1946 월북)는 1930년대 대표적인 여성작가이다. 함남 함흥에서 출생하여 원산에서 성장했다. 그녀에게 원산은 추억의 장소이면서 도시적 감수성을 형성하는 배경이 된 곳이다. 이선희가 자신을 “도회의 딸”, “아스팔트의 딸”이라고 말하는 저변에는 바로 이러한 원산의 영향이 자리잡고 있다. 당시의 여성평론가 임순득은 1930년대 후반
남정일헌(南貞一軒·1840~1922)은 조선의 마지막 여성 문인으로, 문집 ‘정일헌시집(貞一軒詩集)’이 있다. 시집에는 한시 65수와 제문 1편이 수록되어 있다. 한시 작품 65수의 내용은, ①친정 부모를 뵈올 수 없는 규방여인의 한계 ②시아버지와 시동생, 시누이와 주고받은 가족 간의 정 ③성리(性理)와 태극(太極) 등 심오하고 전아한 철학적 사유 ④
김부용(金芙蓉)의 호는 운초(雲楚), 시서화(詩書畵) 삼절(三絶)의 예술인이다. 평안남도 성천(成川)에서 태어나 성천의 관기(官妓)가 되었다가, 연천(淵泉) 김이양(金履陽·1755~1845)을 만나 첩실이 되었다. 어린 나이에 기녀가 되어 소실(小室)로 생애를 마감한 탓인지 생몰년조차 정확하지 않다.
기녀 김운초가 관료 김이양의 첩실이 된 것은
오청취당(吳淸翠堂·1704~1732)은 경기도 안성의 속현인 양성현, 곧 오늘날의 평택 포승에서 해주오씨 오기태의 딸로 태어났다. 22세 때 충남 서산시 음암면 유계리 경주김씨 김한량(金漢良·1700~1752)과 혼인하여 29세에 요절하기까지 서산의 여성으로 살았다. 청취당의 7년 동안의 혼인생활은 182수의 한시로 남아 ‘청취당집(淸翠堂集)’으로
이옥재(李玉齋·1643~1690)는 우리나라 고전문학사상 유일하게 부부 시집을 남긴 여성 문인이다. 남편은 김성달(金盛達·1642~1696), 부부시집 제목은 ‘안동세고(安東世稿)’이다. 이옥재는 조선 중기 명문장가 월사 이정구(1564~1635)의 증손녀로 교육받고 자라나, 병자호란 당시의 충절지사 선원 김상용(1561~1637)의 증손부로 살
김임벽당(金林碧堂·1492~1549)은 조선전기 3대 여성시인이다. 시(詩)·서(書)·자수(刺繡) 삼절(三絶)로 이름을 떨친 예술인이다. 임벽당은 충남 부여에서 아버지 의성 김씨 김수천(金壽千)과 어머니 한양 조씨의 딸로 태어났다. 남편은 기계 유씨 유여주(兪汝舟)인데, 남편이 기묘사화(1519)에 연루되자 충남 서천군 비인면 남당리로 낙향하여 평생을 은거
절부(節婦) 조씨(曹氏)는 수령현(遂寧縣·전남 장흥) 사람이다. 1270년 삼별초(三別抄)가 강화도에서 반란을 일으켰을 당시 조씨는 여섯 살이었다. 아버지인 대위(隊尉) 조자비(曹子丕)는 지모가 있고 힘이 세 삼별초군이 특별히 별장(別將)으로 임명하였다. 그러나 조자비는 탈출하여 개경으로 돌아왔으며, 이후 관군에 소속되었다. 조자비는 삼별초군을 진압하려 탐